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39> 채용신 필 산수도(山水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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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그림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특히 초상화는 당시 권력과 지위의 상징으로, 많은 화가가 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부산박물관 소장 채용신의 산수도는 그의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채용신이 초상화 외에도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조선 후기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의 미술사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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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그림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특히 초상화는 당시 권력과 지위의 상징으로, 많은 화가가 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중에서도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은 조선 후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초상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어진을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재능은 초상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산수도는 그의 다재다능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부산박물관 소장 채용신의 산수도는 그의 중요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사대부가의 사랑채와 후원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구성으로, 담장을 경계로 상단에는 멀리 펼쳐진 산수가, 하단에는 후원의 풍경이 담겨 있다. 후원에는 강가를 바라보는 선비와 마당에서 비질하는 동자, 사슴과 학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며, 마당 한켠에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화단에는 흰색 국화가 가득 피어 있다. 그림 위쪽에 쓰인 제발(題跋)을 통해 이 작품이 임자년(1912) 6월 하순경 도연명의 고사를 염두에 두고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자연과 소박한 삶을 사랑했던 중국의 시인으로, 그의 시에서 소나무와 국화는 은일의 표상이자 자연과 전원생활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채용신의 산수도는 이러한 도연명의 철학을 반영하며 한가롭고 평온한 일상의 서정을 담고 있다.
채용신은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삶은 단순히 화가로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22세에 흥선대원군의 초상을 그리며 화가로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무과에 급제해 무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 전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그림에 집중하였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초상화뿐만 아니라 산수화, 화조영모화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었다.
특히 은퇴 후 제작된 그의 그림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우국지사나 도학자의 초상으로 대가 없이 그려진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의뢰를 받아 제작된 주문 그림이다. 후자는 근대 직업 화가의 출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으며 사회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채용신의 산수도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당시 사대부 문화와 이상향을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들은 채용신이 초상화 외에도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조선 후기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의 미술사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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