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봉준호 감독의 영감 가득"…美아카데미박물관 특별전 가보니
영화 제작과정 생생히 담은 스토리보드, 초기 습작노트 등 눈길
현지 영화기자 "봉 감독 천재성, 전세계가 알게 돼 감사해"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본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아카데미영화박물관에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특별한 전시를 약 2년 동안 개최한다.
전시 개막을 사흘 앞둔 20일 오후(현지시간) 아카데미영화박물관 측 초청을 받아 전시장을 미리 찾았다.
전시장 전면에 '디렉터스 인스퍼레이션: 봉준호'(Director's Inspiration: Bong Joon Ho)라는 전시 타이틀이 크게 쓰여 있었다.
박물관 건물 2층 공간이 거의 통째로 할애된 갤러리는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 만나는 공간의 가운데에는 영화 '괴물' 속 괴물 모형과 하마-돼지를 닮은 '옥자' 얼굴 모형이 전시돼 먼저 방문객들을 맞았다.
왼쪽 벽면에는 '기생충'에 등장한 여러 가족사진과 그림이 걸려 있었고, '옥자'와 '괴물'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스케치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이 '감독의 영감'이라는 뜻의 '디렉터스 인스퍼레이션' 시리즈로 집중 전시를 연 것은 2021년 9월 이 박물관 개관 이후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 벨기에·프랑스의 아녜스 바르다 감독에 이어 봉 감독이 세 번째다.
전시를 기획한 미셸 푸에츠 큐레이터는 이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봉준호는 매우 독보적인 영화감독이고, 그처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없다"며 봉 감독의 독특한 작품세계와 제작 방식을 영화 팬들에게 소개하고자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봉 감독의 영화는 재미있고 드라마틱하며 때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그 안에 깊은 인간애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괴물'은 괴물을 그린 영화이지만, 그 핵심은 아버지의 사랑,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이고, 자신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시스템에 의해 억압당하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점 둔 부분으로 "봉 감독의 작업 방식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내부 갤러리 공간"을 꼽았다.
푸에츠 큐레이터가 서울에 있는 봉 감독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고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전시장 내부 중앙의 공간은 두 벽면 전체가 봉 감독이 그린 영화 스토리보드로 꾸며졌고, 한쪽 벽면의 스크린에는 스토리보드 한 장면과 이 그림을 영화 속에서 실제 구현한 장면이 나란히 상영된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봉 감독의 작업실 역시 그가 현재 작업 중인 영화의 스토리보드로 벽면이 도배돼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 갤러리 안에는 봉 감독이 앉아서 작업하는 테이블이 있는데, 이 테이블은 영화 '설국열차'의 소품으로 쓰이기도 했다"며 "이 공간은 감독의 영감으로 가득한 곳이고, 전시회에 오는 방문객들이 이 공간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관람객들이 놓치지 않고 보기를 바라는 작품으로 봉 감독이 '기생충' 촬영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꼽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되는 사진들이라고 한다.
이 사진들 가운데는 작고한 배우 이선균과 극중 부부 조여정을 가까이서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극중 인물이 아닌 자연스러운 배우의 얼굴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끌었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이 사진들은 봉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함께하는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다른 전시 공간의 한쪽 벽면에는 봉 감독 인생에 큰 영향을 준 20편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다.
또 봉 감독이 젊은 시절 영화를 공부하며 본 '세계영화사' 같은 책이나 그가 연세대에 다니던 시절 영화 연구 동아리를 이끌며 손수 쓴 세미나 안내 공지문, 한창 영화를 공부하며 '파고'와 '양들의 침묵' 같은 영화의 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한 친필 노트 같은 소장품도 흥미롭게 볼 만한 전시물이다.
아울러 초기 작품인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을 구상하며 봉 감독이 쓴 글과 그림, 촬영장 대본, 그사이에 첨부된 메모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봉 감독의 팬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펴볼 만한 작품이 가득한 전시였다. 이 전시는 오는 23일부터 2027년 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에서 만난 현지 매체 할리우드랜드 뉴스 편집장 레지나 루즈 조던은 "봉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 전시에서 그의 그림과 그의 영감이 담긴 (스토리보드) 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특히 '살인의 추억'을 좋아하는데 관련 전시물이 많아서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인들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정말 특별하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한국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뛰어난 여러 한국 감독 중에서도 특히 봉 감독이 천재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알게 돼서 감사하다"며 웃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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