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 노린 범죄였나 타운하우스 꿈꿨나…'비리 씨앗' 땅 가보니
'토지 앞→토지 관통' 노선 변경 이후 주택 주변 곳곳에 철도 표시 깃발
(춘천·강원 고성=연합뉴스) 박영서 강태현 류호준 기자 = 3조원이 투입되는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추진 과정에서 30억원의 토지수용보상금을 노리고, 노선 설계 담당자에게 '노선 변경'을 청탁한 땅 주인.
보상금을 받게 될 것이 유력한 가운데 실제로 명품 타운하우스 조성을 꿈꿨다가 여의치 않자 거액의 보상금이라도 두둑이 챙기려 했는지, 보상금만을 노린 계획범죄는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남는다.
20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A(51)씨는 2016년 2월 철도망을 구축한다는 정부 발표 이후 한 달 뒤 아내 명의로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땅 약 1만평을 6억4천만원에 사들였다.
같은 해 7월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은 확정됐다. 혹시 A씨가 애초부터 보상금 또는 땅값 상승을 염두에 두고 매입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정황이다.
이에 연합뉴스가 최근 A씨 땅을 찾아 실제 타운하우스 조성 흔적이 있었는지 파악한 결과 해당 부지에는 주택 4채가 휑뎅그렁하게 남아 있었다.
야외 수영장을 포함한 건물 외관 공사는 모두 마쳐 번듯한 고급 주택의 모습을 갖췄지만, 일부 동에는 마감 등 내부 공사가 다 이뤄진 상태는 아니었다.
타운하우스 초입에 자리 잡은 분양 사무실은 유리가 깨진 채 서류 더미가 어지러이 방치돼 있고, 벽면에는 빛바랜 등기우편 안내문만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창문 너머로 들여다본 사무실에는 타운하우스 조감도와 계획평면도, 공사 계약서를 비롯해 분양 홍보물 등 온갖 문서들이 뒤섞여 있었다.
온라인 위성 지도를 통해 과거 이곳을 들여다본 결과 2014년 7월까지만 해도 풀과 나무로 무성했던 땅은 2017년 3월 굴착기 등 장비가 오가는 공사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후 2019년 8월에는 분양 사무소와 일부 펜트하우스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듬해 4월에는 타운하우스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2019년 12월 '명품 타운하우스 38세대를 분양한다'는 내용의 광고물이 중앙일간지에 게재된 흔적에서는 의욕적으로 명품 타운하우스 분양 사업을 추진했음이 엿보인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곳 타운하우스에 실제 입주까지 한 세대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 주민은 "우선 4채를 먼저 지어놓고 허가받아서 그 옆에 더 지으려고 하다가 철도가 타운하우스 바로 옆을 지난다고 하니까 공사가 중단됐었다"며 "(분양가가) 1채에 13억 정도 하는 집인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1채에는 사람들이 입주까지 했다가 다시 나간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 타운하우스 밖으로 지나던 노선이 이리 틀고 저리 틀더니 타운하우스를 치고 가는 걸로 바뀌어 있었다"며 "철도의 속도 때문에 노선을 바꿨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찾았을 당시 타운하우스 곳곳에는 철도가 지나는 지점을 표시한 색색의 깃발이 듬성듬성 꽂혀 있었다.
타운하우스 주변에 꽂힌 깃발을 끝까지 따라가 선으로 연결해 보니 철도가 지나는 길목과 일치했다.
보상금을 노린 계획범죄가 아니라면 A씨가 '노선 변경' 범행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만평 땅에 거대한 타운하우스 단지를 조성하려던 A씨 꿈이 좌초된 데에는 건물 시행·시공을 담당한 C(49)씨의 사기 행각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사 결과 C씨는 A씨에게 공사 대금을 받고도 작업자들에게 인건비 등을 지급하지 않아 고소당했다.
이밖에 전원주택 분양사기 혐의까지 더해져 징역 5년 6개월의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며, 추가 범행까지 드러나 1심에서 징역 2년을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결국 A씨 입장에서는 타운하우스 사업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철도 사업으로 인해 군청으로부터 추가로 받으려던 건축 허가 역시 요원해진 것은 물론, 철로가 기본설계대로 타운하우스 바로 옆을 비껴간다면 소음으로 인한 땅값 하락과 분양 저조도 우려되는 상황.
그러던 중 2021년 10월 우연히 타운하우스 인근에서 현장 조사를 벌이던 실시 설계 업체 상무이사와 만났고, 이를 계기로 차라리 노선이 땅을 관통하도록 해달라고 청탁했다.
두 사람 간에 2억원이 오갔고, A씨가 원했던 대로 '토지 앞'에서 '토지 관통'으로 변경됐다.
범죄 행각은 2년 만에 수사 기관에 발각되어 단죄가 이뤄졌지만, 철도 사업을 주관하는 국가철도공단은 여전히 A씨의 땅을 지나가는 노선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며 토지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추진할 방침이다.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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