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부자' 조롱받던 작은 섬나라, 제국의 약탈장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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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의 절박함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색적인 비극으로 읽고 넘기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현대 자본주의를 소화할 정도의 인구·국토·경제 규모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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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N.맥대니얼·존 M. 고디 '낙원을 팝니다'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 남태평양의 나우루가 '여권을 판다'는 기사를 읽고, 오래된 책을 꺼냈다. 인구 1만 명, 울릉도 절반 크기밖에 안 되는 이 섬나라는 해수면 상승으로 약 6,500만 달러(약 934억 원)의 이주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흥미로워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수속비를 포함해 2억 원에 가족을 포함하는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나라여서, 홍콩·영국·아랍에미리트 등 89개국을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다고도 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갈렸을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의 절박함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색적인 비극으로 읽고 넘기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은 일부 기후위기 담론이 사람들을 꾀는 방식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중반 역시 태평양 섬나라인 투발루가 '국토 포기를 선언했다', '집단 이주를 결정했다'는 등의 기사가 쏟아졌었다. 실제로 가보니 달랐다. 태평양 섬나라들은 현대 자본주의를 소화할 정도의 인구·국토·경제 규모가 되지 않았다. 국가 경제는 '어업권 판매'나 '외국 송금'으로 운영된다. 투발루 젊은이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호주·뉴질랜드로 가려고 했고, 국가는 이주노동자의 송금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태평양 섬나라는 매년 협상하는 '이주 쿼터'에 사활을 건다.
나우루는 오랫동안 '게으른 부자'로 조롱받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일본을 앞지르던 1970~80년대, 주민들은 외제 차를 굴리고 최고급 병원을 이용했다. '톱사이드'라고 불리는 섬 중앙에 매장된 인광석 덕이었다. 그러나 광물이 고갈되자 나라 전체가 거리에 나앉은 꼴이 됐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으려면 개미처럼 일해야 한다네. 서구인들은 비웃었다.
진실은 달랐다. 이 책은 나우루의 역사를 따라가며 '베짱이의 창고'가 사실은 '욕심쟁이 개미의 약탈 현장'이었음을 보여준다. 1907년 독일 자본이 인광석 채굴을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이 주민 1,200명을 트루크섬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전후 유엔 신탁통치하 채굴권을 장악한 호주의 광산 기업이 나우루에 쥐여 준 돈은 이윤의 2%였다. 그조차 세계 최고 부국 대우를 받을 만큼 주민들에게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저자는 나우루가 독립한 1968년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이때까지만 해도 톱사이드의 3분의 2는 온전했고, 섬의 인구는 6,000명 정도로 관리 가능했다. 저자는 이때 인광석 채굴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모델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태평양 섬의 베짱이는 개미가 뿌려놓은 안락한 소비 문화의 향유에 젖은 상태였다.
저자는 말한다. 나우루는 죄가 없다. 나우루인들이 유럽인들을 섬에 데려온 것도 아니고, 시장경제를 이들이 창조해 낸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저 시장경제와 맞지 않는 지리적 한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연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교리를 DNA에 새긴 채 성장했을 뿐.
1968년 독립 이후 나우루가 인광석 채굴을 줄이면서 지속가능한 모델로 전환했다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작은 영토와 인구로 구성된 태평양 섬나라 문화와 글로벌 소비자본주의 사이의 근본적 부조화를 헤쳐갈 수 있었을까?
남종영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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