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내려도 "살 사람이 없어요"…부동산 '대혼란' 벌어졌다

안정락/정의진/한명현/임근호 2025. 3. 20. 17:5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허제' 확대 하루 만에
반포 매매호가 5억 하락
"3일내 팔아 달라" 매물 증가
오락가락 정책에 시장 대혼란
"주말까지 팔아 달라"
잠실 엘·리·트 2억~3억 내린 급매 속출
< 잠실 대장아파트 호가 뚝 > 오는 24일부터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 내 모든 아파트가 토지거래허가 대상으로 지정돼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 달 만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된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벽면에 급매 물건이 붙어 있다. /최혁 기자


정부와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모든 아파트로 확대 지정하자 해당 지역 부동산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해제 한 달 만에 결정을 번복하는 오락가락 정책으로 하루 새 호가가 수억원씩 빠지는 등 시장 불안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강남권과 용산구 일대 공인중개사는 쉴 새 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 정신이 없었다. 이들 지역의 2200여 단지, 40만여 가구가 오는 24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자 집주인의 상담 문의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 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면적 84㎡를 소유한 한 집주인은 호가를 기존보다 5억원 낮춰 55억원에 내놨다. 송파구 잠실동 ‘엘스’와 ‘파크리오’도 호가가 2억~3억원가량 빠진 매물이 속출했다.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가격을 낮춰서라도 이번 주말까지 팔아달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용산구 효창동의 한 주민은 “이 지역 아파트는 가격이 급등하지 않았고, 앞선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슈에서도 비켜 있던 곳”이라며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도 거의 없는 곳인데 용산구 전체를 허가구역으로 지정해 재산권을 침해당했다”고 토로했다.

금융시장도 혼란에 휩싸였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은행이 즉각 대출 문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강남 3구와 용산구는 물론 수도권 일대에서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중은행에는 유주택 여부에 따라 대출이 가능한지 묻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나은행은 오는 27일부터 서울에서 유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과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토지거래허가 번복에 대혼란…23일 데드라인
호가 낮췄지만 매수인 못찾아…고점에 산 사람은 계약파기 문의

“이번 주말까지 집을 팔아달라는 문의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전세 끼고 매도하려던 집주인은 호가를 1억~2억원씩 낮추고 있네요.”(서울 잠실동 A공인중개소 대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지난 19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아파트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하자 중개업소와 집주인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사를 계획한 일부 매도자는 호가를 수억원씩 낮추며 ‘급매’로 내놨지만 정부의 규제 강화에 선뜻 매수인을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급매 나오고 계약 파기 문의도

2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 대상지로 발표된 강남 3구와 용산구 일대에선 적용 데드라인인 23일까지 매도를 서두르는 집주인의 급매물이 잇따르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엘리트’(잠실엘스·리센츠·트리지움)에서 호가를 크게 낮춘 매물이 속속 등장했다.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이번 발표 전 호가가 32억원까지 뛰었으나 이날 2억원 내린 30억원에 매물이 나왔다. 잠실동 B공인 관계자는 “리센츠 전용 84㎡도 호가를 2억원 이상 낮춰 29억∼29억5000만원에 팔아달라는 집주인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된 서초구 반포동 일대도 호가가 크게 하락하고 매수 문의가 뚝 끊겼다.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84㎡는 60억원에 나왔던 물건 호가가 5억원 내려갔다. 반포동 C공인 대표는 “원베일리 매물을 찾던 매수자도 망설이는 분위기”라며 “임차인이 있는 경우 어떻게 팔아야 할지 걱정하는 집주인 문의도 많다”고 전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주거지역 기준 6㎡ 초과(상업지역은 15㎡ 초과) 토지의 주택은 매수자가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기존 임대차 기간이 남아 있다면 집을 팔기가 쉽지 않다. 임대차 계약 기간 종료가 임박했거나 임차인의 퇴거 확약 등 증빙자료를 첨부하는 경우에만 매도가 가능하다.

계약 파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발표 뒤 고점에 매수한 사람이 집값이 내릴까 봐 걱정이 크다는 얘기다. 현지 중개업소는 “계약을 포기하면 위약금을 얼마나 물어야 하는지 문의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재산권 침해 우려 목소리도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지정으로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온다. 위례신도시(송파구) 아파트를 보유한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같은 위례에서도 행정구역상 하남이나 성남은 아무 문제 없는데 송파구에 있다는 이유로 집을 팔기 어려운 게 말이 되느냐”며 “현금이 충분하지 않아 전세 끼고 매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하는 50대 이모씨도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로 매도가 좀 쉬워지나 싶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규제 부작용이 작지 않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은 일관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처럼 단기간에 번복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지금 당장 거래를 억제할 순 있겠지만 근본적인 정책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규제로 묶인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곳이란 학습효과로 이후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정락/정의진/한명현/임근호 기자 jran@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