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분열의 시대…디데이는 다가오고 있다

CBS노컷뉴스 박종관 글로컬부장 2025. 3. 19.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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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와 넷플릭스 '제로데이'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왼쪽은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오른쪽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 ㈜마인드마크·㈜더쿱디스트리뷰션·대통령실 제공


동료 2명을 잃으면서까지 달려간 길이었다. 나라를 둘로 쪼개고 전쟁으로 몰아넣은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처단의 순간,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역사상 최악의 내전을 부추긴 것으로 묘사된 그의 대답은 비루했다. "살…살려주세요." 12·3 내란 사태 이후 국내에서 개봉해 '이시국 영화'로 불린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얘기다.

워싱턴으로 가는 도중 무명의 군인과 마주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동료 중 한 명이 다른 중국계 미국인과 함께 인질로 붙잡힌 상황. 주인공 일행은 "우리도 미국인"이라며 진정에 나서지만 금발의 군인은 총구를 들이대며 묻는다. "어느 쪽 미국인?" 결국 중국계 미국인 2명이 목숨을 잃는다. 일행을 위기에서 구한 흑인 동료마저 유탄에 맞아 숨진다.  

계엄의 밤 이후 '심리적 내전' 상태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주말인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과 세종대로 일대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각각 열렸다. 류영주 기자


계엄의 밤 이후 '심리적 내전' 상태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질문은 낯설지 않다. 곳곳에서 "어느 쪽 한국인"이냐고 따지는 일이 벌어진다. 성난 시위대는 기자들에게 "이재명 XXX 해봐"라며 사상검증을 시도한다. 대통령 윤석열에 불리한 보도를 하고 있다는 의심만으로 방송 카메라를 빼앗고 쓰러진 기자의 목덜미를 밟기도 했다.

다짜고짜 중국인 아니냐고 공격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에 중국인 연구관이 있다는 가짜뉴스도 판친다.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음모론에는 집권 여당의 중진 의원도 가세했다. 급기야 중국 대사관 난입 시도까지 벌어지자 주한 중국대사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석해 윤갑근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윤측은 탄핵 심판에서 중국의 타국 선거 개입설을 꺼내들었다. 사진공동취재단


해묵은 중국 혐오 정서에 기름을 부은 건 대통령 윤석열이다. 오랜 소신이었던 부정선거론에 중국인 개입설을 더했다. 윤측은 탄핵 심판에서 중국의 타국 선거 개입설을 꺼내들었다. 중국이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으로 다른 나라 선거에 개입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그랬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한 극우매체의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근거는 없었다.

음모론에 기댄 극단적 주장은 들불처럼 거리로 번졌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종교인들이 앞장서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고 극우 유튜버들이 뒤따르면서다.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대통령 윤석열을 공산화의 위기에서 구할 유일한 존재로 칭송하는 구호가 등장했다. 반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불법 탄핵을 자행하고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지목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제로데이' 스틸컷. 유튜브 캡처


1년 6개월 동안 법안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한 국회가 있다.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인 하원 의장은 양당 의원을 규합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한다. 과감하게 조처하지 않으면 끝장인 '긴급 상황'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딱 1분만 시스템을 멈춰 충격을 주기로 한다. 초유의 사이버 테러로 3402명이 숨졌지만 그는 "이 나라에 스스로 구원할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같은 내용의 넷플릭스 드라마 '제로데이' 역시 우리 정국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와 함께 화제를 모았다. 야당과의 대립 끝에 '경고성' 계엄을 발동했다는 대통령 윤석열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제로데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 출신의 전직 대통령은 회유를 뿌리치고 진실을 택한다. 음모에 가담한 정치인 딸을 잃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민주주의 파괴로 나라를 구할 수는 없다"고 일갈한다.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국회 본회의장을 나와 인사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95일이 됐다. 헌재가 오늘(19일) 선고 기일을 지정하더라도 이미 최장 심판 기록이다. 숙고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8년 전 박근혜가 파면되던 날에는 시위가 격앙되면서 4명이 사망했다. 극렬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법원 폭동으로도 모자란지 헌재를 쳐부수자는 극언까지 나온다.

대통령 윤석열의 70분 최후진술에는 승복의 말이 빠져 있었다.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는 비루한 궤변만 있었다. 아직 기회는 있다. 선고 전후 최악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의 말마따나 절박한 호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고일 지정 직후 승복의 약속이 나와야 한다. 헌법과 국민 앞에 선서했던 대통령에게 남은 마지막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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