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중국산’이 아니다…한국 덮친 ‘Made in China’

조유빈 기자 2025. 3.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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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락·샤오미, 한국 시장 정착…법인 설립 등 본격 공습 ‘원년’
유해 생활용품·조악한 장난감 등 소비재 품질 논란은 여전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중국산'이 달라졌다. 싸고 형편없는 제품으로 여겨지던 옛날의 중국산이 아니다. 최신 기술을 장착한 중국 가전이 한국 시장에 연착륙했다. 특히 올해는 중국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할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로보락, 샤오미, BYD 등 중국 브랜드가 제품 출시 행사와 한국법인 설립 카드를 띄웠고,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한 데 이어 '팬덤'을 기반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자신감까지 드러내고 있다.

하이테크를 탑재한 'Made in China'가 글로벌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들이 한국 안방까지 공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품질 논란'에 휩싸인 다른 중국 제품과 달리, 중국산 가전의 한국 상륙작전이 위기감을 조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들은 왜 중국의 하이테크 제품들을 달리 보게 되었을까.

'저가 제품'에서 '가격 대비 고품질'로 격상 

최근 신혼 가전을 장만한 김미정씨(가명·36)는 로봇청소기 브랜드로 중국 로보락을 선택했다. 김씨는 "로보락이 로봇청소기 분야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주변에서 신혼 가전으로 추천을 받아 구매했다"며 "배터리도 오래가고 똑똑해 주변에서도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혼수 가전'을 모두 삼성·LG로 선택해도, 로봇청소기만은 로보락 제품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보락은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백화점 행사 브랜드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일명 '3대 이모님'이라 불리는 3대 필수 가전(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 중 로봇청소기 분야에서는 유독 한국 브랜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내 소비자들은 브랜드 인지도, AS 등을 고려해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으면 국내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분야는 예외다. 최근 로보락이 선보인 신형 로봇청소기 S9 맥스V 울트라 일반형의 가격은 184만원이다. 2024년 LG전자가 출시한 '로보킹AI 올인원(프리스탠딩·199만원)', 삼성전자가 출시한 '비스포크 AI 스팀(179만원)'과 비슷하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데도 중국산 로봇청소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성능이다. 국내 브랜드 제품과 로보락 로봇청소기의 기능을 비교하는 후기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어지고 있다. 선호 현상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2024년 상반기 기준 로보락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46.5%다. 특히 150만원대 이상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65.7%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가격'에서 '성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로보락은 올해 초 '팔 달린 로봇청소기'까지 공개하면서 기술력에 방점을 찍었다. 양말, 수건 등 가벼운 물건을 들어 치우고 청소할 수 있는 모델 '사로스 Z70'으로, 연내 국내 출시까지 예고했다.

중국의 간판 가전기업이 국내시장에 균열을 내면서, 그동안 '대륙의 실수'로 치부됐던 중국의 기술력이 시장을 흔들 '대륙의 혁신'일 수 있다는 위기감이 떠오르고 있다. 대륙의 실수란 별명을 만들어낸 샤오미는 최근 스마트폰 최상위 모델 '샤오미 15 울트라'를 공개했다. 글로벌 출시가는 무려 228만원으로, 삼성전자와 애플의 최상위 모델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다. 독일의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와 공동 기술 개발을 통해 카메라 성능을 끌어올리고, 화면 밝기도 갤럭시나 아이폰의 최상위 모델 이상으로 올리며 프리미엄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 1월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 2025'에서는 한국의 주요 기업인들이 "중국의 하드웨어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며 직접 중국의 기술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올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 중국의 전기차 브랜드 BYD의 행보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성비와 기술 혁신을 동시에 내세운 BYD는 최근 한국에서 소형 전기차 아토3 판매를 시작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100만 대 이상을 판매하며 상품성을 입증한 아토3는 3000만원대 초반의 경쟁력 있는 가격, 기본으로 장착한 편의 사양, 티맵·플로 등 한국 특화 서비스 탑재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성비에 놀랐다" "입문용 전기차로는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시승 후기들이 올라왔다.

BYD는 테슬라를 꺾고 전기차 판매량 1위를 차지하며 세계 전기차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는 "BYD는 유럽 등에서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기술력을 내세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며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판매 확대를 넘어 전기차 생태계 전반에서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낮은 가격과 물량 공세로 해외시장을 공략했던 중국 브랜드들이 '딥테크'란 무기까지 장착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가 주도의 강력한 기술 개발 정책과 풍부한 인적자원이 맞물리면서 발생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유통학회 고문인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과거에는 중국산 제품의 품질이 낮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최근 기술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소비자들이 성능을 보고 선택하는 추세"라며 "중국 정부의 지원과 규제 철폐로 기술 분야에서의 혁신이 한국보다 빠르게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 제품의 디자인 혁신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고, SNS상에서도 긍정적 후기가 이어지는 등 인식 변화도 감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샤오미는 1월1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한국법인 설립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스마트폰 14T를 선보였다. ⓒ연합뉴스

쿠팡·G마켓 통해 공습 본격화

로보락·BYD·샤오미·에코백스·TCL 등 중국의 간판 브랜드들이 미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한국을 주시한다. 로봇청소기·대형가전·스마트폰·자동차 등 카테고리도 다양하다. 샤오미는 2024년 말 한국법인을 출범한 데 이어, 1월부터 스마트폰·TV·청소기·공기청정기·가습기 등을 국내에 출시했다. 한국에서의 '팬덤'을 바탕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3월10일부터는 신형 스마트폰 '포코 X7 프로'의 공식 판매를 시작하면서 가성비와 고성능을 내세웠다. 로보락은 2월20일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2025 로보락 론칭쇼'를 열고 신제품을 공개했고, 에코백스는 2월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로봇청소기 '디봇 X8 프로옴니'와 '원봇'을 한국 시장에 공개했다.

특히 '직접 구매(직구)'할 필요 없이 신뢰도 높은 채널을 통해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중국산 제품의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샤오미의 포코 X7 프로의 경우 쿠팡·네이버 브랜드 스토어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2019년부터 샤오미 제품의 사전 예약판매 등을 진행해 오고 있는 쿠팡에서의 판매량은 샤오미 코리아 공식 사이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할인 혜택이나 30일 무료 반품 정책, '안심 케어' 시스템 등의 영향이다. 쿠팡이 직수입하는 TCL TV 등은 익일 설치도 가능하다.

로보락·에코백스 등 중국산 로봇청소기의 성장 배경에는 디지털·가전에 특화된 G마켓이 있다. G마켓의 대표적 할인 행사인 빅스마일데이에서 로보락은 '16회 연속 단일 제품 판매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24년 11월1~10일 진행된 빅스마일데이 행사에서 로보락이 전작 S8 맥스V 울트라 시리즈로 올린 매출은 153억7000만원에 달한다. 2024년 5월 행사 당시에는 로보락에 이어 나르왈 로봇청소기가 매출 2위를 차지했고, 에코백스 로봇청소기도 개별 상품 9위에 오르는 등 중국산 로봇청소기들이 호성적을 기록했다. 과거 중국산 등 해외 제품을 구매하는 데 걸림돌이 됐던 배송과 설치 문제, AS 문제 등이 플랫폼을 통해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브랜드들도 자체적인 '보증 서비스'를 약속하는 추세다. 로보락은 공식 AS센터 11개소, 롯데하이마트 수리센터 11곳 등 총 22곳의 AS센터를 운영한다. 315개 롯데하이마트 매장을 통해서도 AS 접수가 가능하도록 했다. 직접 방문 접수가 어려운 고객을 위해 택배 수거용 포장박스 제공 서비스, 방문 수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편의성도 높였다는 설명이다. 고질적인 AS 문제로 비판을 받아왔던 샤오미도 직영 센터 운영 계획을 밝히면서 해당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겠다고 했다.

1월16일 인천 중구 상상플랫폼에서 열린 '중국 BYD 승용 브랜드 론칭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아토3가 소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일한 단점은 '중국산'?…여전한 논란들

전략도 다양화한다. 샤오미는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미 스토어'라는 이름의 오프라인 판매 채널을 상반기 중 오픈할 계획이다. 국내 1호점은 여의도 IFC몰이나 삼성동 코엑스에 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외산폰의 무덤'이라 불리는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알뜰폰 사업자와도 손을 잡았다. KT 알뜰폰 계열사인 KT엠모바일과 손잡고 2년간 월 2만1000원에 레드미 노트 14프로 5G 모델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내놓은 것이다. 한국 시장에서 쓴맛을 본 샤오미의 재도전이 통할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중국산 제품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유일한 단점은 중국산'이라는 표현이 그것을 입증한다. 중국 제품들의 기술력은 글로벌에서도 인정받고 있지만,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의 심리 속에는 불신이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 최근 딥시크의 '보안 논란'이 떠오르면서 중국산 제품을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보태졌다.

특히 불신에 불을 붙인 것은 소비재 분야의 품질 논란이다.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한국에 진출한 C커머스는 초저가를 무기로 이용자들을 불러들였지만, 유해성 논란과 품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학용품이나 주얼리 등에서 납, 카드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등 유해물질이 국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고, 조악한 어린이 장난감의 안전성 문제도 지적됐다. 최근에는 알리에서 판매되는 일부 디지털 도어록이 화재 시 폭발할 수 있다는 소비자원의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제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작용하는 이상, 샤오미·BYD 등 브랜드가 여전히 한국에서 유의미한 실적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중저가 시장에 균열을 낸다 해도 큰 판을 엎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아토3 차량 인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BYD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나고 있다. 올해부터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해 배터리 충전량 정보 기능을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아토3에는 해당 기능이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BYD는 1년 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탑재할 것을 약속했으나, 환경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보조금이 축소될 수 있는 상황이다. 차량 인도 시기가 불투명한 가운데 중국 전기차에 대한 불신을 타개해야 할 첫 타자가 가로막히면서 브랜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오프라인 스토어 등을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려는 중국 기업들의 시도가 부정적인 이미지 개선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중국 브랜드는 AS 등 소비자 불만을 개선하고 오프라인 스토어 등으로 이미지를 제고하면서 한국 소비자 수준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익성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봤다. 또 "국내 기업이 중국 브랜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기술 우위, 디자인 우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투자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도 중소기업 지원,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국내 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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