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팔고 책임도 팔았나?”.. 특급호텔 ‘밀실매각’에 터진 분노
“코로나 보릿고개를 버텨냈더니 이번엔 ‘밀실매각’이라니요.직원이 물건인가요?”
제주 관광 산업의 상징적 랜드마크였던 특급호텔이 해외자본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DL그룹의 ‘밀실매각’ 논란이 불거지며, 급기야 고용 불안에 내몰린 근로자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가뜩이나 내수 경기 침체로 흔들리는 지역경제에, 잇따른 특급호텔 매각 사태까지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 “밀실매각 중단하라”.. 근로자들 거리로 나서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19일 오전 10시, 메종글래드 제주호텔 앞에서는 DL그룹의 호텔 매각에 반발하는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글래드호텔앤리조트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노동조합은 “DL그룹이 근로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밀실매각을 강행하고 있다”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근로자들은 매각 이후 고용 보장과 근로조건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노조 관계자는 “DL그룹은 밀실매각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직원들의 고용 보장을 위한 투명한 협의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DL그룹은 서울의 글래드 여의도, 글래드 강남 코엑스센터와 함께 제주의 대표 특급호텔인 메종글래드 제주를 싱가포르투자청(GIC)에 매각하는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매각 절차는 이미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진행된 상태로, 3곳 호텔의 매각가는 약 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 제주 관광 회복세에도 잇따른 호텔 매각.. 왜?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며 제주 관광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잇따른 특급호텔 매각 사태는 이러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4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약 1,637만 명으로 전년 대비 48.4% 증가했습니다.
서울 시내 주요 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코로나 이전 수준인 80%대를 완전히 회복할 만큼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제주의 사정은 전혀 다릅니다.
제주자치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올해 1~2월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약 161만 명으로, 전년 대비 27% 급감했습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숙박시설 과잉 공급 문제가 겹치며 지역 호텔업계의 전반적인 수익성 악화는 심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에 따르면 제주 지역 내 객실 수는 관광객 수 대비 3만 2,000실 정도 초과 공급된 상태로, 이는 제주 관광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관광객은 줄고, 빈방만 남는 기형적 시장 구조 속에서 특급호텔들이 ‘매각 도미노’에 휘말리고 있는 셈입니다.
■ DL·KT·롯데까지.. 대기업들이 호텔을 팔아치우는 이유는
호텔을 보유한 주요 대기업들은 ‘지금이 적기’라며 매각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DL그룹의 경우 건설·화학 등 주력 사업의 실적 악화로 비주력 자산인 호텔 매각에 나섰습니다.
KT는 인공지능(AI) 등 신성장 동력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의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등 5성급 호텔 매각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습니다.
롯데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롯데지주를 컨트롤타워로, L7 홍대 등 주요 호텔 매각을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들 대기업들이 호텔업황 회복을 기회 삼아 ‘몸값’이 높아진 지금을 매각의 적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고용 불안에 흔들리는 관광 최전선
연이어 제주 특급호텔들이 매물로 나오면서 근로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투자자들이 인수에 나설 경우, 국내법상 고용보장 의무가 약화되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DL그룹이 매각을 추진 중인 메종글래드 제주는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특급호텔 중 한 곳으로, 제주시 연동 2만 4,745㎡ 부지에 1978년 개관했습니다.
1986년 대림산업이 인수해 40년 가까이 운영하며 제주 관광 산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온 곳으로 수십 년간 묵묵히 한자리를 지켜온 직원들에게는 직장이상, ‘삶의 터전’과 다름없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한 직원은 “호텔이 팔리고 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 ‘관광 1번지’ 제주.. 흔들리는 지역 경제, 깊어지는 우려
특급호텔 매각 사태가 제주 지역 경제에 미칠 파장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제주도관광협회 관계자는 “상품 구성이나 즐길 거리 부재는 제주 관광의 고질적 약점인데, 특급호텔 매각 사태는 이 문제를 더.심화시킬 수 있다”라며, “그냥 ‘호텔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호텔을 기반으로 형성된 지역 상권과 소상공인들의 생계까지 휘청일 수 있다”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제로 제주도는 지난해 관광 산업 회복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가동하며 관광객 유치와 이미지 개선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특급호텔이 줄줄이 매각되는 상황 속에서 관광업의 경쟁력 회복은 더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 ‘밀실매각’ 논란.. 제주 관광산업의 중심에 선 “근로자 보호가 먼저다”
기업의 자산 유동화는 재무 전략상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외면한 채 강행되는 매각은 단순한 자산 정리가 아닌 ‘책임 방기’일 뿐입니다.
제주 관광 산업의 진짜 기반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그 안에서 수십 년간 묵묵히 일해온 사람들입니다.
근로자들의 삶이 무너진다면, 제주 관광의 미래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기업들이 매각 이유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근로자 보호와 지역 사회와의 상생에 대한 책임을 먼저 실천해야 한다”라며 “관광의 재도약은 화려한 인프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삶’과 ‘노동’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재도약이 가능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제 ‘관광 1번지’ 제주에는 ‘빈방’만 남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라면서, “기업들이 ‘자산 정리’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제주 관광 산업의 진정한 재건은 ‘사람을 지키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제주 관광의 위기는 ‘빈방’이 아니라 ‘빈자리’에서 시작된다며, “기업들이 ‘이익’보다 ‘사람’을 지키는 책임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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