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황제릉을 품고…홍유릉 ‘벚꽃 명소’를 걷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과 둘레길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 무겁고 답답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 국내에서 유일하게 황제의 묘가 조성돼있는 곳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과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가 이곳에 묻혔다. 홍유릉을 중심으로 인근에 의천왕묘, 덕혜옹주묘 등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민족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장소인 동시에 마을 주민들의 산책로로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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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묘로 조성됐다. 고종은 명성황후 시해 2년 뒤인 1897년에 서울 청량리 홍릉수목원 자리에 능을 만들었다. 이후 1919년 고종이 승하한 뒤 고종과 명성황후를 합장하면서 지금의 금곡동 자리로 이전했다.
이후 1926년 순종이 승하하면서 애초 1905년 지금의 서울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있었던 순명비(순종의 황태자비)의 무덤인 유릉(조성 당시 유강원)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순종도 합장했다. 대한제국의 두 황릉이 이곳에 모이게 된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홍릉이 금곡동으로 온 이유에 대해 ‘비화’를 섞기도 한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왕릉을 조성해야 했지만, 일본이 1910년 국권을 침탈하며 만든 왕·공가궤범 200조에 따라 왕의 무덤인 ‘능’이 아니라 일반인의 무덤인 ‘묘’를 조성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왕실 입장에서는 이런 격하를 피해야 했고, 그래서 어렵사리 찾은 타개책이 이미 명성황후를 안장하며 능으로 조성된 홍릉에 고종을 합장하는 방식이었다고 주장한다. 각종 온라인 백과사전은 물론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일부 누리집에도 정설처럼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먼저 왕·공가궤범은 조선총독부가 1926년 12월9일 시행한 법이다. 고종은 물론 순종(1926년 4월25일 사망)도 홍릉과 유릉에 각각 묻힌 뒤 만들어진 법이다.
더욱이 ‘애초 고종이 금곡동에 황릉으로 자신과 명성황후의 능을 조성하기 위해 1900년부터 준비해왔다’(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장경희 교수)는 연구도 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도 “실록 등의 기록을 보면 고종이 당초부터 지금의 자리(금곡동)에 황제릉 조성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대로라면, 홍유릉은 조선 왕릉과 중국 명나라 황제릉이 조합된 독특한 양식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셈이다.
사실과 다른 이런 비화가 민간에서 도는 까닭은 역시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일 터다. 실제 홍유릉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다른 무덤들도 이런 비극을 드러내고 있다.
약 1시간 정도를 들여 홍유릉을 둘러본 뒤 밖으로 나오면 둘레길이 있다. 돌담을 따라 둘레길을 걷다 보면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영친왕비)를 합장한 영원과 의민황태자의 둘째 아들인 황세손 이구가 묻힌 회인원이 있다.
다소 언덕에 있는 이들 무덤을 살펴본 뒤 다시 걸으면 대중매체를 통해 비교적 잘 알려진 덕혜옹주의 묘와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던 의친왕과 의친왕비 김씨의 합장묘가 있다. 덕혜옹주는 고종과 후궁 복녕당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종의 고명딸이고, 의친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귀인 장씨다. 이들의 묘는 2017년에야 국민에게 개방됐다.
둘레길에는 조선 왕릉에 대한 설명과 덕혜옹주, 의친왕의 일생을 적은 설명문과 그 당시의 자료사진들도 게시돼있다. 수백미터 간격으로 후궁묘, 영원과 회인원, 덕혜옹주묘와 의친왕묘 등이 이어서 나오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자료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특히 울창한 나무 사이로 산새 소리를 들으며 곱씹으면, 역사를 둘러싼 즉자적인 분노는 줄어들고 당시의 시대에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추며 좀 더 깊은 생각에 빠져들 수 있다.
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펼쳐진 흙길 옆으로 소나무 등이 울창하고 솔방울과 도토리가 곳곳에 떨어져 있다. 반대편으로는 아직 잎이 피지 않은 나무들이 줄을 서 있는데, 주로 벚나무다. 4월이면 이곳이 ‘벚꽃 명소’로 꼽히는 이유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둘레길이 맨발 걷기 명소로도 불리는데, 그래서인지 족욕 쉼터도 마련돼 있었다. 다만 홍유릉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가 있는 구역은 맨발로 들어갈 수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중간중간 화장실, 나무의자 등도 마련돼 있어 편리하다.
홍유릉과 둘레길을 걸으며 인근에 있는 다른 무덤까지 여유 있게 모두 둘러보면 약 2시간30분∼3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 뒤에는 홍유릉 바로 앞에 마련된 리멤버1910을 방문하면 좋다. 경술국치를 당한 1910년을 기억하고 남양주시에서 자랐던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간이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가 투옥됐던 중국 다롄의 뤼순 감옥을 그대로 재현해놨고, 시간대가 맞으면 시민도슨트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특히 리멤버1910 누리집을 통해 신청하면 직접 당시의 의상을 입고 모의법정도 체험할 수 있는데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홍유릉과 둘레길을 걸은 뒤 찾기에 제격인 곳이다.
특히 리멤버1910은 휴게공간이 넓은데다 안에 카페가 있어 빵과 음료도 즐길 수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음료를 구매하지 않아도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쉴 수 있어 더 좋다. 홍유릉을 둘러본 뒤 지친 발걸음을 쉬기 안성맞춤이다.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끼며 걸을 수 있는 홍유릉은 입장료 1천원(남양주 시민 500원)이 필요하다. 표를 소지하고 있으면 당일에는 자유롭게 홍유릉을 드나들 수 있다. 둘레길을 비롯해 후궁묘, 영원과 회인원, 덕혜옹주묘와 의친왕묘 등은 입장료 없이 무료로 거닐 수 있다.
홍유릉은 2월∼5월과 9월∼10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6월∼8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30분, 11월∼1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운영한다. 입장 마감은 폐장 시간 1시간 이전이다. 다른 문화재도 시기에 따라 운영시간이 일부 다른데 오후 5시에 보통 운영이 마감된다. 12월∼2월은 개방이 중단되는 곳도 있어 미리 확인이 필요하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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