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은 무지의 소산? [김민형의 여담]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스코틀랜드 작가 뮤리얼 스파크의 소설을 1969년에 영화화한 ‘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는 작게는 1930년대 에든버러, 크게 보면 그 당시 유럽의 정치·사회적 위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시대극이다. 도시의 사립 여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일상적인 공부와 낭만, 선생님들 사이의 교제와 갈등, 에든버러의 고풍스러운 도시 전경 등 여러 요소가 조화롭게 합쳐져서 줄거리를 이끌어 가지만 영화의 진짜 주제는 유럽 파시즘의 부상이다. 주인공 진 브로디는 개성미가 넘치는 열정적인 교육자로서 수업과 생활에서 극적인 말씨와 우아한 품성으로 학생들의 지적, 문화적 본성을 자극하는 특이한 소질의 소유자이다. 그는 예술적 감수성을 중시해서 미술과 음악은 물론, 교육의 모든 면을 극도로 창의적으로 꾸며야 한다는 신념이 투철하다. 가령 그에게 역사는 영웅심과 낭만으로 가득한 모험담이지 학구적 연구 대상이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기계적인 사고 영역인 수학 수업은 당연히 교육 정책이 강요하는 시간 낭비다. 진 브로디는 영국 시인 존 키츠처럼 진리와 아름다움을 동일시하는 세계관을 끊임없이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심어 주는 인기 선생님이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진 브로디와 어린 학생들의 개인 감수성을 조명한다. 많은 관람객이 영화를 사춘기 여학생들의 수다와 감정적인 격동이 빚는 교정 드라마 정도로 기억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성장하며 점점 밝혀지는 어두운 배경이 진 브로디는 무솔리니와 프랑코를 진심으로 숭배하는 파시스트라는 사실이다. 굳이 분석하자면 진 브로디의 교육철학은 이성을 의심하고 감성을 강조하며 유럽의 예술적인 문화유산이 과학 문명이 팽배한 현대에 평가절하되는 조류를 정열적으로 비판한다. 작가는 진 브로디 선생의 매력과 무솔리니나 히틀러의 카리스마를 직접 비교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보통의 묘사와 다르게 이 영화의 주인공 파시스트는 난폭한 악당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극도로 문화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무렵의 사회 양상을 그린 수많은 영화 중 괄목할 만하다.
정치와 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불가분의 관계라고 인식됐지만 20세기 유럽에서 두개의 세계대전, 그리고 나치즘과 파시즘을 겪으면서 이 주제를 사회적으로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의 원흉을 일시적인 야만성으로 여겨버리면 편하겠지만 당연히 그보다 훨씬 복잡한 인간-사회-경제-문화적 요소들이 엮여 비극을 창출한다. 자기 자신을 야만으로 간주하는 침략자는 없다.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을 꿈을 국민에게 선포했고 나치는 독일인이 고대 그리스의 후예라는 억지스러운 소설을 공식화하면서 기이한 역사적 향수를 지배 이념에 반영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에 매료된 지성인과 예술인이 많았던 것은 쉽게 분석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지만 이상화한 과거에 대한 향수, 그리고 현대 문명 혐오가 공통점으로 작용한 것만큼은 거의 분명한 것 같다. 근대 유럽의 가장 무서운 정치 사조들과 이른바 ‘고급’문화의 밀접한 관계는 지식인들이 정직하게 바라보기 어려워하는 역사적 현실이다.
지금 미국 정치의 양극화 역시 문화적 갈등의 효과로 인식된 지 오래다. 교육, 종교, 인간관계 등을 관할하는 수많은 시대의 움직임에 개인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사회 계층과 파벌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정치판의 대립으로 표현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인물이 지금 특히 ‘문화적 다양성’과 관련한 모든 정책과 사회 풍조를 공격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가끔 진보 진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쪽 인물들의 무지에 많은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트럼프와 부통령 제이디 밴스 그리고 정부효율부를 지휘하는 일론 머스크, 이들은 모두 미국의 명문 대학을 나왔다. 트럼프의 ‘실리콘밸리 동료’로도 불리는 사업가 피터 틸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들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을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로 꼽는다.
파시즘의 근원은? 몇몇 요소만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은 아무리 저명한 사상가의 주장이라도 의심하고 보아야 한다. 사회적 재앙을 무식의 소산으로 간주해버리려는 유혹이 지식인들 사이에 특히 흔하다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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