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만의 토허제 회군, 무엇이 오세훈 조급증 불렀나
전격적이었던 재지정
배경과 맥락 살펴보니
서울 강남일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을 풀었던 서울시가 한달만인 19일 허가구역으로 재지정하고 용산구까지 새로 허가구역에 포함시켰다.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을 반영한 고육지책이다. 허가구역을 해제하고 다시 지정하는 모든 과정을 주도한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서울시 안에서는 오 시장이 토허구역 해제에 "성급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장직을 네 차례 수행하면서 '서울행정의 달인' 소리를 들어온 오 시장은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그의 주변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가능성이 높아진 조기대선 때문으로 좁혀진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는 '규제철폐'를 자신만의 브랜드로 만드는 일에 더욱 몰두해왔다.
성장론자들에게 규제는 보통 암덩어리로 비유되곤 한다. '다시 성장이다'는 신간으로 대선 출사표를 쓴 오 시장에게 규제 철폐는 정의 구현으로 등치돼 있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역시 규제철폐의 좋은 땔감이었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토허구역은 대선주자로서 오 시장이 집중 공략해야할 강남 지역에 지정돼 있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할 지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국면을 거치면서 당심과는 괴리가 생긴 오 시장은 당내 경선에서 이기기위해선 여당의 심장과도 같은 강남지역 민심을 얻어야하는 처지였다.
오 시장이 서둘렀던 또 다른 이유를 그의 '의인 콤플렉스'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토허제라는 앓던 이를 방치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따라서 자신만이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토허제 때문에 재산상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민들의 말을 현장에서 듣고 토허제 지정 해제를 결심했을 것이고, 그 결심은 약속이 됐고, 그 약속은 지켜야했다는 것이다.
사실 타이밍만 맞았다면 토허구역 해제 만으로도 그는 그 지역의 영웅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이밍은 최악이었다.
지난해부터 낮아진 기준금리와 대출금리 등으로 인해 올해 초 유망지의 아파트 매매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건조주의보가 발령되기 직전에 불쏘시개를 던진 것 마냥 토허구역 해제는 산불로 커졌다.
용산의 부동산 중개인도 "토허제 해제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불황이 끝나고 점차 안정기를 찾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 내부에서도 토허제 폐지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수 있다는 부정적 여론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 시장의 굳은 의지를 파악한 어느 누구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호기롭게 토허제를 없앤 오 시장은 그러나 정확히 35일만에 무릎을 꿇었다.
자기확신으로 가득차 있던 오 시장의 의지를 대체 무엇이 꺾었을까?
부동산 때문에 정권의 종말을 여러 차례 목격했던 집권당이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오 시장을 돌려세웠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해 보인다.
실제로 오 시장은 토허제 해제 이후 과열 신호가 감지됐을 때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어보였다.
눌렀던 스프링에서 힘을 거두면 일시적으로 튀어 오르는 스프링 효과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서울시도 오 시장의 입장에 맞춰 토허제 폐지 이후 오히려 가격이 떨어진 곳도 있고 거래량도 소폭 증가됐을 뿐이라는 자료를 내며 적극 대응했다.
오 시장은 회군 이틀 전인 17일 TV조선에 출연해서도 결정을 철회할 뜻이 없다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따라서 이날 토허제 재지정은 온전히 그의 뜻으로 보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배경이야 무엇이건 이번 토허제 사태는 여러 숙제와 상처를 남겼다.
용산구의 부동산 중개인은 "토허제 재지정으로 부동산 거래 절벽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부동산 경기가 다시 암흑기를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계약단계에 들어와 있던 매매거래가 갑작스런 제도상의 지각변동으로 올스톱되면서 연쇄적인 문제를 낳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투기성 거래가 토허제 지정에서 제외된 마포나 성동 등으로 몰릴 가능성도 남아있다.
무엇보다 부동산 문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패신화로 굳어지게 된 것도 국가적 손실로 남게 됐다.
오 시장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태가 대선 가도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관리해야할 새로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그나마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전격적으로 회군을 결정한 건 다행스런 일이다.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줄 아는 용기가 있어서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기회에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동산 문제 뿐 아니라 서울시의 앞으로의 정책결정에서 이번과 같은 실수는 반복되지 않도록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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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권민철 기자 twinp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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