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윤석열의 망상과 12·3 그날 대한민국의 진짜 풍경
언론은 내란의 날로부터 100여일을 지나오며 갖은 분석과 전망을 쏟아냈다. 뉴스는 복잡한 법리 해설과 정치적 셈법으로 범벅이 된 지 오래다. 공론장은 변질돼 날이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논점을 더한다. 국민들이 그 모든 쟁점과 논리를 좇아야만 12·3 비상계엄의 진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기자의 의문은 점점 깊어졌다.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 여부를 결정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어떤가. 언론과 전문가들은 너무 쉽게 전망하고, 속단했다. 그리고 너무 쉽게 틀렸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례와 상식에 비춰 그럴 듯하게 끼워 맞춰봤지만, ‘3월 14일경 탄핵심판 선고’ 예상은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빗나갔다. 그러더니 다시 21일경 선고를 점치는 초조한 전망이 번졌다. 이마저 또 틀리고 말았다.
윤석열과 그를 대리하는 ‘법 기술자’들은 그런 세간의 초조함을 파고든다. 법률로 무장한 이들은 탄핵심판의 최종변론에 이르기까지 실존하지 않는 ‘허상’을 꾸며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마치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상황이나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궤변으로 12·3 그날 국민들이 공유한 기억을 희석하려는 시도다.
윤석열은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대한민국을 “전시·사변에 못지 않은 국가 위기 상황”이었다고 규정했다. 그의 대리인단 역시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를 운운하며 ▲중국의 하이브리드전 전개 중 ▲탄핵 남발로 인한 행정부, 사법부 기능 마비 ▲국가 이익에 반하는 국회의 입법 독재 ▲위헌적, 과다한 재정부담 입법 폭주 ▲일방적, 무분별한 예산 삭감 및 국정 마비를 일일이 예로 들었다.
평범한 국민이 이런 주장을 얼마나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까. 예컨대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하이브리드전, 즉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맹신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계엄 선포가 대통령이 유사 시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고유 권한임을 다툴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권한을 발동할 수 있는 조건만큼은 대통령의 즉흥적인 판단을 불허한다는 점이 쉽게 간과되고 있다. 엄정한 법령 해석이 존재함에도 말이다.
이미 우리 군은 불법적 비상계엄, 이른바 친위쿠데타에 동원되지 않기 위한 논리를 정교하게 세워두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요건 모두를 충족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①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상황)
②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현상)
③행정 및 사법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상태)
-합동참모본부, 2023 계엄실무편람 27쪽
계엄법에 나열된 ①, ②, ③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않으면 비상계엄은 선포할 수 없다. 우리 군은 여기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 자의적인 확대 해석도 차단하고 있다. 합참의 해석에 따르면 계엄법상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적과 교전상태,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상황이란, 문자 그대로 ▲선전 포고 ▲교전 ▲경찰력으로 막을 수 없는 국가적 사태나 난리 ▲외적의 침입 ▲반정부 소요 군중에 의한 사회 질서 교란 상태 ▲자연 재해에 의한 사회질서 혼란 상태 등으로 국한된다. 윤석열이 품었던 거대 야당을 향한 불만 따위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에 낄 틈이 없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③의 조건이다.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가비상사태 등의 결과로 행정·사법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확인돼야 한다는 게 우리 군의 흔들리지 않는 입장이다. 합참은 이 부분을 계엄실무편람에서 특히 ‘굵은 글씨’로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하이브리드전 운운하는 윤석열의 궤변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대신 12·3 그날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계엄이 일어나기 전 평범한 국민의 시각으로 국가비상사태의 징후가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12·3 그날 대한민국 행정부와 사법부의 시간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흘렀다. 윤석열 본인부터 국가 수반으로서 고도의 외교 활동을 수행했다. 그는 그날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같은날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들은 반환점을 돈 대통령 임기 후반부 국정 운영을 고민하고 있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은 당일 오전 국무회의를 열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 후반기에는 전반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부의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또 2025년도 예산안 처리가 법정시한을 넘겨 지연되자 “하루라도 빨리 여야간 합의를 거쳐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의 초당적 협력을 다시 한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각 부처에 마지막까지 예산의 취지와 필요성을 국회에 충분히 설명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회민주주의에 기반한 이들의 국정 운영 구상은 계엄 선포와 함께 물거품이 됐다. 한 총리와 몇몇 국무위원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에 난색을 표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날 밤, 계엄을 통보한 국무회의가 있기 전까지 국무위원들은 전시·사변과는 무관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사법부의 일상도 예외나 특혜는 없었다. 이날 전국의 모든 법원은 재판과 선고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특혜 의혹’ 57차 공판에 직접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윤석열이 지목한 ‘폭주하는 거대 야당’의 당수도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었다.
그 뿐인가. 국회도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 국회에서는 첨예했던 여야의 예산안 갈등이 잠시 소강 국면을 맞았다. 국회의장이 협상 시간을 벌어주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전날 본희의에서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을 처리하려 했으나, 국회의장이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고 일주일 뒤까지 여야의 협상안을 만들라고 제안했다.
예정된 상임위원회 회의도 여야 의원들이 출석한 가운데 차질없이 열렸다. 국회의장은 그날 오후 사회부총리를 만나 의대 정원 문제와 고교 무상교육 재정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여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정치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했고, 여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를 예정대로 주재했다.
12·3 그날 대한민국의 행정·사법·입법은 현저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는커녕 지극히 민주공화국다운 장면들을 남겼다.
증시도 국민을 안심시켰다. 그날 오전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동반 상승세로 출발했다. 코스피는 전일 대비 1.86% 상승한 2500.10으로, 코스닥 역시 전 거래일과 비교해 2.21% 오른 690.80을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여기까지가 그날, 대한민국을 채웠던 진짜 풍경이다. 국민들이 편안히 일상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유이며, 불과 몇 시간 뒤 내란의 밤을 뜬눈으로 지켜보며 치를 떨었던 이유다. 밤 10시 30분을 기해 국가를 진짜 비상사태로 몰아넣은 것은 윤석열과 그에 동조한 내란 세력이다. 국가비상사태는 윤석열의 아집과 조바심이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하다.
헌재는 그런 윤석열을 놓고 역대 탄핵심판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파면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박근혜와 윤석열, 두 번의 탄핵심판을 취재해봤지만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현 시점에서 탄핵심판 선고일을 예상해볼 만한 그럴 듯한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결론을 점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동안 법치를 존중하고, 상식에 기댄 국민들이 낙관한 대로 과연 재판관 8인이 전원일치로 파면을 결정할 것인지 속단하기 어렵다. 한 명 이상의 재판관이 파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재판관들은 파면이라는 결론에는 도달했으나, 5대 소추사유 가운데 하나 이상을 파면 사유로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재판관들조차 선고 직전 최종 평결 때까지는 어떤 결론도 예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탄핵 선고를 앞두고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본 12·3 이전의 대한민국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윤석열의 망상이 망쳐버린 그날 이 나라의 평온했던 하루, 그 기억을 부정하는 결론만큼은 나와서는 안 된다고 헌재 재판부에 당부한다.
뉴스타파 홍우람 wooram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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