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면 좋으련만, 의사면허 하나로 오만”… 서울의대 교수 4인, 의대생·전공의 직격

김승환 2025. 3. 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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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력 있는 대안없이 1년 보내”
악성 댓글 행태·박단 글 공개비난
“잃은 신뢰, 규제로 돌아와” 경고
교육부 “복귀 안 하면 학칙대로”
의료계 일각 “제적 거론 부적절”
“현재의 투쟁 방식과 목표는 정의롭지도 않고 사회를 설득할 수도 없어 보인다.”
 
서울대 의대 교수 4명이 17일 의대생·전공의 단체를 겨냥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냐, 아니면 대한민국 의료를 개선하는 것이냐”며 이같이 주장했다. 교육당국과 대학이 이달 말을 시한으로 두고 의대생 복귀를 설득하고 있는 가운데 의대생·전공의 사이에서 수업 복귀 의대생을 겨냥한 비난이 쏟아져 나오자 서울대 의대 교수 일부가 공개적으로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은 것이다.
(왼쪽부터) 서울대의대·병원 소속 강희경 소아청소년과 교수, 오주환 국제보건정책 교수, 하은진 중환자의학과 교수, 한세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서울대의대·병원 소속 하은진 중환자의학과 교수·오주환 국제보건정책 교수·한세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강희경 소아청소년과 교수 4명은 이날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란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의·정 갈등) 사태가 지속되면서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실망하고, 절망하고 있다”며 “메디스태프, 의료 관련 기사 댓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페이스북 글들, 그 안에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전문가로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이 넘쳐난다. 정말 내가 알던 제자, 후배들이 맞는가, 이들 중 우리 제자, 후배가 있을까 두려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러면서 “조금은 겸손하면 좋으련만 의사 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는 모습도 오만하기 그지없다. 그 글들을 읽다 보면 ‘내가 아플 때, 내 가족이 이들에게 치료받게 될까 봐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의대생·전공의 단체가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에 대해 “오류를 지적하며 용기와 현명함을 보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로드맵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1년을 보냈다. 오직 ‘탕핑’(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대안 없는 반대만이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재 진행 중인 의료 시스템 붕괴가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실습실 모습. 뉴시스
교수들은 “우리는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믿을 만한 전문가가 아닌, 이기심에 따른 의료 시스템 붕괴의 원흉으로 비치고 있다. 잃어버린 신뢰는 더한 규제, 소송, 가혹한 환경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결정할 때”라고 했다. 이들은 “정부와는 다르게, 책무를 다하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개혁을 이끌 것인가, 사회와 의료 환경을 개선하면서도 우리의 근로 환경 역시 지속 가능하게 바꿔갈 것인가, 이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서로 도와가며 주도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낙인찍혀 독점권을 잃고 도태될 것인가”라며 “이제 여러분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목소리는 이대로 가다간 1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을 풀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단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최근 의대 학장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달 말 전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내년 의대 모집인원 3058명 동결’을 수용하는 등 한 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의대생·전공의 단체가 강경한 기조를 굽히지 않아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공개 저격한 박 비대위원장은 이날도 페이스북에서 입장문을 낸 교수들을 “교수라 불릴 자격도 없는 몇몇 분들”이라 칭하고 “논리도 없고 모순투성이인 이 글을 비판 없이 보도하는 건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모습. 뉴시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이달 말까지 돌아오지 않는 의대생에 대해 ‘학칙에 따른 처리’가 불가피하다며 수업 복귀를 이날 재차 호소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례브리핑에서 “2024학년도와 달리 2025학년도에는 특례가 없고 학칙에 따라 처리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꼭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교육부와 의대가 의대생 복귀를 촉구하며 ‘제적 가능성’을 거론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의대 학장들께 드리는 글’을 통해 “교육부와 일부 의대 학장들은 의대생들의 일괄 휴학 수리 불가와 함께 제적 가능성을 거론한다”며 “압박과 회유로는 교육 정상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제적을 수단 삼아 의대생을 몰아세울 게 아니라 이들 입장을 지지하는 게 우선돼야 한단 것이다. 전의교협은 최근 정기총회를 통해 조윤정 고려대 의대 교수의회 의장을 새 회장으로 뽑은 뒤 이번에 첫 메시지를 냈다.

원로 석학단체 대한민국의학한림원도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의 모집인원 3058명 동결 결정은) 지난 1년 넘게 의료대란의 주요 원인이 된 무리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스스로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3058명이란) 숫자마저 학생들의 복귀를 조건으로 삼아 학생들에게 각종 불이익과 시한적 압박을 가하는 정부의 태도는 놀랍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의대생들을 향해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학에 투신한 학생들이 신중한 논의를 바탕으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을 기대한다”며 “민주적 의사결정 원칙에 따라 반목과 분열 없이 대한민국 의료를 이끌어갈 미래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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