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이은화의 미술시간]〈362〉

이은화 미술평론가 2025. 3. 1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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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방 안에 푸른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푸른색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림 속 방은 그녀의 어머니가 실제로 쓰던 방이고, 아이는 당시 여덟 살이던 딸 헬가다.

안셰르의 엄마는 남편과 함께 호텔을 운영하면서 여섯 자녀를 낳아 길렀는데, 유독 막내인 안셰르에게 헌신적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 속 성모의 몸이 아이를 향한 건, 딸을 지켜주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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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방 안에 푸른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푸른색 의자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책 표지도 푸른색이고 벽에 걸린 그림 속 성모도 푸른 옷을 입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는데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뜨개질에만 집중하고 있다.

아나 안셰르가 그린 ‘푸른 방의 햇빛’(1891년·사진)은 이렇게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안셰르는 덴마크 최북단의 어촌 마을 스카겐 출신으로, 당대 가장 혁신적인 화가로 손꼽힌다. 그림 속 방은 그녀의 어머니가 실제로 쓰던 방이고, 아이는 당시 여덟 살이던 딸 헬가다. 1870년대부터 스카겐은 북유럽 화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예술공동체를 이뤘는데, 이들을 ‘스카겐화파’라고 부른다. 이들이 머물던 스카겐의 유일한 호텔이 바로 안셰르의 집이었다.

안셰르의 엄마는 남편과 함께 호텔을 운영하면서 여섯 자녀를 낳아 길렀는데, 유독 막내인 안셰르에게 헌신적이었다. 여성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는 것도, 화가가 되는 것도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미술에 재능 있는 딸을 사설 미술학교는 물론이고 파리 유학도 보내줬다. 딸이 동료 화가 미샤엘 안셰르와 결혼해 출산한 뒤에는 딸의 작업 시간 확보를 위해 가족 식사를 호텔에서 하게 하고 손녀 육아도 도맡았다. 그런 엄마의 헌신 덕에 안셰르는 결혼 후에도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림 속 헬가는 할머니에게 배운 뜨개질에 푹 빠져 있는 듯하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화가 엄마는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 화폭에 담았다. 평범한 일상의 장면인데도 다양한 파란색의 변주가 매혹적이다.

강한 햇살이 비치는 창밖은 이 아이가 나아갈 세상에 대한 암시일 테다. 벽에 걸린 그림 속 성모의 몸이 아이를 향한 건, 딸을 지켜주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일 테고. 헬가는 자라 덴마크 최고의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엄마를 이어 화가가 됐다. 할머니와 엄마의 사랑과 헌신 덕분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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