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이후의 헌법] ③ 정치의 사법화 다음 사법의 무력화

이범준 2025. 3. 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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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주도해 일으킨 12‧3 내란은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파괴했다. 이 때문에 탄핵 소추되어 파면되게 됐지만, 그와 추종 세력은 지금도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 이들이 무너뜨리고 있는 헌정 질서는 쉽게 회복되기 힘들다. 헌법과 국가가 어떻게 부정되고 있는지를 연속 보도 <윤석열 이후의 헌법>에서 점검한다.

① 윤석열 파면 이후 60일 안에 대통령 선거 없을 수도
② 윤석열 석방과 검찰의 미래
③ 정치의 사법화 다음 사법의 무력화

2000년대 등장한 정치의 사법화 문제

정치의 사법화란 정치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기관에 미루는 현상을 가리킨다. 2000년대 들어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컸다. 주요한 사회 분쟁을 정치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보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령 2019년 최저임금 8350원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한 적이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을 8350원으로 고시한 것이 중소상공인의 재산권, 영업의 자유, 계약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소송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2019년 최저임금은 예년의 최저임금 인상률에 비교하여 그 인상 폭이 큰 측면이 있다. 그러나 명백히 불합리하게 설정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2017헌마1366, 2018헌마1072)라며 합헌을 결정했다. 이때는 최저임금이 너무 많다는 소송이었지만, 너무 적다는 소송도 당연히 가능하다. 이 소송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헌재가 최저임금을 정하게 된다.

이런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전종익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2015년 논문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권리침해 문제가 아닌 국가공동체의 주요 현안, 특히 집단 간에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이해가 상충되는 문제에 대한 갈등이 생겼을 때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를 통하여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했다. 이유는 “사법적인 결정으로 공식적인 분쟁상태 자체는 해소될 수 있으나 갈등상태가 잠복되어 있는 경우 이는 얼마든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를 수 있다”라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정치를 사법화한 주체는 던진 사건을 받은 사법기관이 아니라 사건을 보낸 사회와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헌법재판소가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탄핵심판, 정당 해산, 권한쟁의는 헌법 제111조가 부여한 권한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출처:연합)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 기능 무력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의 사법화 양상이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결정을 사법기관에 미루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헌법재판소 행세를 했다. 헌법을 마음대로 해석해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제한 권한이 아니라는 게 헌법학계의 오랜 해석이다. 이유는 입법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애초 법률안 거부권은 대통령에게 법률안 제출권이 없는 미국에서 유래한 제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에게 법률안 제출권이 있으므로, 입법권을 위협하는 법률안 거부권은 한계가 정해져 있다고 헌법학자들은 설명한다. 고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도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바, 이는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견제의 정도를 넘어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라고 했다(김철수, 헌법학신론, 2013).

이러한 지적이 있는데도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거부권을 11번 행사한 바 있고, 최근 이스라엘 안보 원조 지지 법안 역시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라고 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대통령 직무대행들에까지 이어져 한덕수 권한대행, 최상목 권한대행까지 줄줄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부는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 있는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내란죄 특별검사법 같은 자신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위헌성이 중대한 행위라고 헌법학자들은 지적한다.

심지어 최상목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까지 무시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정계선‧마은혁‧조한창 가운데 마은혁에게 임명장을 주지 않았다. 이러한 임명거부가 위헌이라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했지만, 여전히 시간을 끌고 있다. 이렇게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무시하다 보니, 헌법에 규정된 것은 일단 어겨도 상관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가령 한덕수 권한대행이 국회 선출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일을 두고도, 헌법재판소 결정도 있던 것이 아니니 위헌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헌법재판소가 결정 전까지는 헌법의 모든 조문이 무력화하는 것인데,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사법의 무력화가 시작되고 있다.

뉴스타파 이범준 seirot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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