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때 백성 구한 동래읍성 ‘인생문’ 표지석, 46년 만에 동래로

조성우 기자 2025. 3. 17. 19:1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사람을 살린 문'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부산 동래구 동래읍성 인생문의 표지석(사진)이 일제강점기 사라졌다가 다시 발견된 지 46년 만에 동래구로 돌아온다.

동래구는 18일 동래읍성 인생문 표지석인 '문명석'이 구청 지하 1층 유적전시관으로 옮겨진다고 17일 밝혔다.

부산박물관에서 옮겨지는 문명석은 본래 있던 인생문을 거쳐 동래구청으로 이동한다.

문명석은 동래구 신청사 공사 당시 발견된 유물들과 함께 지하 1층 유적전시관에 놓인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제때 유실됐다 부산박물관행…구, 장기 대여 방식으로 전시

임진왜란 당시 ‘사람을 살린 문’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부산 동래구 동래읍성 인생문의 표지석(사진)이 일제강점기 사라졌다가 다시 발견된 지 46년 만에 동래구로 돌아온다.


동래구는 18일 동래읍성 인생문 표지석인 ‘문명석’이 구청 지하 1층 유적전시관으로 옮겨진다고 17일 밝혔다. 부산박물관에서 옮겨지는 문명석은 본래 있던 인생문을 거쳐 동래구청으로 이동한다.

문명석은 인생문의 문패였던 돌로,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표지석은 일제강점기 유실됐으나, 1979년 동래읍성 인근 논둑 공사 중 발견돼 부산박물관에 기증됐다. 현재는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문명석이 본래 있던 인생문은 조선시대 동래읍성의 여섯 개 성문 중 하나였다. 1735년 ‘인화문’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세워졌으며, 19세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인생문은 임진왜란 당시 이 문 쪽으로 피신한 사람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때문에 사람을 살렸다는 의미에서 인생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와 반대로 당시 읍성 안에서 숨진 이들의 상여가 나가는 문이어서 인생무상을 느끼게 해 인생문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일제강점기 소실된 인생문은 2005년 복원됐다. 당시 문명석을 이곳에 놓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오래된 돌이어서 새 돌과 함께 쌓을 경우 손상될 가능성이 있어 탁본을 대신 설치했다.

문명석은 부산박물관이 동래구에 장기 대여하는 방식으로 전시된다. 우선 올해 말까지 대여가 결정됐는데, 구는 이후 매년 대여 기간을 갱신해 오래 전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문명석은 동래구 신청사 공사 당시 발견된 유물들과 함께 지하 1층 유적전시관에 놓인다.

장준용 동래구청장은 “문명석은 동래구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동래구민에게 큰 자부심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