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매머드 털 가진 털북숭이 생쥐의 진실
66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로 공룡의 시대가 끝나고 시작한 포유류의 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수유와 정온성 등 몇 가지 공통 특징을 지닌 포유류는 적도에서 극지방까지 다양한 환경에 맞춰 진화하며 종분화와 멸종을 거쳐 오늘날 5400여 종에 이르고 있다.
포유류의 놀라운 특성 가운데 하나가 엄청난 덩치 편차로, 작게는 몸무게가 2g에 불과한 사비왜소땃쥐에서 크게는 150t에 이르는 대왕고래까지 무려 여덟 자릿수나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체온을 비롯해 여러 생리 지표가 비슷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실험에 동원된 포유류 가운데 보통 가장 작은 종이 몸무게 25g 내외인 생쥐이고 가장 큰 종이 5톤 내외인 코끼리다. 그래도 여전히 다섯 자릿수가 차이가 난다.
포유류 생리 지표 비교 실험 결과 가운데 특히 흥미롭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게 일생 동안 뛰는 심박수가 대략 10억 회 내외로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생쥐의 심박수는 분당 500~700회이고 코끼리는 25~35회인데 수명은 생쥐가 2년, 코끼리가 70년 내외이니 생쥐는 평생 약 6억 회, 코끼리는 약 11억 회 뛰는 셈이다. 오히려 사람이 약 30억 회로 예외다.
● '매머드 생쥐'라고 부를 수 없다?
최근 과학자들이 생쥐의 매머드 버전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포유류 양극단의 두 종이 닮은꼴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물론 생쥐도 털에 덮여있지만 사진 속 노란 '털북숭이 생쥐'는 정말 매머드가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털북숭이 생쥐가 나온 과정은 더 인상적이다.
고게놈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털매머드의 게놈을 분석해 친척인 아시아코끼리와 비교했다. 그 결과 약 420만 년 전 두 계열이 갈라진 뒤 매머드가 약 300만 년 전부터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며 일어난 유전자 변이를 밝혀냈다. 그 결과 굵고 긴 털이 촘촘히 나고 지방층이 두꺼워져 추위에 적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의 바이오기업 콜로설바이오사이언시스는 매머드의 부활(탈멸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게놈편집 기술로 아시아코끼리 게놈에서 해당 유전자를 매머드형으로 바꾼 수정란을 대리모 코끼리 자궁에 착상해 매머드 버전 코끼리를 만들어 시베리아 같은 환경에 풀어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매머드를 되살리는 탈멸종이 아니라 매머드형 코끼리를 만드는 생태적 복원이다.
이번 연구는 이 계획의 타당성을 같은 포유류인 생쥐를 통해 검증한 과정으로 결과물인 털북숭이 생쥐를 보면 대성공처럼 보인다. 그런데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기사를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심지어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의 게놈공학자인 스테판 리젠버그는 “매머드 생쥐를 만든 것과는 거리가 멀다”며 “그저 특별한 유전자를 지닌 생쥐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래도 생쥐의 털 관련 유전자를 게놈편집으로 매머드 유형으로 바꿔 털북숭이 생쥐를 탄생시켰으면 꽤 성공한 것 아닌가.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아직 학술지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공개 사이트에 올라와 있어 다운로드해 읽어보니 리젠버그가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 이해가 됐다.
이 회사가 공개한 털북숭이 생쥐는 매머드형 유전자를 지닌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공개한 털북숭이 생쥐를 두고 리젠버그가 매머드 생쥐가 아니라고 한 이유다. 더 놀라운 건 매머드형 유전자를 지닌 생쥐도 만들었지만 그렇게 털북숭이가 아니었고 따라서 전면에 내세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 털 변이 생쥐 유전자 4개 편집 결과
논문에 따르면 지금까지 다양한 털 변이 생쥐를 연구해 털의 발달과 질감, 길이, 밀도, 색 등과 관련된 유전자가 여럿 밝혀졌다. 예를 들어 2003년 털이 굵은 변이 생쥐가 나와 울리(Wooly)라는 이름을 붙였고 10년 뒤 이 녀석의 Fam83g 유전자가 고장난 상태라는 사실을 밝혔다.
한편 털이 긴 변이 생쥐를 우연히 발견해 앙고라(angora)라는 이름을 붙인 게 1984년이고 10년 뒤에 Fgf5 유전자가 고장난 결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생쥐 게놈에서 위의 두 유전자를 포함해 털 형태와 길이, 색깔 관련 유전자 7개를 골랐고 여기에 아시아코끼리와 털매머드 게놈 비교를 통해 바뀐 털 패턴 유전자 2개와 지질 대사 유전자 하나를 더했다.
이렇게 유전자 10개를 대상으로 게놈편집을 진행했다. 그런데 유전자 10개 모두를 바꾼 생쥐를 만드는 대신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7개를 바꾼 다양한 조합의 5가지 생쥐를 만들어(각각 A, B, C, D, E 실험) 비교했다.
10개 유전자 가운데 생쥐에서 발견된 긴 털이 나게 하는 Fgf5 유전자 고장, 노란색 털이 나게 하는 Mc1r 유전자 고장은 5가지 실험 모두 적용했고 매머드에서 발견된 지질 대사를 바꾸는 Fabp2 유전자 고장은 E실험을 뺀 네 실험에서 적용했다.
A실험과 B실험은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생쥐 털 관련 유전자 2개를 변이형으로 바꿨고(서로 다른 조합으로) C실험은 생쥐 털 관련 유전자 4개를 변이형으로 바꿨다.
한편 D는 생쥐 털 관련 유전자 하나만을 추가로 바꿨고 E는 아시아코끼리와 매머드가 다른 털 유전자 2개를 매머드형으로 바꿨다. 그렇다면 이 회사가 언론에 공개한 털북숭이 생쥐는 다섯 실험 가운데 어디서 얻었을까.
E실험에서 얻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다섯 실험 가운데 유일하게 매머드형 변이 유전자 2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물론 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E실험으로 나온 생쥐(571번)는 얼핏 보면 털 색만 다를 뿐 보통 생쥐와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자세히 보면 긴 털이 성기게 나 있기는 한데(털 길이 관련 생쥐의 Fgf5 유전자 고장의 결과일 것이다) 꼭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모델은 가장 많은 7개의 유전자를 편집한 C실험에서 나온 생쥐일 것 같은데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뜻밖에도 유전자 5개(생쥐의 털 관련 유전자 4개와 매머드의 지질 대사 유전자 1개)를 편집한 A실험에서 나온 생쥐(512번)가 모델로 보인다.
사실 털 색만 다르지 A실험 생쥐도 유전자 하나만 고장난 울리 생쥐와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따라서 Fam83g 유전자가 고장난 게 털북숭이 생쥐가 되는 결정적 요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모낭의 생리학은 생쥐(설치류)와 사람(영장류)이 다르듯이 생쥐와 매머드(장비류)도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쥐의 유전자를 매머드의 털 관련 변이형으로 바꿔도 별 효과가 없는 게 뜻밖의 결과는 아니라는 얘기 같은데 만일 E실험에서 극적인 털북숭이 생쥐가 나왔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싶다. 그리고 생쥐 털 변이 유전자를 여럿 조합해 털북숭이 생쥐를 만든 게 앞으로 아시아코끼리의 털 관련 유전자를 매머드형으로 바꿨을 때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될 수 있을까.
한편 매머드형으로 바꾼 지질 대사 관련 Fabp2 유전자도 생쥐에서는 별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 매머드형으로 바꿔도 몸무게가 유의미하게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추위를 타는 정도 등 행동 실험으로 효과를 알아보겠다니 지켜볼 일이다.
국내 기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8년 말까지 털북숭이 아시아코끼리가 태어나게 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역시 의문스럽다. 코끼리의 임신 기간은 22개월로(생쥐는 20일) 기한을 맞추려면 늦어도 2027년 초에는 편집한 수정란을 착상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대리모 코끼리 수십 마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싶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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