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산다] 청도로 귀촌해 서점 운영하는 김인식 대표 | 전원생활

신시내 기자 2025. 3.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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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 만들어준 새로운 기회…청도 스테이온페이지 설립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3월호 기사입니다.

서점을 시작할 때, 모두가 청도에서의 개업을 말렸다. 망할 거라던 우려 속에 어느덧 6년이 흘러 이제 대도시에서도 찾는 서점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김인식 대표는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며 즐겁게 지냈다며 활짝 웃는다.
번아웃으로 결심한 귀촌생활
경북 청도는 인구 4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2024년에는 생활인구 약 32만 명을 기록한 숨은 저력이 있는 지역이다. 이 정도의 생활인구는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 중 경북 1위, 전국 7위를 기록할 만큼 적지 않은 수치다. 많은 사람들이 청도에 살거나 청도를 방문하게 만든 원동력은 지역 곳곳에 자리한 카페, 관광지, 갤러리 등이다.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 위치한 서점 ‘오마이북’은 이런 청도를 만든 공신 중 하나다. 이곳을 찾는 손님의 70%는 울산·부산·대구·서울 등 대도시에서 온다. 얼핏 보면 특별하지 않은 작은 서점이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대구에서 19년간 서점을 운영한 김인식 대표의 노하우와 청도에 귀촌한 후 되찾은 생활 속 활력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스테이온페이지 김인식 대표. 위기를 기회로 바꿔 이곳을 청도의 명물로 만들었다.

하지만 덩그러니 놓인 시골길 한편의 서점이라니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김 대표는 어쩌다 이런 한적한 동네에 서점을 차리게 됐을까.사회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서점 운영’이라는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온 김 대표는 2013년 심각한 번아웃을 겪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서점 일에 몰두하며 1년에 이틀, 명절에만 쉬는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해결책으로 집과 직장을 떨어뜨리고,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하기 위해 귀촌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대구 근처의 달성군 가창면을 알아봤었는데 부동산에서 청도를 추천하더라고요. 땅값이 비교적 싸다고요. 그래서 와봤는데 생각보다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동네가 깨끗하고, 전원주택을 주로 유치하고 있어서 쾌적하더라고요.”

그렇게 가족들을 설득해 청도로 집을 옮겼지만, 첫 1년은 이전과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아침에 대구로 떠나 밤이 돼서야 청도로 돌아오는 녹록치 않은 삶이 이어졌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서점 운영이 느슨해지면서 귀촌 5년째에는 매출이 절반 가까이 하락하는 위기를 맞았다. 서점 운영을 지속할지, 정리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 것이다.

오마이북의 간판. 청도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교통도 편리하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서점이 곧 망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대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죠. 근데 집사람과 애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요. 여기에 너무 적응을 잘한 거예요. 처음에 청도로 오자고 한 게 전데 또 이렇게 마음대로 가자고 하기도 미안해서 그러면 여기서 먹고 살길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오마이북을 차리게 됐습니다.”

서점을 낸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심지어 20년 가까이 거래했던 책 도매상조차 이 거래를 꺼렸을 정도다.

“제가 대구에서부터 거래했던 도매상에서도 여기에는 책을 안 준다는 거예요. 책을 줘도 나중에 상한 책을 잔뜩 반품하지 않겠냐며 걱정했죠. 그러나 이전 대구 서점보다 여기 매출이 더 높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있어요. 누가 여기까지 책을 사러 오겠나 했지만, 그런 예상을 뛰어넘는 공간이 됐습니다.”

오마이북은 북 큐레이션(특정한 주제와 상황에 맞는 책을 선별해 구성하는 ‘책장편집’)보다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보편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서점이다. 그래서 종류가 많지는 않아도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관심을 가질 책들이 고루 구비되어 있다. 또한 모든 책을 제한 없이 마음껏 읽을 수 있어 편하게 방문하기 좋다.

새로운 도전이 만들어준 기회
오마이북은 2023년 단순한 서점을 넘어 ‘스테이온페이지(STAY ON PAGE)’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약 800평(2644m²)에 이르는 이곳은 4개의 건물로 이뤄졌는데 대표 시설인 서점 겸 카페 ‘오마이북’을 비롯해 게스트 하우스 ‘오마이게스트’, 북 스테이(숙박 시설) ‘스테이온페이지’, 양식당 ‘오마이쿡’, 중고 서점 ‘오마이아지트(심야 책 바(BAR))’, ‘중앙정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오마이북 내부. 이곳에서는 카페에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가는 손님도 제법 많은 편이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다양한 시설을 구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층 건물에 절반은 아내의 공간으로, 나머지 절반은 김 대표가 서점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다 설계 과정에서 점차 욕심이 났다. 결국 세 개 층이 됐고, 1층은 서점, 2층은 카페와 게스트 하우스, 3층은 김씨 부부가 지내는 살림집으로 지어졌다.

2층에 있는 오마이게스트는 숙박업 경험이 없는 김씨 부부가 반신반의하면서 준비하여 2019년 완공한 이후 오픈을 6개월간 고민했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지면서 국내 여행 인기가 높아졌고, 그사이 ‘괜찮은 북 스테이’로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이가 늘어났다.

현재와 같이 4개 건물이 들어선 것은 2022년 ‘스테이온페이지’를 건축하기 위해 오마이북 뒤편 공터를 매입하면서부터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토지 금액과 건축비가 부담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를 회상하면 즐거웠다는 기억이 먼저 튀어나온다.

“스테이온페이지를 지을 때 생각보다 많은 돈을 대출받게 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어요. 그래서인지 당시는 대구 서점도 처분하고, 살던 집도 다 팔아서 수중에 가진 돈은 없었는데 모든 것이 다 즐거웠어요. 이제 더 하고 싶은 게 없을 정도예요.”

스테이온페이지의 각 객실은 예술, 마케팅, 시, 소설 등의 도서를 주제로 꾸며져 있다. 특히나 시 테마 객실은 ‘문학동네’ 시집을 오브제와 같이 진열해두어 인증 사진 명소로도 유명해졌다. 객실 내부는 경사를 살려서 지어 입구에 들어서면 방 안으로 몇 걸음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데, 덕분에 제법 아늑하면서도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의 하룻밤을 기대하게 만든다.

스테이온페이지 객실 내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지만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오마이아지트도 특색 있는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이곳은 낮에는 중고 서점으로, 밤에는 술을 판매하는 바로 변신한다. 크기가 넓지는 않지만, 중정과 마주 보는 통창이 있어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 좋은 분위기다. 이곳에서 파는 중고 책은 방문객에게 1권당 커피 한 잔을 제공해 모은 것들이다. 되팔 때는 1만 5000원 이상의 책은 권당 5000원, 1만 5000원 이하는 3000원을 받는다. 이 판매 금액은 잘 모았다가 청도에 도움이 필요한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인이 된 김 대표의 자녀가 이곳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점차 가족 사업으로 변모 중이다. 첫째는 서점에서, 둘째는 오마이쿡에서 각각 부모님을 도우며 일을 배우는 중이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죠. ‘이 가게는 아빠 손에서 끝날 곳이 아닌 것 같다. 서점에서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랬더니 흔쾌히 수락하더라고요. 큰아이가 지금 스무 살인데 여기서 10년만 일해도 서른 살이에요. 그 정도면 아직 어린 나이니 무엇이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이 경험이 큰 자산이 되리라 믿어요.”

대를 이은 영업 덕분에 김 대표는 또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사실 제가 내년에 은퇴합니다. 서점은 자식들이 운영하고 저는 소박한 느낌으로 시골집에 살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작은 단층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사는 로망은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번아웃에서 벗어나 휴식을 위해 대구에서 청도로 귀촌했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훌륭히 일궈낸 김 대표이기에 분명 평범한 은퇴는 아닐 것이라는 기대가 드는 답변이었다.

글 신시내 기자 | 사진 임승수(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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