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물 좀 내려주세요"… 화장실에 붙은 절박한 '쪽지'
[남형도의 못마침표] 더럽게 쓰는 만큼 힘들게 치웁니다, 누군가의 어머니·아버지들이
[미디어오늘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한 9년 전쯤 프랑스 파리 여행을 처음 갔었다. 많은 추억이 그렇듯, 오랜 시간이 흐르니 굵은 잔상만 남았다. 에펠탑 앞 샹 드 마르스 공원, 샹젤리제 거리, 뤽상부르 공원, 노트르담 성당, 몽마르뜨 언덕. 그런 명소보다 더 짙은 기억이 있으니, 실은 '화장실'이다.
센 강을 따라 걸어 시테섬에 구경 갔을 때였다.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에 들어가 구경하는데, 아랫배에서 흡사 워털루 전쟁이 벌어진 것 같았다. 여리디여린 장에서 쉴 새 없이 포격을 퍼붓는 듯, 더는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지경이 됐다. 부르르 떨리며 절박해진 두 눈은 본능적으로 찾았다, '화장실'을.
아무리 둘러봐도 공중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관광객 사이를 뚫고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파란 가을 하늘은 노래지고, 주변 예쁜 풍광도, 멋진 행인들도, 그 어느 것 하나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변기와 남녀 그림, 이것만 보느라 아무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엉덩이와 눈에서 모두 물 비슷한 것이 흘러나올 것처럼 됐다.
“아무리 봐도 없어, 그냥 아무 가게나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아내에게 그리 말하고, 카페로 달려 들어가 아무 커피나 막 시킨 뒤 화장실로 뛰어갔다. 장을 비우고 안도한 뒤 카페를 나섰는데, 또 뱃속이 복잡하게 끓기 시작해 다시 다른 카페로 달려갔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에스프레소 비슷한 걸 시켰다.
부재의 경험은 당연하게 여겼던 걸 새삼 빛나게 하는 법. 한국에선 어딜 가나 비교적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었던, 공중화장실이 그랬다. 심지어 얼마나 깨끗한가. 미화원들이 실시간으로 그리 부지런히 치우고 있으니.
그리 감사한 화장실을 우린 어떻게 이용하고 있나. 동떨어진 이들이 서로 공감하고 연결되기 위해 체험을 하고 글을 쓰는데,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지하철역 화장실 청소'다.
“맥주캔, 치킨 뼈, 과일껍데기까지 화장실에 가져와서 버려요. 라면 먹고 화장실에 토해놓고 그냥 간 사람도 있었고요.”
화장실 미화원 조옥자 씨가 덤덤히 털어놓은 얘기가 그랬다. 마스크를 쓰고 직접 청소해봤다. 금세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변기 뚜껑이 닫혀 있었고, 여는 순간 꽉 막힌 변기에 배변과 휴지가 범벅이 돼 있었다. 그 옆엔 누군가 벗어놓고 간 팬티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뚫어뻥을 구멍에 맞추고 압력을 주니 쑥 내려갔다. 그 소릴 들은 뒤 물을 내리니 다시 쓸 수 있는 변기가 됐다.
소변기엔 가래침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허리를 잔뜩 숙여서 이를 다 닦아내야 했다. 그 주변엔 소변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가득 튀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안 보고 그냥 나가면 되는데, 청소하는 입장이 되니 오롯이 다 마주해야 했다. 옥자 씨는 “무릎과 허리가 다 좋을 수가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른 새벽부터 오후까지 화장실 청소를 계속 이어갔다. 어느 화장실을 가나 속이 메슥거렸고, 자주 도망치고 싶은 심경이 됐다. 점심을 먹은 뒤 청소하나 결국 체해서 소화제까지 사 먹어야 했다. 이걸 매일 해야 하는 삶, 존중하는 게 그리 어려운 것인지.
최근엔 회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벽에 붙은 문구를 보고 낯이 화끈거렸다. 미화원님이 절박하게, 종이에 문구를 적어 붙여 놓아서였다. 거기엔 이리 적혀 있었다.
'제발 물 좀 내려주세요.'
그냥 물을 내려달란 것도 아니고 제발 내려달라니. 간절한 절규에 가까운 그 한 문장을 보고 회사에 들어왔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깨끗한 모습으로 다니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었다.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본인이 싼 뭔가를 안 보이게 하는 단 1초. 그걸 안 해 미화원님 마음을 울상짓게 하는 누군가가 여기에 있단 생각에.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20년 넘게 애쓰는 사람. 서당 훈장님이던 외할아버지 말씀을 기억해 화장실마다 붙여 놓았다고 했다.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 홀로 있을 때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공자님 말씀이란다. 그걸 풀어쓰면 이렇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자주 봤던 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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