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0년 세계 최장수 와인 명가 비결은 호기심과 혁신”

서정민 2025. 3. 2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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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회사 ‘안티노리’ CEO 렌조 코타렐리
640년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마르케제 안티노리’ 와인 기업의 CEO 겸 수석 와인 메이커인 렌조 코타렐리. 김상선 기자
640년 간 27대째 이어진 와인 가문이 있다. 윌리엄 오하라의 책 『세계장수기업, 세기를 뛰어 넘은 성공』에 세계 최장수 와인회사로 소개됐고,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설립된 ‘마르케제 안티노리’ 가문의 역사는 1385년 ‘피렌체 와인 제조 길드’에 가입하면서 공식적인 기록이 시작됐는데 우리로 치면 고려 말쯤이다. 현재 26대손 알비에라 안티노리가 회장을 맡고 있고, 27대손인 그의 아들 비토리오 림보티 안티노리가 칠레에 있는 와이너리를 책임지며 경영수업 중이다.

이탈리아에서 안티노리 와인 가문의 영향력은 크다. 25대손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이 화이트 와인을 일부 넣는 이탈리아 와인 양조 방식을 거부하고,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포도품종인 카베르네 쇼비뇽 묘목을 심는 등 새로운 양조방법으로 1975년 ‘티냐넬로’, 1978년 ‘솔라이아’를 생산하면서 당시 프랑스에 비해 비주류였던 이탈리아 와인의 위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미국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수퍼 토스카나(이탈리아 고급 와인의 대명사)’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티냐넬로는 국내에서 ‘이건희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2004년 추석에 주요 임원들에게 선물하면서다. 병당 3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30만원 넘는 ‘이건희 와인’ 여전히 인기
현재 ‘마르케제 안티노리’ 와이너리를 책임지고 있는 CEO는 수석 와인 메이커 렌조 코타렐리(71)다. 코타렐리는 페루자 농업과학대학을 졸업한 후 1979년부터 안티노리 와인 가문과 연을 맺고 현재 위치에 올랐다. 그가 3월 10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형도 와인 메이커일 만큼 우리 가족들에게 와인은 항상 삶의 일부였다”며 “피에로 안티노리와 함께하면서 와인 메이커로서 나의 멋진 여정이 시작됐다”고 했다.

현재 그는 안티노리 가문이 인수한 미국 나파밸리의 ‘스택스 립’ 와인 셀러와 워싱턴에 위치한 ‘콜 솔라레’ 에스테이트의 CEO도 맡고 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러는 1976년 미국 와인이 ‘와인은 프랑스’라는 공식을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깨버린 ‘파리의 심판’에서 프랑스 고급 와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세계적 명성의 와이너리다.

(왼쪽부터) 국내에서 ‘이건희 와인’으로 유명한 마르케제 안티노리 와이너리의 ‘티냐넬로’, 1976년 프랑스 와인의 콧대를 꺾고 미국 와인 전성시대를 연 스택스 립 와인 셀러의 ‘아르테미스’. [사진 아영 FBC]
이탈리아에서 이미 큰 명성을 얻은 와인 메이커가 미국·칠레의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드는 것에는 어떤 의의가 있을까. 그는 “혁신” 때문이라고 답했다.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선 포도 재배에 좋은 환경이 꼭 필요하고, 좋은 조건의 포도밭을 보면 와인 메이커는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사실 우리가 더 많은 와인을 생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른 캐릭터를 가진 와인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계속 실험하는 게 와인 메이커로서 나의 미션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안티노리 또한 이런 호기심과 혁신의 철학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와인은 단순한 비즈니스 그 이상, 삶의 일부고 가족의 역사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그래서 늘 여행을 꿈꾸고, 멋진 와이너리를 보면 바로 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런 운명적인 만남은 와인의 잠재성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미국·칠레 와인에 이탈리아 소울(영혼)이 가미되는 순간, 전혀 새로운 캐릭터의 와인이 탄생한다. 칠레뿐 아니라 대부분의 신대륙 와인들은 너무 파워풀하거나, 리치하거나, 공격적일 때가 있는데 이탈리아의 오래된 와인 가문의 터치가 곁들여지면 두 나라의 문화가 만나 전혀 색다른 문화가 창조되듯 매력적인 와인이 만들어진다. 현재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와인의 90%는 30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들이다.”

기후위기 대비해 포도 밸런스 새로 연구
혹시라도 와인의 예술성과 비즈니스 효율성 때문에 고민해본 적은 없을까. 그는 “패션 하우스 에르메스가 그러는 것처럼 와인 메이커로서 최고의 자부심은 최고의 품질”이라며 “와인 메이커가 최고 경영자로 있으면 그런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매년 포도농사를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기후위기에 그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현재 유명 포도밭은 거의 다 지난 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점차 기온이 올라가면서 포도 수확 시기가 당겨져 포도의 당, 타닌 등의 밸런스가 계속 달라지고 있다. 때문에 묘목 사이를 넓히는 등 균형감 있는 포도 맛을 위해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연구하고 있다. 다행인 건 포도 농사의 위기는 언제나 있어 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위기를 잘 극복해왔다는 점이다. 포도밭도 삶도 결국 균형의 문제다. 이점에 초점을 맞춰 답을 찾아나간다면 모든 문제를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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