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 이야기 ‘가루지기’...이름 풀어보니 끔찍하네 [말록 홈즈]

한숨 자고 일어나 페북에서 벗들의 소식을 살핍니다. 친구가 50명 남짓이라, 금세 한 바퀴 둘러봅니다. 숲과 나무에 관한 서적을 출간하는 글벗의 페이지에서, ‘수분(受粉: 받을 수, 가루 분)’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동안 식물의 번식은 씨를 뿌리는 ‘파종(播種: 뿌릴 파, 씨종)’이라고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진짜 번식은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전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움직이는 동물은 액션으로 짝짓기를 치르고, 뿌리 심긴 식물은 ‘배달의 종족’이 꽃가루를 날라줍니다. 새삼 벌과 나비와 새들에게 고맙습니다. ‘물기(水分)’와 ‘액체 분(水粉)’의 의미 ‘모호성(ambiguity)’이 있는 ‘수분(受粉)’보다는 ‘가루받이’란 말이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내기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가루받이’ 수분의 영어 단어는 ‘pollination’입니다. Pollen이 ‘꽃가루’를 의미합니다. 우리말 ‘가루’는 ‘갈다’에서 나왔다는 어원설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가루란 말에 불현듯 ‘가루지기’가 떠올랐습니다. 네, 짝짓기 몬스터 변강쇠와 옹녀가 등장하는 그 가루지기가 맞습니다. 식물번식의 핵심인 꽃가루와 번식능력자 강쇠 형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땡!!!”
아닙니다. 가루지기는 ‘가로로 진다(橫負: 가로 횡, 짐질 부)’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시신을 거적에 싸서 지게에 짊어지고 날랐습니다. 가루란 가로세로 ‘가로’의 옛말이랍니다. ‘(시신) 가로로 지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나 온 나라가 굶주릴 무렵, 변강쇠는 마을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탓에 저주를 받아 심한 병을 앓았습니다. 결국 부인 옹녀에게, 새서방을 들이면 그 서방을 죽이겠다는 저주를 남기고 삶을 마칩니다. 옹녀는 변강쇠의 시신을 집에서 내가려고 도와줄 사람을 찾지만, 오는 사내들이 모두 저주로 죽고 집안은 시체들로 가득찹니다. 이 시체들을 옮기는 ‘시신 나르기’가 이야기의 제목이고 핵심 사건인데, 그동안 이대근 옹과 원미경 누나의 힘찬 활동들만 떠올렸네요. 2008년 봉태규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가루지기’도 변강쇠의 육체능력에만 초점을 맞춰, 가루지기의 원뜻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대물 정욕 몬스터 변강쇠’였을 뿐이군요.
폰으로 이 글을 끄적대고 나니, 손가락도 눈도 뻐근합니다. 아이패드 한 대 사야겠습니다. 몸이 눈이 침침하고 졸음이 옵니다. 또 방전됐나 봅니다. 배터리로 시작해, 나이테와 가루받이를 거쳐, 가루지기까지 갔군요.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풀이 방식을 ‘의식의 흐름(the stream of consciousness)’이나 ‘일련의 생각(a train of thought)’으로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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