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이상주의자가 마주한 ‘열린 세상 속 닫힌 벽’ [.txt]

20년 전 살던 동네 이름은 세인트폴이었다. 영국 서부에서 제법 큰 도시 브리스틀에서 꽤 유명한 동네다. 성자의 이름을 가진 동네지만, 성자다운 데는 없었다. 브리스틀에 도착하자마자 뉴스를 켰더니 동네 이름이 나왔다.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동네 10’이라는 뉴스 특집이었다. 6위였던가 7위였던가는 잘 모르겠다. 갓 서른살의 한국 남자 귀에는 ‘너는 여기서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라는 포고로 들렸다. 나는 대체 어쩌자고 이런 동네를 선택한 것인가.
세인트폴은 이민자 동네였다. 이를테면 나는 뉴욕에 살면서 할렘에 살림을 꾸린 것이다. 이미 이 문장에서 정치적으로 공정하려 애쓰는 독자는 지적하고 싶을 것이다. 이민자 동네는 위험한 동네라는 것도 다 인종차별적인 개념 아니냐고 말이다. 어쩌겠는가. 세계 어느 도시든 이민자가 많은 동네는 범죄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우리의 정신은 인종차별주의자로 살아서는 안 된다. 지갑을 노리는 사람은 당신이 차별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확률의 게임이다.
서너달 만에 나는 걱정도 없이 동네를 산책하는 한량이 됐다. 세인트폴은 자메이카, 인도, 에티오피아 이민자들이 섞여서 살아가는 동네였다. 일요일 낮이면 동네는 향신료 냄새로 가득 찬 파티장이 됐다. 자메이카 이민자들은 레게 머리를 하고 테라스에서 저크 치킨을 구웠다. 매운 고추를 듬뿍 섞은 양념으로 재운 닭요리다. 그들은 동양인인 나를 꽤 재미있어했다. 저크 치킨 한 조각에 맥주를 얻어먹으며 레게 음악에 몸을 흔들다 보면 세계가 하나였다.
가끔 경찰이 출근길을 막는 일이 있었다. 자메이카 갱단 두목과 에티오피아 갱단 두목이 동시에 출소한 날이 가장 삼엄했다. 경찰은 빅토리아 양식 가정집 곳곳에 박혀 있는 총알을 찾느라 분주했다. 영화 속에 사는 기분이었다. 물론 영국 영화는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다. 영국 영화에서 갱단의 총격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휴 그랜트처럼 생긴 남자는 총 대신 책을 들고 노팅힐을 거닐 따름이다.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한 영국 갱스터 영화가 있긴 하다. 나는 그의 영화들이 할리우드 흉내 내는 순진한 영국인의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건 영국에 살기 전 나의 판타지였다.
회사의 직원 구성도 절반이 백인, 절반은 이민자 출신이었다. 한국인인 나는 멀티컬처(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상주의적 선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인종,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란 얼마나 지루한 것인가 말이다. 이상과 현실은 빗나가게 마련이다. 자메이카 출신 동료가 처음 그걸 알렸다. 나는 백인 동료들과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딸들에게 절대 그 드라마는 못 보게 해. 그렇게 비윤리적인 드라마를 보는 건 바른 여성의 자세가 아니야.” 그가 자리를 떠난 뒤 백인 동료가 말했다. “데이먼(나의 영어 이름이다), 흑인 동료들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정체성에 대한 대화 같은 것도 조심해야 해.”
나의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상주의는 계속 시험에 들었다. 서른살이 채 되지 않은, 세계를 별로 겪은 적 없는 한국인의 이상 속에서 백인은 보수적이고 흑인과 이민자들은 진보적인 존재였다. 정치적으로 따지자면 그건 옳은 이상이었을 것이다. 막상 사회 속으로 들어가 살다 보니 이상은 다만 이상일 따름이었다. 아니다. 이상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조각으로 분리됐다. 노동당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이민자 친구는 극도의 성차별주의자였다. 보수당 지지자 백인 친구는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투사였다. 인간은 중첩적인 아이러니다.
영국은 용광로는 아니었다. 인종에 따라 계급에 따라 철저하게 동네가 분리된 모자이크였다. 서로 교류하지 않는 모자이크였다. 나에게는 전형적인 백인 노동계급 친구도 한명 있었다. 케냐 출신 친구가 토속 음식을 가져왔을 때 그는 한 스푼도 뜨지 않았다. 그는 몰래 말했다. “저거 부시 미트(야생동물로 만든 음식)야. 무슨 동물로 만든 건지 모르니까 너도 먹지 마” 나는 한 스푼을 떴다. 예의였다. 무슨 동물로 만든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한국인인 내가 삭힌 홍어를 가져갔어도, 그 친구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삭힌 홍어는 못 먹는 한국인도 많다. 못 먹는 독자라면 나의 애도를 보낸다.

20년이 흘렀다. 영국은 달라졌다. 어떻게든 유지되던 모자이크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2024년 르완다 이민자 가정 출신 소년이 사우스포트에서 칼부림을 벌여 백인 소녀 세명을 살해했을 때, 영국 전역은 백인 폭동으로 불타올랐다. 극우 단체들이 무슬림 난민 짓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며 폭동을 부추겼다. 정치적 극단주의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실은 경제적인 것이다. 혹은 문화적인 것이다. 같은 섬에 살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잘 모른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완벽하게 섞이지 않은 채 오랜 기간 살다 보면 결국 끓는점에 도달한다. 지금의 영국이다. 유럽이다.
이를테면 스웨덴이 그렇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는 인구 대비 유럽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다. 총리였던 스테판 뢰벤은 말했다. “나의 유럽에는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벽은 국경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부에 존재했다. 무슬림 난민들은 스웨덴 사회에 스며드는 데 실패했다.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경제적 불균형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이민자들은 갱단을 조직했다. 2023년 기준, 스웨덴의 강력범죄율은 유럽 2위다. 알바니아 다음이다. 2022년 총선에서 스웨덴 좌파 정부는 우파 연합에 정권을 넘겼다. 이상주의의 실존적 패배다.
사실 나는 이런 걱정을 할 자격이 없다. 지구에서 가장 이민자를 덜 받는 국가에서 단일민족이라는 안전망 속에 사는 주제에 무슨 세계를 걱정하겠는가 말이다. 아니다. 더는 한국은 단일민족국가가 아니다. 2024년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다인종, 다문화 국가가 됐다. 인구의 5%가 외국인이면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분류된다. 우리는 다문화 사회로 진화 중이다. 국경의 벽은 무너졌다. 그렇다면 우리 내부의 벽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아직도 종종 세인트폴의 일요일을 생각한다. 자메이카 친구들에게 얻어먹은 저크 치킨의 알싸한 맛을 떠올린다. 아마도 그것이 여전히 나를 이상주의자로 존재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그렇다. 놀랄 만큼 순진한 결론이다. 세상이 불타고 있을 때 순진하게 사는 건 갈수록 힘이 든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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