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요구안 7개 중 5개 '진행중'이지만…핵심은 '불신'

CBS노컷뉴스 김정록 기자 2025. 3. 19.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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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복구 조건 '7대 요구안'…"하나도 제대로 안돼"
정부, 5가지 '진행중'…2가지 입장 차 여전
'불신' 깔려있어…"뭘 해도 믿을 수 없는 상황"
10일 서울 종로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의정갈등을 촉발한 핵심 요인이었던 의대 정원과 관련해 진전이 있었음에도 사직 전공의들은 '전공의 7대 요구안'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수련병원을 떠나면서 전공의들은 복귀 조건으로 '전공의 7대 요구안'을 내놨다. 주요 내용은 △필수의료패키지 및 증원 계획 백지화 △의사수 추계 기구 설치 △전문의 채용 확대 △의료진의 법적부담 완화 △수련환경 개선 △부당 명령 철회 △업무개시명령 폐지 등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서도 이 7대 요구안을 강조했다. 그는 "젊은 의사 7가지 요구안은 특혜나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7대 요구안이 복귀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란 점을 시사했다.

의료계에서는 지금까지 7대 요구안 중 하나라도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지난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공의 7대 요구안을 모두 들어줘야 (이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공의 7대 요구안 이뤄진 것 없다?…5가지 진행중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주민 위원장이 의사 정원을 정부 직속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에서 심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 등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1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공의 7대 요구안 중 5가지는 실행하고 있거나 이미 실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의사 수 추계 기구 설치'와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사 정원을 정부 직속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에서 심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전날 상정했다.

개정안은 추계위를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 독립 심의기구로 규정하고, 위원은 15명 이내로 두되 의료계 요구를 받아들여 의협 등 의료 공급자가 추천하는 위원이 과반을 차지하도록 한다.

'전문의 채용 확대'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에 포함된 상급종합병원에 대해 수가를 인상하고 성과에 대해 보상해 전문인력 채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다.

'의료진의 법적부담 완화'와 관련해서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진료 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부담을 완화하고, 불가항력 사고 보상 국가 지원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이날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이 담긴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도 발표된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들이 가장 핵심으로 꼽는 문제는 '수련환경 개선'이다. 박 위원장 등 사직 전공의들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토론회에서 '36시간 연속근무' 등 직접 겪은 열악한 수련 환경을 토로했다.

정부는 수련 환경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주당 80시간, 연속 36시간 근무에서 주당 80시간, 연속 36시간 이내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개정안은 내년 2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요구안 중 하나인 '부당 명령 철회'는 이미 완료됐다. 정부는 지난해 6월 4일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했다. 또 복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전공의에 대해 향후에도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밝힌 바 있다.

업무개시명령 폐지·필수의료 패키지 철회는 입장 차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수술실에 의료진이 출입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다만 남은 두 요구안에 대해서는 정부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공의들은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데, 정부는 "국가의 의무사항"이라며 필요하다고 맞선다.

복지부 관계자는 "업무개시명령은 국민보건에 발생할 수 있는 위해를 방지하고,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규정"이라며 "해당 규정은 존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의정갈등을 촉발한 주요 원인인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에 대해서도 시각 차이가 여전하다. 정부는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058명으로 줄이고, 이후 의대 정원은 의료계가 포함된 추계위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직 전공의들은 '정원'이 아닌 '모집 인원'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12일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인터뷰에서 "정원 내에 각 대학이 모집 인원을 자율적으로 하겠다는 내용"이라며 "결국 내년도만 한시적으로 동결을 하되 앞으로 계속 증원을 진행하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내용은 의료계에서 요구하던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의사 인력 확충 뿐만 아니라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강화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대책"이라며 "대부분 그동안 의료계가 요구하던 사항"이라고 짚었다.

다만 사직 전공의들은 비급여 진료 규제 등 내용이 담긴 필수의료 패키지를 폐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의료계는 현재 낮은 수가에서 손해를 보는 대신 비급여 진료를 통해 메우고 있는데 비급여를 허용하지 않으면 병·의원 경영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2020년 의정 합의 깼듯 또 말 바꿀까…"정부 믿을 수 없다"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으로 들어서는 의료진의 모습. 황진환 기자

이같이 전공의 7대 요구안 중 입장 차이가 큰 2가지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진전을 이뤘지만 사직 전공의들이 여전히 복귀할 수 없는 이유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꼽힌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2020년 정부와 당시 여당, 의협회장이 서명한 문서가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러한 의료 개혁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2천명 의대 증원이 발표됐다"며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된 상태라면 충분히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의료계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의 근원으로 2020년 의정 합의를 꼽는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보건복지부는 의대 증원 및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코로나19 확산 안정화 이후까지 중단하는 내용의 합의문을 만든 바 있다.

합의문에는 '의대 정원을 포함한 주요 의료 정책을 의정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의료계는 정부가 지난해 의대 증원을 전격 발표하면서 일방적으로 합의를 깼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사직한 필수의료과 전공의 A씨는 "정부가 '사법 리스크'를 줄여주는 정책을 발표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똑같이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며 "아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가 무엇을 해주겠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20년 의정 합의 당시) 문서까지 작성했는데도 정부는 갑자기 의대 증원을 발표하지 않았나"라며 "복귀하면 또 말을 바꾸고 모르는 척하면 우리만 바보 되는 꼴"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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