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금붕어는 어떻게 야생의 ‘메갈로돈’이 되었나

김지숙 기자 2025. 3. 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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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은 ‘생태교란종 인식 주간’을 맞아 금붕어가 유기된 뒤 1.8㎏까지 자라난 모습을 공개했다.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 페이스북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격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키우던 금붕어를 강에 풀어줬더니 엄청나게 커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어항 속 작은 금붕어가 어떻게 그렇게 커질 수 있는 건가요?

A. 해외 뉴스를 보다 보면, 몸집이 엄청나게 자라난 금붕어가 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종종 듣게 됩니다. 지난 2021년 미국 미네소타주 번스빌의 켈러호수에서는 ‘축구공만 한 금붕어’ 28마리가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번스빌시 당국은 “제발 반려 금붕어를 연못과 호수에 풀지 말라”면서 “금붕어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자라며, 강바닥의 퇴적물을 엉망으로 만들어 수질을 악화시킨다”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강에서 살고 있는 금붕어가 한때는 누군가 어항 속에서 키웠던 작은 반려동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호수에서 발견된 금붕어의 몸길이는 46㎝ 정도에 몸무게가 1.8㎏에 달했습니다. 어항 속 금붕어가 보통 몸길이 5~15㎝에, 몸무게 30~300g인 점에 비춰보면 몸집이 대여섯 배나 커진 셈입니다.

지난 2021년 미국 미네소타주 번스빌의 켈러호수에서는 유기된 금붕어 28마리가 발견됐다. 번스빌시 엑스(X)

최근 ‘생태교란종 인식 주간’을 진행했던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USFWS) 또한 지난달 26일(현지시각) 공식 페이스북에 “당신의 반려 금붕어가 야생에서 2년을 보낸 뒤 모습”이라면서 호수에서 발견된 금붕어 한 마리의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금붕어에게는 ‘메갈로돈’이라는 다소 장난스러운 이름이 붙여졌는데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했던 고대 육식 상어의 이름을 딴 이 금붕어는 환경조사원의 양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야생에 유기된 뒤 거대해진 금붕어의 모습은 뜻밖에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금붕어는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먼저 금붕어(Carassius auratus)가 어떻게 사람의 ‘반려동물’이 되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금붕어의 생태계 침입을 다룬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금붕어의 원서식지는 동아시아로 약 1000년 전 중국 송나라 때 본격적인 품종개량이 시작됩니다. 그보다 훨씬 앞선 진나라(256~120) 때부터 붕어의 돌연변이인 붉은붕어를 연못에서 키우기 시작했다고 하니, ‘반려 금붕어’의 역사는 꽤 길고 오래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국을 중심으로 했던 금붕어 키우기가 미국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후반입니다. 역사학자 카트리나 걸리버는 미국 정부가 당시 처음 만들어진 ‘어류위원회’(Commison on Fisheries, 현재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를 홍보하기 위해 1870년부터 1880년 초반까지 워싱턴디시 주민들에게 무료로 금붕어를 나눠준 것을 그 시작으로 짚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해에는 금붕어 2만 마리 이상을 주민들에게 나눠줬다고 하니, 금붕어 반려문화에 미국 정부가 꽤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물건처럼 쉽게 공유됐던 금붕어가 자연에 버려지기 시작했고, 1970~80년대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서 금붕어가 생태교란종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점차 알려지게 됐습니다.

송나라 화가 류채의 ‘낙화유어도’에 담긴 금붕어. 위키피디아 코먼스

지난 14일 과학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도 최근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이 올린 ‘메갈로돈’ 사진을 소개하며 금붕어가 야생에 ‘방생’되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소개했는데요, 이들은 금붕어의 몸집이 커진 배경에는 유전적 특성이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소개했습니다.

크리스틴 보스턴 캐나다 해양수산부 연구원은 “충분한 자원이 있다면 금붕어는 매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면서 “특히 상위 포식자가 없을 경우에는 더 빨리 자라난다”고 말했습니다. 북미 오대호에 서식하는 토종 어류인 배스 등이 금붕어를 잡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이 포식자들이 먹기에는 금붕어가 너무 빨리 크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금붕어의 발달과 진화’를 쓴 대만국립정치대 킨야 오타 박사도 “아직 유전적 기초 연구가 모두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한 실험에서 영양분이 가장 풍부한 사료를 먹은 금붕어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것이 관찰됐다”면서 “가끔 어항의 금붕어가 서로를 잡아먹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아주 큰 개체가 등장한다”고 전했습니다.

금붕어의 산란을 연구한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머독대 연구진의 2016년 연구를 보면, 금붕어들은 조류, 물고기 알·유생, 심지어 다른 성체 물고기까지 먹어치우면서 암컷은 해마다 최대 4만개 이상의 알을 낳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항 속에서 제한된 사료만 먹던 금붕어가 포식자가 없는 야생에서 다양한 먹이를 섭취하면 엄청난 크기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가 금붕어의 번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호의 금붕어를 연구해 온 보스턴 연구원은 “금붕어는 다양한 산소 농도와 수온에 내성이 생겨 다른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지역에서도 잘 적응한다”면서 “기후변화로 수온이 높아지면 차가운 물과 높은 산소량을 요구하는 토착종보다 금붕어가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짚었습니다.

이미 풀려난 금붕어들을 제어할 방법은 없을까요. 호주 바스강의 금붕어를 연구한 스티븐 비티 등 연구진은 그것이 굉장히 어려울 거라 내다봤습니다. 금붕어는 해마다 220㎞를 이동하며, 번식기에는 무리 지어 습지로 이동하는 행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금붕어는 머리가 좋지 않다는 통념과 달리, 복잡한 인지능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항 속 금붕어가 바흐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구별하고, 훈련에 따라 작은 축구공을 그물에 넣는 모습을 보면 금붕어가 강을 지배하는 ‘메갈로돈’으로 거듭난 것이 무리도 아닌 것 같습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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