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승복’ 여부까지 걱정하게 만드는 윤석열[점선면]
‘헌재 승복’ 여부마저 불안하다니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합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식에서 이 말을 했죠. 그랬던 그가 지금은 ‘헌법과 법률을 위배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사유로 탄핵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윤 대통령이 헌재 결론에 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헌재의 결론에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정치권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까요?
점(사실들) : 헌재 결정 승복할거죠? 할...거죠...?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윤 대통령이 직접 ‘헌법재판소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윤 대통령의 승복’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진보·보수 논객도, 시민사회와 종교계도 한목소리입니다.
선(맥락들) : “대통령도 승복한다”는 전언만?
사실 정치인이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지금 새삼스럽게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은 아직 윤 대통령이 직접 승복 의사를 밝힌 적이 없어서입니다. ‘윤 대통령이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는 말은 여당과 변호인을 통한 ‘전언’으로 전해졌을 뿐이죠.
사람들이 윤 대통령이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안해하는 이유는 뭘까요.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국민담화, 헌재 변론, 최후진술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백번 양보해서 윤 대통령 입장에서야 ‘나는 정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계속 그런 태도를 보여 온 사람이 만약 헌재에서 파면 결정이 나오면 받아들일까요?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승복 메시지에도 ‘진심’이냐는 의심 섞인 눈총이 쏠려요. 여당이 앞에서는 ‘승복’을 말하면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불복’을 부추기는 의원들을 방관하고 있다는 겁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집회에서 헌재를 향해 “가루가 될 것”(윤상현) “황소 발에 밟혀 죽는 개구락지”(장동혁) 등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여권 대선 주자들은 저마다 입장에 따라 온도 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탄핵 찬성파’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의원 등은 일찌감치 승복 메시지를 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승복이 당연하다면서도, 자신은 탄핵 찬성파가 아니라며 탄핵 기각·각하를 예상한다고 했습니다. ‘탄핵 반대파’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면(관점들) : “법치 무시하면 보수 아닙니다”
️윤 대통령이 승복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혼란과 분열만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동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부추겨 온 불복 심리가 헌재 선고 당일 극단적인 지지자들의 폭력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에도 흥분한 지지자들의 격한 시위로 4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한 적이 있거든요. 지금은 그때보다 위험수위가 더 높아 보입니다. 헌재 앞에는 오늘도 극우 유튜버들이 진을 치고 폭언과 협박을 일삼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헌재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이미 가까운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2월27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을 받아들고도 여전히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를 통과한 ‘명태균 특검법’ ‘내란 특검법’ 등에는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헌재 결정에 따른 법적 의무는 선택적으로 무시한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진보·보수 원로들도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을 비판하며 헌정 질서 수호를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윤 대통령을 두고 “부정선거론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보수를 우습게 만들었다”며 “사실과 법치를 무시하면 보수가 아니다”라고 했어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현재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 자체의 붕괴”라며 “정치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해 헌법을 치고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늘 ‘법치’를 강조해왔던 윤 대통령도 사회적 혼란이 커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헌재 결정 승복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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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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