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은 건강 뿐..최악의 투수로 전락한 ‘왕년 에이스’ 코빈, 텍사스서 명예회복?[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코빈은 텍사스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텍사스 레인저스는 3월 19일(한국시간) 베테랑 좌완투수 패트릭 코빈과 계약을 맺었다. '100만 달러 이상'의 낮은 연봉이 보장되는 단년 메이저리그 계약이다.
텍사스는 선발투수 보강이 급했다. 로테이션에 구멍이 생겼기 때문. 왼쪽 팔꿈치에 통증을 느낀 좌완 코디 브래드포드의 개막 로스터 합류가 어려워진 가운데 우완 존 그레이는 '친정' 콜로라도 로키스와 시범경기에서 시속 106.4마일 타구에 오른 손목을 맞아 손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두 명의 선발투수가 이탈한 텍사스는 돌아온 에이스 제이콥 디그롬을 비롯해 네이선 이볼디, 타일러 말레, 유망주 쿠마 로커, 잭 라이터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불안요소가 너무 많았다. 디그롬과 말레는 부상으로 결장한 기간이 길었고 로커와 라이터는 아직 보여준 것이 없는 선수들이다. 결국 텍사스는 FA 시장으로 급히 눈을 돌렸다.
텍사스의 눈에 들어온 선수가 코빈이었다. 코빈은 건강이 보장되는 투수. 더 이상 마운드에 결원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 텍사스는 성적은 둘째치더라도 로테이션을 이탈하지 않을 수 있는 투수를 선택했다.
코빈은 아주 건강한 투수다. 1989년생으로 35세 많은 나이지만 부상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8년 동안 부상이 발목을 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선수다. 2017-2024시즌 8년 동안 빅리그에서 1,336.1이닝을 투구한 코빈은 해당기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4번째로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였다. 코빈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애런 놀라(PHI), 게릿 콜(NYY), 호세 베리오스(TOR) 뿐이었다.
문제는 기량이다. 내구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지만 기량은 정반대다. 코빈은 최근 4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부진한 선발투수 중 하나였다. 2021-2024시즌 4년간 기록한 성적은 126경기 679이닝, 31승 63패, 평균자책점 5.71. 평균자책점 5.71은 해당기간 빅리그에서 300이닝 이상을 투구한 156명의 투수 중 최하위였다.
매년 부진한 코빈이다. 2021년 9승 16패, 평균자책점 5.82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최다패, 규정이닝 평균자책점 최하위에 이름을 올린 코빈은 2022년에는 6승 19패, 평균자책점 6.31을 기록해 2년 연속 메이저리그 최다패 투수가 됐다. 부상 없이 31경기에 선발등판했음에도 워낙 부진한 탓에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152.2이닝)은 덤이었다. 2023시즌에는 10승 15패, 평균자책점 5.20을 기록해 3년 연속 내셔널리그 최다패(ML 최다패는 조던 라일스 17패)를 달성한 코빈은 지난해에는 6승 13패, 평균자책점 5.62로 역시 부진했다.
코빈이 사실상 최악의 투수임에도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며 엄청난 이닝을 소화한 것은 코빈의 소속팀이 지구 최하위권을 맴도는 워싱턴 내셔널스였다는 점과 워싱턴이 투자금 때문에 코빈을 기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코빈은 2019시즌에 앞서 워싱턴과 6년 1억4,000만 달러 대형 FA 계약을 맺었다. 지금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 당시 코빈은 인정받는 에이스였다.
2009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LA 에인절스에 지명된 코빈은 마이너리그 시절인 2010년 여름 댄 해런과 트레이드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로 이적했고 2012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높은 지명 순번에 비해 마이너리그에서 크게 돋보이지 못했던 코빈이지만 빅리그에서는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코빈은 데뷔시즌 22경기 107이닝, 6승 8패, 평균자책점 4.54의 다소 평범한 성적을 썼지만 첫 풀타임 시즌이던 2013년 32경기 208.1이닝, 14승 8패, 평균자책점 3.41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정됐다. 2014년 토미존 수술을 받았고 그 여파로 2015시즌까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코빈은 2016시즌 부진했지만 2017-2018시즌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7시즌 33경기 189.2이닝, 14승 13패, 평균자책점 4.03을 기록한 코빈은 2018시즌 33경기 200이닝, 11승 7패, 평균자책점 3.15를 기록하며 통산 두 번째 올스타에 선정됐다. 강속구 투수는 아니지만 예리한 슬라이더와 타구를 땅에 묶어두는 강력한 싱커를 구사하며 제구력도 안정적이었던 코빈은 2018시즌 탈삼진 능력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렸고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5위에 오르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상태로 FA 시장에 나섰다.
강속구 투수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흠잡을 곳이 없는 활약을 펼친 코빈이었다. 당시 마운드에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맥스 슈어저, 타선에 후안 소토, 앤서니 렌던을 보유하며 높은 곳을 바라본 워싱턴은 코빈으로 우승을 위한 전력의 방점을 찍고자 했다. 그래서 6년 1억4,000만 달러 대형 계약을 안겼다.
워싱턴 합류 첫 시즌은 대성공이었다. 코빈은 2019년 33경기 202이닝, 14승 7패, 평균자책점 3.25, 238탈삼진을 기록하며 직전 시즌과 다름없는 맹투를 펼쳤고 사이영상 투표 11위에 올랐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특히 월드시리즈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워싱턴의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워싱턴 입장에서 코빈은 그야말로 복덩이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코빈은 2020년 단축시즌부터 기량이 급격히 하락했고 매년 부진한 끝에 결국 6년간 170경기 946.2이닝, 47승 77패, 평균자책점 5.11의 성적을 남기고 지난시즌을 끝으로 워싱턴을 떠났다. 2019년 bWAR 5.1, 2020년 1.7의 bWAR를 기록했던 코빈은 이후 4년간 마이너스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를 기록했고 결국 +2.7의 bWAR로 워싱턴 생활을 마쳤다.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진 기량. 향후 전망도 결코 밝지는 않다. 주무기인 슬라이더는 아직 예리하지만 슬라이더를 받쳐줄 공이 없다. 탄착군이 높아진 싱커는 타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고 원래부터 강력하지 않았던 포심은 예나 지금이나 위력이 없다. 지난해 커터를 추가하며 슬라이더의 효율성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 뿐이다. 커터 자체의 위력이 뛰어나지 않은 만큼 슬라이더를 제외한 모든 공이 손쉽게 공략당하는 코빈이다.
싱커를 앞세워 땅볼을 많이 유도한다는 것과 볼넷이 많지 않은 안정적인 컨트롤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세울 것이 없는 코빈이다. 비율 지표도 리그 최하위권이고 리그에서 가장 강한 타구를 얻어맞는 투수 중 하나기도 하다.
몇 년간 최악의 투수였지만 '저렴한' 코빈은 사치세 커트라인에 거의 근접한 텍사스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비록 성적은 아쉬울 수 있어도 건강이 보장되는 선수인 만큼 어쨌든 '계산이 서는' 운영을 할 수 있다. 또 연봉이 낮은 만큼 부상자들이 돌아오거나 신인급 투수들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되면 미련없이 결별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코빈이 준수한 모습을 보인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당장 선발진의 자리를 확실히 채우는 것이 급한 텍사스 입장에서 코빈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주목받는 에이스로 대형 계약까지 맺었지만 최악의 투수로 전락한 코빈 입장에서는 텍사스의 '비상사태' 덕분에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직 35세인 코빈은 유니폼을 벗기에는 다소 이른 나이. 20대 중후반 때의 평가를 회복할 수는 없지만 텍사스에서 어느 정도 반등세를 보인다면 향후에도 '쓸만한 베테랑 투수'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
급하게 손을 잡았지만 서로가 필요한 텍사스와 코빈이다. 과연 이 만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자료사진=패트릭 코빈)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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