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엄마 검사의 퇴직 후 고백 “아이 병원 데려갈 수 있어 행복” [김숙정의 권리장전]

김숙정 변호사 2025. 3. 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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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냐 ‘시’냐 논란 속, 단 1초의 불법 구금도 허용할 수 없는 검사의 시간 
구속기간 계산보다 더 무거운 사명은 인권 보호와 정의 실현

(시사저널=김숙정 변호사)

야근 중 고요한 검사실에 유선전화벨이 울렸다. 오늘은 당직도 아닌데 왜 당직실에서 전화를 할까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아보았다. "검사님, 댁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오신다고 하시곤 안 오셔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셨나 걱정하셨다고요." 밤 열두 시쯤 이제 퇴근한다며 집에 연락하고는, '여기까지만 하고 가야지' 하다가 새벽 네 시를 넘긴 것이다. 무음으로 해둔 휴대전화엔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임신 중인 와이프가 퇴근길에 사고라도 난 것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에 남편이 당직실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시아버지는 물으셨다. "검사는 공무원인데, 6시에 퇴근하고 다 못 한 일은 다음 날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야근하면 야근 수당을 받냐?" 검사도 한 명의 공무원인데, 야근 수당도 없이 밤을 지새우며 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정받기 위해서였을까, 좋은 보직에 가기 위해서였을까.

검사가 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그 점이 매 순간 무서웠다. '내가 보고 있는 이게 전부일까, 이게 진실일까, 내 판단이 맞는 것일까?' 이런 고민이 항상 따라다녔다. 구속사건이라면 그 책임감은 더욱 무거워진다. 수사기록에는 구속기간 만기 부전지가 붙고, 커다란 달력 칠판에는 빨간색으로 만료일이 표시된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사건부에는 빨간 경고등이 켜진다.

수사 절차에서 구속만큼 인권을 침해하는 강제수단은 없다. 그렇기에 구속 절차에서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1초라도 불법 구금 시비로 논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검사는 직원들이 표시해 주는 구속기간 만기 부전지나 달력 표시를 100% 신뢰하지 않고, 매일 스스로 구속기간을 계산하며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경기 과천시 법무부에서 열린 임관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청사 앞으로 이동하고 있는 신임 검사들 ⓒ연합뉴스

대통령 구속취소 따른 '구속기간' 충돌과 혼란

형사소송법은 구속기간 계산에 관해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다. 구속된 첫날은 단 몇 시간이 되었든, 극단적으로 23시59분에 구속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루 전체로 계산한다. 반면 법원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등을 위해 수사기록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구속기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즉, 법은 구속기간 계산에 있어 '초일산입'이라는 원칙으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법원의 심사기간을 제외함으로써 수사기관에 실질적인 수사시간을 보장해 준다.

이처럼 법 규정상으로는 법원에 기록이 가 있는 동안은 구속기간에서 제외되어 사실상 수사기간이 늘어나는 셈이지만, 실무에서는 그런 시간적 여유를 누리지 않는다. 검사들은 주로 이런 '불산입' 기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마치 그런 규정이 없는 것처럼 보수적으로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한다. 혹시라도 잘못된 계산으로 불법 구금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신임 검사 실무 매뉴얼에는 "검사가 구속기간을 초과하여 피의자를 불법 구금하는 일은 사직을 해야 할 정도의 중대사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무거운 책임감이 검사들로 하여금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고, 휴가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인생에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형사사건의 피의자와 그 가족, 피해를 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 모두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은 그동안 확립된 관행을 뒤흔들었다. 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위해 구속기간에 불산입하는 기간을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날'이 아닌 '시'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즉시항고 없이 법원의 결정을 수용했지만, 이후 대검찰청은 일선 검찰청에 "종전대로 구속기간을 날로 산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검은 "구속기간 산정 방식과 관련해 오랜 기간 형성돼온 법원 및 검찰 실무례에 부합하지 않는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이 있었다"며 "각급 청에서는 대법원 등의 최종심 결정이 있기 전까지 원칙적으로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구속기간을 산정하되, 수사가 마무리된 경우에는 가급적 신속히 사건을 처리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일선 검사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킨다. 지금까지 모든 검사가 날로 계산해 왔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혼란은 이미 무거운 책임감으로 짓눌린 일선 검사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건물로 검찰 관계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한 개인의 인생을 좌우하는 직무의 무게

형사사법 절차는 마치 정밀한 시계처럼 정확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그래야 법적 안정성이 확보되고, 법을 적용받는 모든 사람에게 예측 가능성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대검의 상충된 지침은 이 시계의 톱니바퀴를 어긋나게 만들고 있다.

검사들은, 특히 어린아이를 둔 엄마 검사들이 퇴직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아이가 열이 날 때, 아플 때 마음 편하게 병원에 데려갈 수 있어 행복해요."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고백이다. 요즘은 아이 병원 진료를 위해 휴가 내는 것에 눈치 주는 직장은 많지 않다. 그런데 검사들은 반나절의 휴가조차 마음 놓고 쓰지 못한다. 자신이 담당한 구속사건의 시계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검사들은 밤낮없이 구속기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법은 법원의 영장 심사기간을 구속기간에서 제외해 주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여유를 누리지 않는다. 주말과 공휴일도 반납한 채, 촉박한 일정과 싸운다. 그런데 이렇게 애써온 원칙과 기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면, 검사들은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인신 구속이라는 강제처분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법은 구속에 관해 가장 엄격한 절차와 계산법을 요구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계산법 자체가 아니라, 이를 적용하는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만약 검찰청마다, 법원마다 구속기간 계산법이 다르게 적용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법이 아니라 '운'에 가깝다. 어떤 판사, 어떤 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유가 좌우된다면, 그것은 법치가 아닌 것이다.

필자가 검사 시절,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는 무거운 결정을 내릴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내 판단이 틀릴까 무서웠고, 잘못된 결정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할까 두려웠다. 그 결정이 옳았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단 1초라도 불법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선청의 수많은 검사가 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가 누구이든 동일한 기준과 절차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검사도, 피의자도, 피해자도 법을 신뢰할 수 있다. 수사 현장에서의 치열한 노력이 중간에서 뒤틀리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정의가 실현된다.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리는 일. 그 무게는 계산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 보호와 정의 실현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의 문제가 아닐까. 

김숙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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