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가족 희생하는 치매 돌봄은 미담 아닌 괴담… 통합지원 이뤄져야”

이정은 부국장 2025. 3. 2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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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
“치매, 가장 난도 높은 돌봄 대상… 가족에게만 떠넘기는 건 정책적 방치
내년 3월 지역돌봄 통합지원 시행… 치매환자, 시설 아닌 집에서 생활可
케어팜, 노치원 활동하며 관리·치료… 돌봄이 일으키는 경제에 투자해야”
급속한 고령화 속에 국내 치매 환자가 100만 명에 육박하면서 돌봄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은 1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가족에게만 돌봄을 떠넘기는 것은 정책적 방치”라며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 복지, 의료, 재활을 비빔밥처럼 섞어 제공하는 통합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 길을 잃어버려 집으로 못 돌아오는 할아버지, 폭언과 분노 표출이 부쩍 잦아진 배우자…. ‘나’를 잃고 변해가는 치매라는 질병은 당사자만큼이나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고통이다. 돌봄의 정신적,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느라 가족들 또한 또 다른 의미에서 ‘나’를 잃어가는 경우가 많다. 의료비보다 돌봄 비용의 비중이 크고, 심적인 스트레스로 간병살인 같은 극단적 선택을 부르기도 하는 게 치매다. 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치매 환자는 여러 종류의 노인 돌봄 중에서도 가장 난도가 높은 대상”이라며 “가족에게만 이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적 방치”라고 지적했다. “치매 대응은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야 하는 문제”라며 “가족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치매 환자들이 집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맞춤형 돌봄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 출신인 그는 공직 활동을 끝내고 돌봄 연구와 제도화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고령화 추세 속에 치매 환자가 내년 100만 명, 2044년엔 200만 명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7년 전에도 같은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전망치와 비교하면 치매 환자의 규모나 증가 속도가 다소 완화됐다. 당시 전망으로는 올해 이미 100만 명이 넘고 2050년에는 300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했었다. 조기진단 시스템 등 그동안의 여러 치매 관리가 조금은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의 인구집단에서 규모가 가장 큰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데, 이분들의 소득이나 교육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치매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한 약재가 발견된다면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

―치매 돌봄의 경우 형태나 성격이 다른 질병과 어떻게 다른가.


“치매는 노인 돌봄의 여러 종류 중에서 난도가 가장 높다. 노인들이 겪는 질환은 중풍, 고관절 골절 같은 신체적 문제와 노인성 우울, 치매 같은 정신적 문제가 있다. 치매는 그 자체가 어려운 병인데 여러 질병이 같이 온다는 점에서 더 어렵다. 고혈압과 당뇨, 치과 질환, 청력 손실 같은 것들이 같이 오고 이것이 다시 치매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노인들이 얻게 되는 만성질환 개수가 보통 2.2개인데 치매 노인의 경우 4개나 5개가 한꺼번에 온다. 그래서 돌봄은 더 어렵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 병의 덩어리 자체가 크다.”

―드라마에 치매의 중증 사례들이 극화돼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보는 것만으로 부담이 되는 상황들인데….

“치매를 빙산으로, 삼각형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다. 가벼운 인지장애가 있는 초기 상태의 경우가 대부분이고 중기, 후기로 갈수록 수는 적어진다. 단어를 잊어버리고 때로 기억이 소실되는 정도의 경증 단계에서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중증으로 악화하면서 행동장애와 망상, 의심, 분노장애가 오는 경우는 전체의 15% 정도다. 식사를 한 직후 왜 밥을 안 차려 주냐고 버럭 화를 내는 사례 등 TV에 나오는 게 중증 단계다. 중증 환자가 특히 문제다. 가족 부담은 감당이 안 되는데 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진퇴양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

―그 특별 대책이라는 게 무엇인가.

“가정 방문형 돌봄을 강화하고 중증 치매를 받아 주는 시설에 대해 수가와 인력 지원 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기술 지원도 따라가야 한다. GPS 위치 추적이나 웨어러블 장비를 통한 환자의 상태 관리 등은 외국에서 이미 널리 활용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치매 관리 체계만 따로 만드는 ‘로빈슨 크루소’ 식의 대응은 안 된다. 지역돌봄이라는 큰 틀을 만들고 그 바탕 위에서 치매라는 어려운 문제를 패키지로 다뤄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작년 2월에 통과한 ‘지역돌봄 통합지원법’이 내년 3월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전국 모든 지자체가 지역사회 돌봄에 나설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미래에는 전 국민 의료보장처럼 전 국민 돌봄 서비스 제공이 이뤄지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지역돌봄 체계가 갖춰지면 돌봄 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나.

“현행 수준의 돌봄 시스템에서는 가족의 희생이 너무 크다. 무급 가사노동의 72%는 여성이 한다는 통계가 있다. 결국 아픈 노인이 행복하려면 여성이 희생돼야 하는 구조다. 이 충돌이 모든 가정에 끼어 있는 먹구름의 실체다. 가족의 이 희생이 없으면 노인들은 갈 곳이 결국 시설밖에 없게 된다. 집에 머물면서도 가족들의 정신적, 물질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지역돌봄 통합지원은 정부가 각 가정으로 복지, 의료, 재활을 비빔밥처럼 통합해 배달해 주는 개념이다. 집을 베이스로 놓고 낮에 어린이들이 유치원 가듯이 노인들이 ‘노치원’을 다니면 여성들도 자기의 일상을 사는 게 가능해진다. 사회복지사와 의료인들이 각 가정을 맞춤형으로 찾아다니게 되니 고독사를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치매는 때로 24시간 관리를 필요로 하는 질환이다. 집에서 돌봄이 가능할까.

“물론 어려움이 많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해 해외에서는 ‘살던 곳에서 늙어간다(aging in place·AIP)’라는 개념이 실제 이뤄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케어팜’이라고 부르는 돌봄농장이 많다. 네덜란드의 노인들이 목축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치유 효과를 누리는 식이다. 한국은 목축보다는 밭농사인데 이 또한 고되지 않게 맞춤형으로 강도와 활동을 조절하면 된다. 다양한 한국형 아이디어들을 개발해서 시도해야 한다.”

―거액의 예산이 투입돼야 가능한 일 아닌가. 관련 예산 부담은 지금도 이미 급증 추세다.

“돌봄이라는 꼬리표를 단 예산이 당장에 따로 책정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혜택을 조금씩 확대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으로 본다. 돌봄을 쓰고 끝나는 돈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한다. 돌봄이 일으키는 경제가 있다. 우선 돌봄 일자리가 생기고 욕창 방지 매트리스나 보행기, 가정용 의료기기 같은 수요가 늘면서 관련 산업도 커질 것이다. 보행기가 갈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는 등 집을 개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인공지능(AI)과 스마트화된 기기가 돌봄에 더 많이 쓰이게 될 것이다. 돌봄체계의 구축 과정에서 제4차 산업혁명도 진척될 것으로 본다. 고령화를 기회로 보고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

―50, 60대가 80대 부모를 돌보는 노노(老老)케어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엔 간병살인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지역사회 인프라가 없으니 돌봄의 가족화가 지나치게 진행돼서 생긴 문제들이다. 가족돌봄은 자기 삶을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 돌봄 비용은 기존 생활수준을 떨어뜨리지 않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가족들의 역할은 환자와의 정서적 유대감, 안정감, 보호, 긴급대처, 치매 같은 정신장애의 경우 대리 결정 등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채워져야 한다. 자기 인생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가족을 돌보라고 강요하는 건 못할 짓이다.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을 업고 다니며 대학까지 보냈다는 이야기가 미담이 돼서는 안 된다. 가족의 희생이 당연시되면 미담이 아니고 괴담이 된다. 우리 사회는 과거 유교적 전통과 인식이 강해서 그랬던 측면도 있지만, 이제는 가족의 역할이 변했다. 그냥 놔두는 것은 정책적으로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 이사장은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목발을 짚은 채 돌봄 정책과 관련한 세미나 등 관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돌봄 시스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러 사람의 참여가 동력”이라고 했다.

―돌봄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

“1970년대에 서울엔 판자촌이 가득했다. 청계천과 모래내, 문래동…. 난지도에는 쓰레기가 정신없이 쌓여가던 때다. 자유로가 생기기 전 난지 샛강에 온갖 곳에서 퍼온 분뇨를 쏟아부었다. 그 먼지와 열기 속에서 쓰레기를 뒤져 살아가던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근처 진료소에 견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기억이 뚜렷하다. 그 이후 의료봉사를 하게 됐다. 4년간 매주 주말마다 거의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했다. ‘지역사회 의학’이라는 공부도 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 게 남아 있다. 나의 의학은 진료실이나 연구실이 아닌 길바닥에서 태어났다.”

―고령에 불편한 몸으로 뒤늦게 시작한 재단 업무가 힘드시진 않나.

“정책 업무를 하면서 돌봄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그만둔 이후 곧바로 ‘돌봄과미래’ 재단을 만들었다. 그때가 만 70세였는데, 80세가 될 때까지 10년간 돌봄운동을 할 작정으로 시작했다. 이제 3년째가 된다.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격려하고 동참해준 사람들 덕분에 후원자가 400명으로 늘어났다. 그 두 배쯤 후원회원이 늘었으면 좋겠다.”



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
△1952년 충남 논산 출생
△1971∼1983년 서울대 의대 학사, 석사, 박사(예방의학)
△1984∼2013년 서울대 의대 교수
△2006∼2008년 대통령사회정책수석비서관
△2012∼2016년 제19대 국회의원
△2016∼2017년 민주연구원 원장
△2017∼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2017년∼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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