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뉴스로 덮고 감세는 감세로 덮는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5. 3. 1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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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2024년 12월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공제 확대 법안이 부결됐다.ⓒ연합뉴스

지나치게 급작스러운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저항이 생기면 변화 수준을 낮추고 타협·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책 추진 과정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과정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쎈 뉴스는 더 쎈 뉴스로 덮어버리는 것이 요즘 유행이다.

이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잘 웅변해주고 있다. 거칠고 과격한 정책에 대해 비판이 생기면 이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더 쎈 정책으로 이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덮어버린다. 합의되지 않는 정책이라도 '개문발차(開門發車)'를 하면 더는 뛰어내릴 수 없게 된다.

기획재정부도 이를 배워서 흉내내는 것 같다. 기재부는 지난해 국회에 상속세 인적공제를 현행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10배 확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가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만일 공제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려 10배를 한 번에 인상하는 것은 지나친 감세라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 12일 기재부는 상속세 개정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너무 지나친 감세라는 이유로 국회에서 부결이 된지 불과 석 달 만이다. 국회 부결 도장 잉크도 아직 마르기 전이다. 상속 공제 10배 확대 법안이 부결된지 3개월 만에 다시 상속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면, 좀 더 공제 범위를 축소한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예컨대 공제 확대를 2배나 5배 정도로 좀 축소한 법안을 발표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공제 범위를 10배로 늘리는 방안은 그대로 둔 채 더 큰 규모의 감세 방안을 덧붙인 방안을 발표했다. 상속재산 전체 금액에 과세를 하는 현행 상속세에서(유산세) 상속 받는 금액에 과세를 하는 방식(유산취득세)의 감세 조치를 추가했다. 그리고 국회에 제출한 상속세 감면안의 제목은 “상속세 과세체계 합리화를 위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 이다. 지나친 감세라는 이유로 부결된 상속세법 개정안에 유산취득세라는 더 큰 규모의 감세방안을 추가한 이후에 이를 '합리화'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물론 언론은 감세라는 표현 대신 기재부의 의도대로 '대수술', '재건축', '개편안' 등으로 표현한다. 세법개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 개정을 통해 세수가 증가하는지 또는 세수가 감소하는지가 핵심이다. 만약에 세수 변화가 크지 않으면 이는 '합리화', '개편', '전환'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전구간, 모든 계층에서 일괄적으로 세부담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세법개정안은 '감세안'이라고 이해해야한다.

▲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왼쪽 세 번째)이 3월11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완수 상속세개편팀장, 김건영 조세개혁추진단장, 정 실장, 김병철 재산소비세정책관. ⓒ연합뉴스

정부는 증세를 할 수도 있고 감세를 할 수도 있다. 국민들이 동의한다면 증세도, 감세도 각각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감세 정책을 내놓고 이를 국민에 설명하고 설득하고자 한다면 이 세법개정안은 감세 법안이며 세수가 얼마나 줄고 감소한 세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계획을 국민과 국회에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설명과 동의 절차 없이 이를 단순히 합리화 방안이라고 눈속임 하면 안 된다.

정부가 세법 개정안의 본질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합리화 방안'이라고만 설명한다면, 언론은 이를 정부의 의도대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작년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속세법 개정안은 감세를 위한 개정안임을 명확히 밝혔다. 당시 일부 언론은 감세 필요성을 보도했고, 일부 언론은 과도한 감세라고 우려했다. 이는 언론의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보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재부가 작년에 부결된 인적공제 10배 확대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를 직계존속(자녀)뿐 아니라 직계비속(손자·손녀)까지 확대하는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여기에 유산취득세 도입이라는 또 다른 감세조치까지 더했음에도 정부는 이를 '감세'로 표현하지 않고 '전환', '합리화'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자 언론은 감세의 적정성 여부를 논하기보다는 유산취득세 전환의 타당성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마디로 정부가 감세라고 하면 감세측면의 장단점을 논하고, 정부가 개편이라면 개편의 필요성을 논한다.

▲ 3월13일 동아일보 01면
▲ 3월13일 조선일보 02면

마지막으로 정부 발표를 다루는 언론의 톤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법치주의 국가다. 정부 의도대로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이를 통과해야 법이 개정된다. 즉, 정부의 발표는 정부의 의도와 정부의 주장을 의미한다. 바로 정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런의미에서 마치 정부의 발표를 그렇게 시행되는 것같은 뉘앙스를 담은 기사 제목은 주의해야 한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정부의 주장뿐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명시해야 한다. 몇몇 기사는 마치 그렇게 바뀌게 된다고 독자가 오해할 수 있는 제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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