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4500원인데 월급은 그대로”…베를린은 파업 중

장예지 기자 2025. 3. 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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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노동자 1만6000명 48시간 파업
20일(현지시각) 베를린 버스와 트램, 지하철(U반)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있다. 베를린 투름슈트라세 지하철역 문이 잠겨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그깟 아이스크림이 한 덩이에 3유로(약 4500원)입니다. 저는 아이가 두 명 있지만 휴가는 꿈도 못 꾸죠. 너무 비싸니까요!”

독일 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합 베르디의 노조원 야나의 목소리가 19일(현지시각) 베를린 리히텐베르크 차고지에서 울려 퍼졌다. 베르디 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베를린 교통공사(BVG) 직원들은 출발을 멈춘 버스가 가득한 그곳에서 집회 중인 노조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19일부터 48시간, 21일 아침까지 베를린 전역의 지하철(U반)과 트램, 버스는 모두 운행을 멈춰섰다. 1만6000명의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또다시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베를린 교통공사와 베르디의 협상이 또 결렬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첫 협상에 들어간 노사는 두 달 동안 5번이나 머리를 맞댔지만 양측의 입장은 팽팽했다. 베르디는 1·2·3차 협상이 끝날 때마다 하루씩 경고 파업에 들어갔는데, 지난 12일 5차 협상마저 깨진 뒤엔 48시간 파업이란 강수를 뒀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90% 넘는 노조원들의 지지를 받아 이뤄졌을 만큼, 이번 교섭에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노조의 의지는 매우 크다.

지난 19일 베를린 리히텐베르크 차고지에서 베를린 교통공사(BVG)를 향해 750유로 임금인상과 노동환경 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독일 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합 베르디 노조원 150여명이 집회를 열었다.

봄을 맞은 베를린에서 파업에 나서고 있는 업종은 교통 부문에 끝나지 않는다. 20일과 21일엔 베를린 샤리테 의대 병원 시설 관리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간다. 청소와 응급차 이송, 물류 부문의 3500명 병원 노동자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을 위한 ‘공공부문 단체협약(TVöD)’의 적용을 받지 못해 20%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고, 업계 최저 임금 수준보다도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연립정부는 2016년부터 보조금 지급 등을 약속했지만, 9년째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시설 관리직 노동자들은 20일 베를린 시청 앞에서 파업 중인 대중교통 부문 노동자들과 함께 공동 집회를 열고, 의회까지 시위행진을 했다. 집회엔 6000명가량이 모였다고 독일 타게스슈피겔은 보도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맞닥뜨린 고물가 위기는 독일의 공공 영역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병원과 공항, 행정기관, 도시 청소 서비스 분야 등 갖가지 공공 부문에서 전국적인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고 독일 신문 타츠는 전했다. 특히 베를린 시민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2025년 단체교섭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업종과 관계없이 연대체 “함께하는 베를린(Berlin Stands Together)”를 만들어 파업에 나선 동료들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샤리테 노동자들을 위한 모금 사업을 열고, 시위에 나선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갖가지 연대 행동이 포함된다.

21일 베를린 교통공사와 여섯번째 협상을 앞둔 노조는 월 기본급 750유로(약 120만원) 인상과 13번째 월급 도입 및 교대·야간근무수당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2021년 마지막 단체협약 이후 임금 인상이 거의 없었고, 독일 내 동종 업계에선 베를린 노동자들이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점 등이 주된 근거였다. 반면 교통공사는 실제로는 평균 11% 임금 인상(베르디는 4.5%라고 주장)이 있었다며 심각한 재정부담을 이유로 노조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교통공사는 대신 4년에 걸친 평균 15% 임금 인상, 750유로의 절반 지급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집회를 조직한 집행부 소속인 버스기사 재키는 한겨레에 “이제 교통공사는 1년차 240유로, 2년차 130유로 인상을 제시했지만 그거론 충분하지 않다”며 “몇년간 임금 협상도 이뤄지지 않은 데다, 베를린 버스기사의 업무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

베를린 교통공사 건물이 있는 리히텐베르크 차고지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한 재키(왼쪽)와 도레인(오른쪽). 재키가 입은 조끼엔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베를린의 일반 시민과 학생, 노동자가 연대하는 ‘함께하는 베를린’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베르디 노조와 교통공사가 21일 6차 협상을 앞둔 가운데, 베르디는 “무기한 파업”이란 초강수를 꺼내는 것도 고심하고 있다. 이를 두고 노조는 같은날 조합원 대상 찬반 투표도 벌일 예정이다. 파업 집회 현장에서 만난 좌파당의 베를린 주의회 크리스티안 론네부르크 의원은 “노동자들이 이렇게까지 파업을 지지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교통공사는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다며 노조 내부의 분열을 조장한다. 이는 적절하지 않다”며 “타협을 이룰 마지막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글·사진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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