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2위도 이커머스 공습·내수 불황에 휘청] MBK 소유 홈플러스, 영업 적자·신용 등급 추락에 ‘회생’ 신청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3월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기업 회생 절차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채무자나 기업이 주주나 채권자에게 채무 일부를 변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법적 절차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소유한 홈플러스는 쿠팡 등 국내 이커머스 약진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공세를 받는 상황에서 내수 침체가 계속되자 2021년 이후 영업 손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급기야 신용 등급이 추락하자, 불과 나흘 만에 회생 신청을 했다. 2020년대 들어 이스타항공, 쌍용차, 티메프(티몬·위메프), 신동아건설, 대우조선해양건설 등이 기업 회생을 신청했지만, 홈플러스 매출(7조원)에 못 미치는 회사들이다. 홈플러스의 좌초가 오프라인 유통의 구조조정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용 등급 강등 나흘 만의 회생 신청
전국에 126개 매장과 직원 2만여 명을 둔 홈플러스를 좌초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신용 등급 강등이다. 2월 28일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은 “영업 실적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점, 과중한 재무 부담이 지속하고 있는 점 등을 반영했다”며 홈플러스 기업 어음과 단기 사채 신용 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업계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기점으로 이커머스 시장의 급성장과 소비 침체 장기화 등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오프라인 유통 업계의 수익성이 나빠졌다고 본다.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도 실적 부진을 이유로 2024년 신용 등급이 기존 AA에서 우량 등급 마지노선 AA-로 하향 조정됐다.
홈플러스는 2022년 2월 결산 회계연도부터 2024년 2월까지 3년 연속 1000억~2000억원대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내수 경기 부진 지속도 영향을 줬다. 국내 소매 판매는 2024년 10월과 11월 각각 전달 대비 0.7%씩 감소했다가 12월(0.2%) 소폭 늘었지만, 올해 1월 0.6% 감소로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홈플러스는 리스 부채를 제외하고 금융 부채가 2조원에 달한다. 이 중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가 1조1400억원에 이른다. 1월 31일 기준 부채 비율은 462%에 달했다. 이자 비용으로만 1년에 4000억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신용 등급이 하락하면서 향후 단기자금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단기자금 상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며 이번 회생 절차 신청이 예방적 차원임을 강조했다.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가 신청한 회생 절차에 대해 즉각 개시를 결정하고, 절차 중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법원은 대표자를 심문한 뒤 신청 11시간 만에 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홈플러스가 신용 등급 강등까지 직면하게 된 배경에는 거세지는 이커머스 공습, 고물가와 내수 침체, 부동산 침체에 따른 자산 매각 난항, 대형마트 옥죄는 규제 등이 있다. 홈플러스의 부동산 자산은 4조7000억원이다.
“정상 영업” vs 채권 투자자 수천억 손실 우려
문제는 향후 영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번 회생 절차 신청은 사전 예방적 차원으로, 홈플러스 대형마트, 익스프레스, 온라인 등 모든 채널의 영업은 정상적으로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회생 절차 개시로 금융채권 상환은 유예되지만, 협력 업체와 일반적인 상거래 채무는 회생 절차에 따라 전액 변제된다. 임직원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현 김광일·조주연 공동 대표 체제도 유지된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을 신청한 후 홈플러스 상품권 사용 중단 제휴사가 잇따르고 있다. 빕스와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과 CJ CGV, 신라면세점, 앰배서더호텔 등이 홈플러스 상품권을 받지 않는다.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발생할 수 있는 상품권 변제 지연 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지난해 티메프 미정산 사태처럼 상품권이 무용지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상품권은 원칙적으로 금융채권이 아닌 상거래 채권으로,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가도 전액 변제 가능하다. 단 변제까지는 법원 승인이 필요하므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
홈플러스 채권 투자자 손실이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월 4일 기준 만기가 남아 있는 홈플러스의 CP와 전자단기사채는 1940억원 규모다. 신영증권, 한양증권, BNK투자증권 등이 발행해 타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매도했다. 대부분 개인과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테일 부문에서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홈플러스에서 협력업체에 대한 정산이 지연돼 피해가 확산되며, 납품을 중단하는 협력업체들이 늘고 있다. LG전자는 3월 6일부터 납품을 일시 정지했으며, 7일 기준 오뚜기와 팔도, 동서식품, 롯데칠성 등 주요 식품기업들도 한시적으로 납품을 중단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Plus Point
5조 빌려 홈플러스 사들였던 MBK에 타격…책임론 부각도홈플러스는 삼성물산 유통 부문의 할인점 사업으로 1997년 출범한 후 수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현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2015년 9월, 7조2000억원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당시 MBK는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원을 마련하고 나머지 5조원을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받아 인수 자금을 충당했다. 이후 홈플러스 20여 개 점포를 처분하고 4조원가량 빚을 갚았으나 실적 부진이 계속됐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4년 연간 유통 업체 매출 현황’에 따르면, 유통 업계 총매출 가운데 대형마트 비중은 2020년 17.9%에서 2024년 11.9%로 하락했다.
MBK는 홈플러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할 매각 등 수년간 새 주인 찾기에 골몰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업 불황 등으로 인수자를 찾지 못했다. 인력 감축과 점포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조 반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등의 규제도 매각의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회생 신청 열흘 전인 2월 21일 70억원 규모의 CP와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나타나 MBK의 책임론도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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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회생 절차자금난에 직면한 기업이 채무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받고, 법원의 지휘를 받아 기업을 살리는 절차. 법원에서 지정한 제삼자가 기업 활동 전반을 관리하는 법정관리와 달리 기존 경영자가 계속해서 경영을 맡는다. 회생 법원이 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하면 기업은 회생 계획안을 마련해 채권자 동의를 얻고 법원에서도 인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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