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우의 세상 땜질] 사무직에서 다시 조선소 현장직으로

천현우 용접공·작가 2025. 3. 1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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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그만두고 콘텐츠 기업서 사람 대하며 말하고 듣는 법 배워
배 만드는 현장 복귀했더니 말귀 잘 알아듣고 실수 확률 줄더라
‘사무실서 쌓은 기술’ 현장서도 잘 통해… 인생 2막 두려워 말라
일러스트=이철원

3년 전 콘텐츠 만드는 회사에 스카우트됐다. 10년 가까이 공장으로만 출근했던 나에게 첫 사무직이었다. 가서 주어진 일을 잘해냈냐면, 아니었다. 콘텐츠 제작은 공장에서 물건 만들기와 개념이 아예 달랐다. 파는 주체부터 회사가 아닌 이용자들이었다. 결과물도 물건의 형태인 ‘제품’이 아니라 형태가 없는 ‘콘텐츠’였다. ‘불량 제품’은 발견하기 비교적 쉽지만 ‘불량 콘텐츠’는 잡아내기가 훨씬 어렵다. 불량 판별을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며 품도 많이 든다. 언론인들의 보도 원칙이나 보도 윤리 또한 불량 콘텐츠를 내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들이다. 또한 제품은 불량을 안 내면 그만이지만, 콘텐츠는 불량‘만’ 안 냈다고 해서 훌륭한 작품도 아니다. 잘 안 팔리면 그 또한 내겐 불량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에만 집중해도 엉망인 마당에 지켜야 할 규칙이 훨씬 많았다. 아무래도 남성만 있는 일터, 내 할 일만 잘하면 그만인 공장보다 말, 복장, 몸가짐, 행동거지에 훨씬 신중해야 했다. 문제는 내가 남중, 남고, 공대, 공장을 거쳐 왔던지라 이 분야 지식이 거의 원시인 수준이었다. 친절한 동료들과 선배들이 일일이 가르치며 사람 만들어 놓느라 고생했다.

하지만 단순 지식은 금방 머리에 들어오지만 몸에 배기까진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선배들이 내게 붙인 별명이 천방지축, 천둥벌거숭이였다. 현장직 할 때는 왜 청년 우울증이 ‘사회적 문제’까지 갔는지 공감할 수 없는데 사무직 하면서 금방 깨달았다. 떳떳한 날보다 부끄러운 날이 더 많은 일상 속에선 누구나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더라.

3년 만에 다시 현장직으로 돌아왔다. 블루칼라 중에서도 힘들기로 손꼽히는 조선소 탑재 일. 틀이 완성된 배 안에 직접 들어가서 하는 작업이다. 일 시작한 지 두 달 넘었다. 사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잘 어울리고, 크게 욕 안 먹고, 몸이 좀 힘들어도 마음은 편안하게 일하고 있다. 조선소의 사나운 형님들과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의외로 사무직 경험 덕이었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취재가 필요했다. 취재하려면 결국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창원에서 32년보다 서울에서 1년 동안 월등히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 과정에서 10대 어린이부터 80세 노인한테까지 공통으로 호감 살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사람이라면 모두 웃는 낯에 침 뱉기 어렵고, 먼저 사과하면 야단치기 힘들다. 공손한 태도에 호감을 느끼며, 맞장구 잘 치는 사람한테 친숙함을 느낀다. 다양한 사람과 만남을 반복했더니 어느새 처세가 자연스레 익숙해져 있었다.

말의 맥락을 헤아리는 능력도 늘었다. 신입 사원들한테 흔히 ‘잘하려고 욕심부릴 필요 없다’는 말을 한다. 맞다. 선배 중 그 누구도 신입 사원이 잘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 정도만으론 무슨 말의 의미가 다소 모호하다.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좀 더 정확한 속뜻이 보인다. “마이너스를 만들지 말라.” 가령 내가 배 안을 배회하다 한 시간을 허비했어도 큰 타박 안 듣는다. 기껏해야 선배한테 “정신 똑바로 못 차리나!” 정도 소리만 듣고 끝난다.

예전엔 현장 사람들이 질문을 귀찮아하리라 생각했다. 일하기도 힘든데 대답까지 할 시간이 어딨나 싶었다. 이젠 질문을 달고 산다. 아침마다 반장님이 업무를 할당해주면 메모장에 쓰고 꼭 다시 물어본다. 그렇게 해도 말귀 못 알아먹는다는 소리 한 번도 안 들었다. 선배들은 자기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 노력하는 후배를 싫어하지 않는다. ‘마이너스가 날 확률’을 현저히 낮춰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고 나니 초짜한테 용접을 좀처럼 잘 안 시키는 이유도 알겠더라. 용접은 불량을 냈을 때 되돌리기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나 또한 목표를 우선 ‘훌륭한 용접사가 되기’가 아니라 ‘복구에 큰 품이 드는 사고 치지 않기’로 설정했다. 당장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일단 버텨야 경력이 생기니 말이다.

바야흐로 평생 직장이 없는 시대다. 사무직 관두고 현장직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분도 많다. 큰 결단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감히 한마디 드리고 싶다. 사무실에서 쌓은 기술은 현장에서 무의미하지 않다. 현장직 또한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는가. 사람을 많이 대했던 경험으로 현장 일 또한 충분히 잘해내실 수 있다. 새로운 시도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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