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민감국가, 별일 아니다"? 30년 전엔 '총력 대응'
미국이 한국을 에너지 안보상 주의를 필요로하는 민감국가로 지정한 데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부는 17일 뒤늦게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습니다. 야당 주장처럼 핵무장론 때문에 조치가 이뤄진 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외교부는 "과거에도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됐다가 미국 측과의 협의를 통해 제외된 선례가 있다"며 민감국가 해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하진 않았습니다.
과거 한·미 간에 민감국가 지정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JTBC 팩트체크팀이 1993년 12월 처음으로 개최된 '한·미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앞두고 양측 간 오갔던 수백 쪽의 문건을 확보해 분석했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미국 에너지부(DOE)의 민감국가 규제가 의제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내부규정 개정을 검토기로 했으며 이후 있을 회의(1994년 원자력 상설위)에서 결과를 통보하겠다"는 답을 받아냈습니다.
다음 해 7월 미국은 공식적으로 한국을 민감국가에서 제외했습니다.
① 민감국가 지정, 별일 아니다?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 대리는 18일 "민감 국가 지정이 큰 문제인 것처럼 상황이 통제 불능이 된 것은 유감이다. 그런데 이건 별일이 아니다(it's not a big deal)"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 우리 정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당시 주미대사였던 한승수 전 국무총리는 한국이 이 규정으로 엄격한 방문절차를 적용받고 있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미국 에너지부 내부규정에 관한 검토, 과학기술처, 1993년 11월.

한국에 대한 민감국가 규제가 오는 4월 시행되면 미국과 공동연구를 하려는 연구진은 이력서 등을 45일 전에 사전 제출해 신원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특정 연구소나 시설에 접근하는 경우, 2년마다 정보조회도 거쳐야 합니다.
연구 목적이 아닌 단기 방문 요청에 대해서도 언제든 거절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관련 규제는 비슷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선 별일이 아닐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선 '별일'일 수 있습니다.
당시 과기처는 "원자력연구소간 인력교류나 공동연구 등의 협력과 관련, 우리 기술자들이 DOE(에너지 부) 및 산하시설을 방문하고 이용하는데 있어 내부 규정이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② 한국 민감국가 지정, 왜?
당시 우리 정부는 한·미 간 처음으로 열릴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앞두고 '중점관리 대상국(sensitive country, 민감국가) 규제'를 의제로 추진하기로 결정합니다.
외무부를 중심으로 열린 정부 대책회의에서 과기처는 "미 에너지부는 1981년부터 내부 규정을 시행 중이며, 우리나라는 1981년 1월 5일 규정 최초 시행 때부터 포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민감국가에 포함됐는지 공식 문건으로 확인된 건 처음입니다.
199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미 에너지부(DOE)에서 민감국가로 분류한 50개 국 중 북한과 함께 '고위험국가(highly sensitive country)' 38개국에 속해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당시 미국은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해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부에서도 플루토늄 실험 등 관련 계획은 이어졌습니다.
1993년 첫 문민정부(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 배경을 "핵무기개발과 관련해 1970년대 우리 핵정책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전략을 세웠습니다.
회의를 앞두고 미국 측에 '비공식 문건(non-paper)'을 보내 미국이 1981년 규정 시행 후 56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다가 1992년 2월 50개로 줄이고도 우리나라를 리스트에 남겨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설명합니다.
- 1993년 12월 6일, 외무부가 미국 측에 보낸 '비공식 문건' 중

③ 민감국가 지정 제외, 수월하다?
물론 2025년 현재 시점에서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배경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 우리 정부는 사전에 그 이유를 파악하고 각 부처가 함께 대책회의를 열어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우리 측 입장의 근거로 무엇을 앞세울지, 미국의 반응은 어떨지, 이후 우리 측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충분히 검토했습니다.
당시 회의록에는 미국 측이 '다른 회의(한·미 원자력 상설위)에서 협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거나, 'DOE(에너지부)의 내부규정일 뿐이며, 연방 정부기관의 정책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할 경우' 또는 '그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를 DOE 측과 협의한 후 통보해 주겠다'라고 할 경우 등의 예상 시나리오가 담겼습니다.
동시에 우리 측은 '필요하다면 원자력 상설위에서도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거나 '연방 정부기관의 정책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제의 양국협력에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논리로 대응할 것이라는 계획도 있습니다.
민감국가 지정 이후 사태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우리 정부의 현재 모습과는 딴판입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곧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으로 날아가 에너지부 장관과 만납니다. 우리 정부가 30년 전의 그때보다 더 단단한 준비가 돼 있을지 의문입니다.
(자료조사 및 취재지원 : 박진희 조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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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링크를 통해 기사 검증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jazzy-background-202.notion.site/JTBC-1659eb1c5fb380599e2debacf70a776a?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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