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이 목숨 걸고 끝끝내 노정의에게 하고 싶었던 말('마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박미정 씨가 마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통계는 이미 그 리포트를 쓸 때 실패했습니다. 동진이는 박미정 씨가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실험한 게 아닙니다. 동진이에게는 당신이 마녀여도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채널A 토일드라마 <마녀>에서 동진의 절친 중혁(임재혁)은 미정(노정의)을 찾아가 동진(박진영)이 그간 목숨을 걸고 해왔던 일들의 진짜 의미를 들려준다.
그건 사랑이었다. 박미정이 마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안간힘이 아니었다. 설혹 마녀라 하더라도, 그래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녀를 어떻게든 사랑하겠다는 의지였다. 미정을 찾아가 당신에게 마음을 준 남자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심지어 죽었다고 해도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해주겠다는 동진의 마음이었다.
다가갔던 남자들이 모두 사고를 당했던 일 때문에 마녀라 불리게 된 사람이, 그것 때문에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한 채 외롭게 살아가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가 통계학을 통해 그녀가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려다 실패하자 그래도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 이야기. <마녀>의 서사는 기막힌 면이 있다.
애초 <마녀>라는 제목이 가진 '마녀사냥'의 부당함을 꼬집는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설혹 마녀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라면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인터넷 세상에서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 많은 무고한 이들이 마녀사냥 당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지 않은가.
계속 벌어지는 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가며 동진이 실험을 거듭한 끝에 발견한 '마지막 법칙'은 마녀조차 사랑하게 만드는 어떤 존재만이 이 저주를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진의 온몸을 던진 사랑은 그렇게 조금씩 미정의 마음을 연다. 저주는 결국 마녀로 지목당한 당사자 역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열리는 순간 풀린다는 걸 이 '마지막 법칙'의 설정이 담아낸다.
끝끝내 <마녀>가 동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실험들을 했고, 조사를 했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이 직접 그 실험에 뛰어들었다. 실험이라는 다소 딱딱한 표현을 썼지만 그건 미정을 향해 다가가는 동진의 변함없는 노력의 다른 말일 것이다.
전체 서사를 보면 <마녀>는 결국 동진과 미정의 절절한 멜로를 그린 작품이지만, 그 장르는 판타지 스릴러다. 게다가 '마녀사냥'이라 우리가 일컫는 사회적 메시지 또한 담겨 있다. 그래서 강풀 웹툰 원작다운 독특한 서사를 가진 작품임에 틀림없다. 다만 드라마화되면서 10부작의 틀 안에 이 기막힌 원작이 제대로 빛을 발하게 연출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너무 질질 끄는 연출 구성은 시청자들을 그 절절한 감정선에 올라타지 못하게 만든 면이 있다.
굳이 드라마로 제작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작품이다. 2시간 정도 분량의 영화로 압축해 만들었다면 독특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박진영이나 노정의는 물론이고 후반부에 이르러 서브 멜로의 케미 또한 보여준 임재혁과 장희령의 연기도 칭찬할만 하지만, 이런 좋은 지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연출은 칭찬하기가 어렵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같은 장면을 매 회 반복적으로 집어넣은 건 의도라기보다는 늘리기 같은 느낌이 더 강해서다.
가능하다면 감독판으로 압축한 <마녀>가 나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사들을 고려하면 6부작 정도가 적당해 보이는데, 그렇게 밀도 있게 그려졌다면 <마녀>는 분명 늘 신박한 서사를 구축해내고 있는 강풀의 세계관에 걸맞는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마음이 많이 간 작품인 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는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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