"해질녘 사랑스런 포옹 때 미소 짓듯, 디자인도 공감 중요"

서정민 2025. 3. 2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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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디자인의 매력 ‘위트’
지난 2월 27일, 28일 양일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이탈리아 체험홍보관 하이스트리트 이탈리아에서 ‘2025년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이탈리아 외교협력부가 이탈리아 디자인 진흥을 위해 전 세계 각국에서 진행한다. 이날 홍보대사로 방한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파비오 노벰브레(59)를 중앙SUNDAY가 만났다.

진실 만나려…가면 형태 ‘니모 체어’ 디자인
건축가·디자이너 파비오 노벰브레.
이탈리아 레체에서 태어난 그는 밀라노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뉴욕대학교에서 영화제작과정을 수료했다. 94년 밀라노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연 후 밀라노 축구팀 AC 밀란의 본사 건물을 비롯해 포르쉐·피아트 등과 협업하는 등 건축, 인테리어,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다섯 번째로 2019년에는 신세계건설과 함께 밀라네제 감성의 주거공간 ‘빌리브 파비오 더 까사’를 작업했다.

Q : 디자이너가 본 한국의 인상이 궁금하다.
A : “한국은 언제나 역동적이다. 어제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 역시 한국의 역동성을 작품에 담고 있다고 하더라. 한국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늘 새롭다.”

Q :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의 의미는 뭔가.
A : “이탈리아 정부가 ‘디자인을 이탈리아의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게 초점이다. 각 나라마다 홍보 대사가 다른데, 한국을 선택한 것은 나의 의지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어서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는데, 한국이 너무 좋아서 내가 가겠다고 자원했다. 언제가 될지, 얼마나 살진 모르겠지만 꼭 한 번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보고 싶다.”
축구팀 AC 밀란 본사. [사진 파비오 노벰브레 스튜디오]

Q : 27일 발표한 ‘디자인과 불평등: 삶의 향상을 위한 디자인’은 어떤 내용인가.
A : “불평등 이슈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지금처럼 부의 분배가 극단화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부의 분배는 불안과 억압을 초래하는데, 빈부와 상관없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일론 머스크처럼 개인 비행기를 가질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해질녘 황혼을 바라볼 때,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하며 느끼는 감정은 빈부와 상관없이 공유할 수 있고 이런 감동을 만들어내는 게 디자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 감정도 디자인의 영역이라는 건가.
A : “디자인은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삶에 접근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탁자를 만드는 법이 아니라 탁자를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 생각하는 방법을 유도하는 게 진짜 디자인이다.”
구두 브랜드 ‘스튜어트 와이츠먼’의 밀라노 플래그십 스토어. 신발을 올리는 ‘선반’ 하나로 공간 전체를 연출했다. [사진 파비오 노벰브레 스튜디오]

Q : 이탈리아 디자인은 삶에 어떻게 녹아 있나.
A : “디자인 영역을 확장하면 음식도 포함되는데, 이탈리아 지방 소도시에선 아직까지도 단순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며 여전히 ‘손의 힘’으로 음식을 만들고 공예품을 만드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게 진짜 이탈리아 디자인의 힘이다.”

Q :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특징 중 하나는 ‘위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A : “맞다. 프랑스 사람들은 왕이 마음에 안 들었을 때 참수를 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왕이 마음에 안 들면 조소를 하지 폭력을 도구로 삼진 않는다.(웃음) ‘위트’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 짓도록 만든다는 건데, 누구나 정말 마음에 드는 뭔가를 보면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게 된다. 이는 결국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어떤 것에 공감했다는 의미다.”
노벰브레는 인간의 본능·감정을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밀라노 축구팀 AC 밀란 본사는 공을 차며 뛰어가는 선수들의 역동성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 그의 대표작 ‘니모 체어’의 가면 형태 역시 인간에게 필요한 진실의 순간을 표현했다.

얼굴 가면 모양 ‘니모 체어’. 성별도, 인종도 불분명한 모습은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 것이다.

Q : ‘니모 체어’를 보면 여자도 남자도,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닌 ‘인간’이 느껴진다.
A : “성공이다(웃음).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면을 주면 진실을 이야기한다’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인데 가면은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도구다. 로마의 유명한 ‘진실의 입’처럼, 안락의자에 앉아 진실을 말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 니모(Nemo)라는 이름은 노원(No one), 아무도 아니지만 모두가 될 수 있고, 모두이지만 아무도 아닌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 인물로,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얼굴로 만들었다. 해부학적으로 그 어떤 정형성에도 속하지 않은 얼굴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힘들었다.”

Q : 인체를 활용한 디자인이 많아서 종종 외설적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A : “외설적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웃음) 인간의 몸은 그 자체로 굉장히 아름다운 존재다. 사자처럼 빠르지도 않고, 돌고래처럼 수영을 잘 할 수도 없는 나약한 인간이 진화의 꼭짓점에 오른 이유는 스스로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며 노력했기 때문이다. 결국 디자인도 우리에게 주어진 것,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협업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Q : 프로젝트 명들을 보면 시적인 표현들이 많더라. 2008년 개인전 ‘제비들의 자유를 알려주오’, 2009년 전시회 ‘노벰브레의 꽃’, 2009년 피아트사와 함께한 전시회 ‘나무를 만들기 위해’ 등. 직접 지은 건가.
A : “관객이 전시 또는 작품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작품명이 굉장히 중요하다.”

“작품 의미 파악하려면 작품명 굉장히 중요”

Q : 3명의 자녀 이름도 독특하던데.
A : “내 성이 노벰브레(Novembre), 11월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11월은 춥고 비도 많이 와서 온통 잿빛이라 정말 좋은 성은 아닌데(웃음), 그렇다고 성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럼 좋은 쪽으로 관점을 바꾸자 생각했다. 아이들의 이름이 베르데(녹색), 첼레스데(하늘색), 로소(붉은색)인 건 아내의 고향이 아르헨티나여서 착안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11월은 봄이다. 새파란 하늘, 녹음으로 우거진 자연과 꽃…아이들의 이름에 봄의 자연과 연결성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굳이 색으로 연결한 건, 세상이 무지개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을 대하는 나의 세계관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Q : 좋은 디자이너는 시인이 될 수도 있나 보다.
A :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훌륭한 시인이어야 된다.”(웃음)

Q : 이탈리안 디자인을 시적으로 표현한다면.
A : “이탈리아 디자인은 ‘포옹’이다. 가장 본능적이고 단순하면서도 따뜻하고 미소 짓게 한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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