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객은 흰옷 입지말라, 그 시작은 英여왕 결혼식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2025. 3. 2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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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의 옷장- 김정연 지음 /눌와 /2만5000원

- ‘결혼식=순백 드레스’ 시초부터
- 사회·문화 알려주는 아이템까지
- 유럽 여성 초상화 속 의복 고찰

19세기 영국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식을 할 때 흰 드레스를 택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다른 사람들에게 흰 드레스를 입고 오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빅토리아 여왕의 명령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몇 세기를 전해지고 있는가 보다. 지금까지 결혼식 하객의 암묵적인 룰로 지켜지고 있지 않는가. 이를 어기면 ‘민폐 하객’이다.

조지 헤이터, ‘빅토리아와 앨버트의 결혼식 풍경’의 부분, 1840-1842년, 영국 왕실 소장. 눌와 제공


김정연의 ‘초상화의 옷장’은 르네상스부터 19세기까지, 초상화 속 여성의 패션으로 읽는 역사와 문화를 다룬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에서 패션문화와 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르네상스와 그 후 시대를 풍미한 유럽의 여성 초상화를 중심으로 복식의 특징과 의미를 분석하는 글을 쓰고 있다. 초상화를 남긴 여성들이 독자적인 패션을 만들어낸 배경과 유행을 선도하며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 이에 얽힌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대중에게 재미있고 유익하게 전하고자 한다.


왜 유럽 여성 초상화 속 의복일까. 의복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인 실용품이지만, 남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나 의복 주인의 생각과 신념을 나타내는 수단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됐다. 복식은 그 시대 사회상과 문화는 물론 경제·역사까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의 보고이다. 과거의 패션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매체는 그림, 그중에서도 초상화이다. 초상화의 복식은 하나하나 의미를 담아 그려진 경우가 많고, 초상화 속 인물의 삶과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 책은 르네상스부터 벨 에포크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초상화 19점과 그 주인공 여성을 소개한다. 저자는 “서양에서 여인들도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한 15세기 초중반부터 초상화가 사진으로 대체되기 전인 19세기 후반까지, 비교적 대중에게 잘 알려지고 패션 역사에 영향을 끼친 유럽의 대표적인 19명의 여인들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대 한계 속에서도 패션을 통해 제각기 아름다움과 개성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아간 여성들이다.

저자는 의복뿐만 아니라 신발과 머리 장식을 포함한 다양한 패션 아이템과 그림 속 숨은 요소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다양한 참고 자료와 함께 제시되는 풍부한 배경 스토리는 흥미로운 역사 속으로 몰입하게 한다.

19편 이야기 중 빅토리아 여왕 결혼식을 구경해 보자. 전통대로라면 여왕은 왕실 선례대로 금색 실이나 은색 실로 수놓은 두꺼운 양단으로 만든 정교한 드레스와 붉은색 가운으로 구성된 호화로운 예복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여왕은 남편 앨버트보다 화려한 차림새로 돋보이고 싶지 않았다. 고리타분한 예복 대신, 막 프랑스에서 건너와 유행하는 드레스 스타일을 선택했다. 직접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다. 여왕이 직접 디자인을 하다니!

현대의 우리에게는 하얀 색 웨딩드레스가 정답인 듯 자연스럽지만, 여왕의 결혼식을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다소 어색하고 여왕다운 위엄도 느껴지지 않는 의아한 차림새였다. 여왕은 군주의 호화로운 모습으로 남편의 기를 누르고 싶지 않았기에 간결하고 우아한 흰 드레스를 입었고, 왕관도 쓰지 않고, 은매화 화관을 썼다. 귀족 미혼 여성 중 뽑힌 들러리 12명은 여왕이 디자인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흰 장미 화관을 썼다.

사람들은 여왕의 심플한 드레스를 비웃고, 들러리들이 시골 소녀처럼 보인다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여왕이 하는 모든 것은 곧 유행했다. ‘순백의 드레스와 긴 베일이 달린 화관을 쓴 로맨틱한 복장’은 귀족에서 대중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도 흰색이 아닌 다른 색 웨딩드레스는 상상하기 힘들다. 초상화 속 빅토리아 여왕도 변함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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