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내란 수사기록으로 본 '정치인 체포'의 진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이르면 다음주로 예정된 가운데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가를 핵심 쟁점으로 ‘정치인 체포조’ 운영이 꼽히고 있다. 뉴스타파는 검찰 공소장을 포함한 ‘윤석열 내란 사건 수사기록’을 통해 12·3 비상계엄 당일 ‘정치인 체포조’가 어떻게 운영됐는지 확인했다. 취재 결과, 윤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 없이 체포조가 운영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탄핵심판 핵심 쟁점 ‘정치인 체포조’... 윤석열은 극구 부인
윤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단은 총 11차례 진행된 탄핵심판 변론에서 정치인 체포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반면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윤 대통령이 체포조 운영에 직접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군과 경찰, 정보기관을 동원해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을 체포·구금하려 했다는 것이다.
정치인 체포조 의혹은 헌법재판소가 심리한 윤 대통령의 5가지 탄핵 사유 중 가장 논란이 됐던 쟁점이다. 사실관계가 비교적 분명히 드러난 △비상계엄의 선포 요건 △포고령 1호의 위헌성 △군·경의 국회 봉쇄와 표결 방해 △선관위 불법 압수수색 등 4가지 쟁점과 달리 정치인 체포조 의혹은 ‘진실공방’으로 번진 측면이 있다. 윤 대통령 측이 내부 폭로자인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을 ‘거짓말’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저와 통화한 걸 가지고 대통령의 체포 지시라는 것과 연결해서 내란과 탄핵 공작을 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 '홍 차장이 여인형 사령관하고 육사 선후배잖아'인데 아까 그 얘기를 못 들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 윤석열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 중 윤석열의 발언 (2025.2.20)
윤 대통령의 주장처럼 홍 전 차장은 정말 거짓말로 ‘내란 공작’을 한 것일까. 뉴스타파가 확인한 ‘윤석열 내란 사건 수사기록’에는 홍 전 차장의 2024년 12월 3일 통화내역이 정리돼 있다. 아래는 해당 통화내역을 그림으로 정리한 것이다.
통화내역에 따르면, 홍 전 차장은 12월 3일 오후 8시와 8시 22분, 윤 대통령과 짧은 통화를 주고 받았다. 이중 두번째 통화(8시 22분)에서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1~2시간 후에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전화기를 잘 들고 대기하고 있어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통화는 ‘안보폰’을 이용했기 때문에 녹음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홍 전 차장은 약 2시간 20분 뒤인 오후 10시 46분경, 뜻밖의 인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인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이다. 두 사람이 통화한 때는 윤 대통령이 담화문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다. 당시 통화는 약 1분간 이어졌는데, 여 사령관은 외부 감청과 통화 녹음을 우려해 ‘정치인 체포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다시 7분이 흐른 오후 10시 53분경, 윤 대통령이 홍 전 차장에게 또 안보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1분 20여초간 진행된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방첩사, 즉, 여인형 사령관을 도우라고 지시했다.
대통령께서 첫 말씀이 뭔가 흥분해서 자랑하듯이 “봤지? 비상계엄 발표하는 거”라고 하기에 “네, 봤습니다”라고 답변드리니 (중략) 국정원에도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까 우선 방첩사를 도와 지원해
-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진술 (2024.12.11)
같은날 10시 58분과 11시 6분, 홍 전 차장은 다시 여인형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고, 각각 48초, 2분 47초간 통화했다. 이중 두번째 통화(11시 6분)에서 여 사령관은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 정치인이 포함된 14명의 정치인 체포 명단을 불러줬다. 당시 홍 전 차장이 기록한 메모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이란 이름이 순서대로 등장한다.
윤 대통령 측은 ‘홍장원 메모’의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체포 명단은 날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비상계엄 당일, 여인형 사령관으로부터 정치인 체포 명단을 들은 이는 홍 전 차장만이 아니었다.
여인형 지시받은 방첩사 간부들… 정치인 명단 수첩에 받아 적어
여 사령관이 정치인 체포 명단에 대해 홍 전 차장과 얘기를 나누기 직전인 오후 11시경, 여 사령관은 자신의 부하인 김대우 당시 방첩사 방첩수사단장에게 ‘정치인 체포 명단’을 불러줬다. 이때 김대우 단장은 여 사령관으로부터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이 포함된 정치인 명단을 수첩에 받아 적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자리엔 정성우 방첩사 1처장도 있었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여 사령관이 김대우 단장에게 명단을 불러줬고, 김대우 단장이 명단을 수첩에 적어 나갔다”고 진술했다.
김대우 단장은 여인형 사령관으로부터 들은 명단을 수첩에 적어 나갔습니다. (중략) 여인형 사령관이 OOO에서 김대우 단장에게 명단을 불러주고 ‘국회로 출동해’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정성우 방첩사 1처장 진술 (2024.12.11~14)
김대우 단장이 여 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약 4분이 흐른 오후 11시 4분경, 구민회 당시 방첩수사단 수사조정과장은 자신의 상관인 김대우 단장으로부터 14명의 명단을 전달받는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전달받은 것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명단에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12월 3일 23시 04분, 김대우 단장이 저와 이재학 실장에게 이송 및 구금 명단 14명을 불러줬습니다. ①이재명 ②우원식 ③한동훈 ④조해주(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⑤조국 ⑥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 ⑦양정철 ⑧이학영(국회부의장, 민주당) ⑨김민석 ⑩김민웅(김민석의 형) ⑪김명수 ⑫김어준 ⑬박찬대 ⑭정청래
- 구민회 방첩수사단 수사조정과장 진술 (2024.12.10)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여 사령관이 홍 전 차장에게 정치인 체포·구금 명단을 불러주기 2분 전 이미 방첩사 간부들은 해당 명단을 공유했다. 더구나 김대우 단장은 계엄 당일 오후 11시 30분경, 정치인 체포를 위해 수사관들을 국회로 출동시켰다. 또 구민회 과장은 체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치인 체포조’를 운영한 적 없다는 대통령 측의 주장과 배치되는 정황이다.
여 사령관은 방첩사 요원들이 국회로 출동을 시작한 오후 11시 30분, 노영훈 방첩사 군사기밀수사실장에게 수방사 벙커를 답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정치인 구금 시설로 활용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게 방첩사 간부들의 증언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현장에 나간 요원들의 ‘임무 불이행’으로 무산된다. 12월 4일 새벽, 여 사령관은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했음에도 정치인 체포·구금 작전을 중단하도록 조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을 우선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방첩사 간부들은 “미친 짓”이라며 작전을 멈춘 것으로 전해진다.
전OO가 “출동한 부대원들이 국회의원 3명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그 3명은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입니다. 미친 짓거리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 노영훈 방첩사 군사기밀수사실장 진술 (2024.12.12)
여인형-조지호의 텔레그램 통화… ‘정치인 체포 작전’ 논의
정치인 체포조는 윤 대통령이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부터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이날 오후 7시 30분경, 여 사령관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에게 “경찰청장의 연락처를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로부터 약 1시간 뒤인 오후 8시 37분경, 정 처장은 행정안전부로부터 조지호 경찰청장의 전화번호를 확인해 여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여인형’과 ‘조지호’ 두 사람은 평소 개인적 친분이 없는데다 업무상 접점이 없어 서로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비상계엄 당일에야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처음 통화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오후 10시 30분경, 여 사령관은 조지호 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치인 체포조’에 대한 경찰의 협조를 구한다. 이때 조 청장이 들은 체포 명단에도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이 포함돼 있었다.
12. 3. 22:30~22:40 사이에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텔레그램을 이용하여 전화가 왔습니다... (중략) 정치인 명단 15명 정도를 체포할 것인데 경찰에서 위치를 확인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 조지호 경찰청장 진술 (2024.12.)
여 사령관은 정치인 체포 명단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달한 뒤, 자신의 부하인 김대우 단장에게도 불러줬다. 마지막으로 홍 전 차장 역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이 포함된 체포 명단을 여 사령관에게 공유받았다.
결국 정치인 체포조를 운영한 적 없다는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모든 일은 여인형 사령관이 혼자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 된다. 정치인 체포와 같은 무모한 작전을 여 사령관 혼자 독단적으로 감행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믿을 수 없는 가정이다.
여인형의 자백과 윤석열의 비상대권
실제 여인형 사령관은 군검찰 조사에서 정치인 체포 명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 14명의 명단을 김용현 국방장관으로부터 전달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 윤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에 대해 모종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고도 진술했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수사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여 사령관의 진술이 나온다.
14명을 특정하여 체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상계엄 직후 장관님으로부터 처음 들었던 것이 맞습니다. 다만, 대통령께서 비상대권, 비상조치권을 사용해야 한다는 언급을 하시면서 비상대권, 비상조치권을 사용하면 이 사람들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 여인형 방첩사령관 2024.12.24
당초 여 사령관의 자백은 정치인 체포조 운영의 윗선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여 사령관은 헌재에 나와 모든 진술을 거부했다.
여 사령관에게 정치인 체포 명단을 불러준 김용현 전 국방장관도 마찬가지다. 이미 김 전 장관은 정치인 체포조에 대해 “정치활동을 막는 예방 차원”이었다는 입장을 냈다가 지난 17일 열린 자신의 형사 재판에서는 방첩사에 체포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윤 대통령 또한 정치인 체포조에 대한 모든 사실관계를 부정하며, 자신의 결백을 강변한다. 하지만 수사기록을 통해 드러난 비상계엄 당일의 정치인 체포조 운영은 윤석열의 내란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뉴스타파 강현석 khs@newstapa.org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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