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옷 한벌 못팔아”… 동대문패션타운 공실률 90%
C-커머스 공습에 특화상권 쇠락
가전 소매업은 5년 생존율 49%
대출이자 못갚는 소상공인 폭증
무방비 영세업자들 폐업 내몰려
“우리 딸도 옷을 인터넷에서 다 사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20일 서울 동대문패션타운 쇼핑몰 ‘굿모닝시티’에서 만난 여성복 매장 주인 손모(61) 씨는 “하루 한 벌도 못 팔고 공치는 날이 많아 언제까지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처럼 토로했다. 과거 ‘패션 1번지’로 이름을 알리며 전국 의류 도소매업자들이 몰렸던 동대문패션타운은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쇠락한 모습이었다. 16층 건물인 이 쇼핑몰에서 정상 영업 중인 곳은 1층뿐이었다. 2층에 있어야 하는 잡화·아동복 매장은 1층으로 옮겨 영업 중이었고, 그나마도 매장의 3분의 1가량은 비어 있었다. 빈 매장 한쪽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의류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한 매장 직원은 “예전에는 재고들이 다른 도매시장이나 지방 업체로 유통됐는데, 지금은 받아줄 가게들이 많이 사라져 처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소비침체와 쿠팡·네이버 등 e커머스의 급성장, 저가 상품을 앞세운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C-커머스)의 공습으로 국내 오프라인 소매업 생태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유통산업 발전을 이끈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식품·의류·가구·잡화 등을 판매하는 특화상권 중소상공인마저 줄줄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지역경제 쇠락과 일자리 급감이 현실화하고 있다. 지방 금융기관에는 은행 대출과 이자를 갚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이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2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자료를 보면 지난해 판매직 종사자는 251만2000명으로 전년(262만1000명) 대비 10만9000명이 줄었다. 판매직 종사자 감소 폭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이후 최대치다. 올해도 판매직 종사자는 지난 1∼2월 두 달 연속으로 줄었는데, 월별로 따지면 2019년 9월부터 66개월 연속 감소세다. 판매직 종사자는 대형 유통업체나 길거리 상점에서 근무하는 영업·판매직 취업자를 뜻한다.
오프라인 소매업체 생존율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가전제품 소매업체의 5년 생존율은 49.8%로, 지난 2022년 4분기 66.7%에서 16.9%포인트 줄었다. 화장품 소매업체 5년 생존율 역시 같은 기간 64.1%에서 52.1%로 떨어졌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형 유통업체가 폐점하거나 특화상권이 몰락한 지역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일자리 감소와 경제침체를 겪고 있다”며 “영세 소상공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폐업에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생계가 어려운 소매업 종사자들이 새 노동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범부처 이어달리기식 정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역신용보증재단(신보)도 은행 대출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도 내지 못하는 소상공인 대신 갚는 대위변제 금액이 폭증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 감삼동 대구신용보증재단(대구신보) 달서북지점 창구엔 대출 보증 신청을 위해 방문하는 소상공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0여 년 전부터 제과점을 운영 중인 50대 A 씨는 “지난해 적자로 8000만 원을 대출했는데, 올해는 더 어려워 연초부터 4000만 원을 추가로 빚을 내기로 하고 보증 신청을 했다”며 “종업원을 줄이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지만, 함께 일한 세월이 있어 내치지 못하고 있다”고 눈물을 흘렸다. 대구신보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소상공인 보증 금액은 4520억7000만 원(1만294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27억4000만 원(1만2207건)보다 약 21% 증가했다. 경북신보 역시 올 들어 지난달까지 2422억1000만 원(1만100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42억7000만 원(8909건)보다 18.5% 늘었다.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등 대출 연체로 신보가 대위변제하는 금액도 매년 폭증하고 있다. 오프라인 소매업 붕괴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글·사진=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대구=박천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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