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감국가’ 지정 원인도 모르는 정부…여야는 “친중반미 탓” vs “핵무장론 탓”

강윤서 기자 2025. 3.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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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참사 속 침묵하는 美, 최상목 뒤늦게 산업장관에 美 장관과 협의 지시
與 “이재명, ‘위험 국가’ 북한에 돈 준 혐의…탄핵 사유로는 北·中 언급도”
野 “美, 韓 보수 진영의 핵무장론 늘 걱정해왔다…올 것이 온 것”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 리스트에 추가하면서 정치권이 출렁이고 있다. 미국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아직 파악되지 않은 가운데 네 탓 공방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야권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핵무장론의 여파라고 보는 반면, 여권에선 더불어민주당의 '반미 친중' 노선에 따른 경고라고 반발했다. 정부는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확실한 원인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각) "(에너지부는) 광범위한 '민감 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전 정부(바이든 행정부)가 올해 1월 초 이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인 '기타 지정 국가'에 한국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을 명단에 추가한 이유를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민감 국가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정보기구인 정보방첩국이 지정 및 관리하고 있다. 단계에 따라 '기타 지정국가(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위험국가(중국·러시아 등)' '테러지원 국가'(북한, 시리아, 이란 등)로 구분되며,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될 수 있다.

野 "정부여당, 비핵화로 선회 안 하면 민감국가 리스트서 못 빠져나와"

정치권에선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내린 배경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우선 야권에선 윤석열 정부가 '자체 핵무장'을 언급한 데 따른 파장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023년 1월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를 통해 '전술핵 배치,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여권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장론'이 확산하면서 미국의 신경을 계속 건드려왔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2023년 4월27일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 소위 워싱턴 선언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에 대해 한국의 의무·공약, 대한민국과 중국 정부 간 원자력 평화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하게 했다"며 "(한국이) 자꾸 조약을 위반할 것 같으니 협정을 지키라고 복창을 시킨 것 아니겠나"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도부의 해석을 두고 위성락 민주당 의원도 시사저널에 "미국은 우리나라의 보수 진영에서 핵무장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음을 오랜 기간 주시했고 걱정해왔다. 그동안 미국에서 일정한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라며 "따라서 (민감 국가 지정은) '올 것이 왔구나'라고 심각하게 반응해야 하는 상황이고, 바이든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국민의힘이 핵무장론에서 비핵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지 않으면 (민감 국가) 리스트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핵무장론에 이어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 핵심 '트리거(Trigger·방아쇠)'가 됐다는 것이 민주당의 해석이다. 특히 동맹국에 아무런 통보 없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한국의 국가 체제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시·도당 및 당원협의회 주요당직자 연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與 "반미 이재명이 정권 잡으면 '위험국가' 지정될 수도"

여권은 사태를 정반대로 분석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 대표의 '친중 반미' 노선을 지적하며 차기 유력한 대권 후보가 이 같은 성향을 보인 데 대한 미국의 조치라고 주장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이 대표는 위험 국가로 지정된 북한에 돈을 건넨 혐의가 재판에서 입증됐다"며 "이런 인물이 유력 대권후보라고 하니 민감 국가로 지정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그럴 일이 없을 것으로 믿지만 혹시라도 이 대표가 정권을 잡으면 한미동맹에 금이 가면서 민감 국가가 아니라 위험 국가로 지정될 수도 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과거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을 작성할 당시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기이한 외교정책'을 탄핵소추 사유에 추가한 부분을 지적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하며 "(한국이) 민감 국가 리스트에 올라간 이유는 민주당과 중국 때문"이라면서 "중국에 굴종적이고 러시아를 옹호하고 북한에 한마디도 못 하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라고 비판했다.

민감국가 지정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는 가운데 외교부 안팎에선 정치적 이유보다는 '기술적 이유'를 지적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 에너지부의 조처는 시설 방문 등에 적용되는 보안 규정이라며 "필요에 의해서 (기준을) 높이고 낮추는 기술적인 성격이 강한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도 경위 파악을 위해 주미대사관 등 채널을 총동원하며 나섰다. 다만 민감 국가 리스트는 에너지부 특정 부서가 내부적으로 관리하는 목록으로, 구체적인 설명을 공식적으로 전달받는 데 난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보안 사안이란 점에서 미 국무부조차 관련 정보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이 왜 민감국가로 지정됐는지 알아야 시정을 위한 전략을 짜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장 실효적인 한미 협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르면 내주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 장관은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의 면담 일정을 조율하는 등 한미 에너지 협력을 주된 의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국을 민감 국가 목록에서 빼달라는 요청을 미국 측에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안 장관을 향해 이번 주 중 라이트 장관을 만나 적극 협의하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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