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나이에 여전히…" 끝나지 않은 깔창 생리대 논란 [추적+]

송윤정 책임연구원, 김정덕 기자 2025. 3. 1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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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생리용품 지원사업 점검해보니
예산은 늘고, 지원 대상도 확대
하지만 예산 실집행률은 하락
꾸준한 지적에도 개선 안 돼
신청 통한 지원보다 발굴 필요
보편적 월경권 보장 고민해야

취약계층 가구의 여성청소년들은 관할 동주민센터나 읍ㆍ면사무소에서 생리용품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 2016년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했다'는 경험담을 언론이 보도하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시스템을 바꾼 덕분이다. 그럼에도 여성청소년들의 생리대 걱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생리용품 지원사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저소득층 여성청소년 중엔 생리용품 지원사업 대상에 속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신발 깔창으로 버텼다." 2016년 5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소개됐던 취약계층 여성청소년들의 안타까운 경험담을 기억하는가. 국내 생리대 생산 1위 업체인 유한킴벌리가 원가 부담을 이유로 생리대 가격을 인상한다고 밝힌 직후에 터진 이야기였다.

그러자 여성들의 불만이 불거졌다. 2~3년마다 주기적으로 생리대 가격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커뮤니티에선 비싼 생리대로 인해 발생한 일화들이 공유됐다.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는 휴지로, 누군가는 폐의류로, 또 누군가는 결석으로 생리를 견뎌냈다는 거였다. 생리대 가격을 더 올리면 취약계층 여성청소년들이 피해를 입지 않겠냐는 우려와 함께였다.

미디어들은 이 내용을 기사화했고,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우리 사회도 달라졌다. '여성의 생리는 생물학적 현상이기 때문에 생리대는 필수품이고, 취약계층 여성청소년들이 필수품인 생리대를 사지 못해 고통받아선 안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정부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보건복지부는 취약계층의 여성청소년이 돈이 없어 생리용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생리용품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2016년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 지원했다. 2017년엔 본예산에 의료급여나 생계급여 수급 여성청소년들에게 생리용품을 지원하는 예산사업을 포함했다.

법도 생리용품 지원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손봤다. 2017년 청소년복지지원법을 개정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여성청소년이 생리용품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지원할 수 있다(제5조3항)"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생리용품 지원사업을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2018년)한 후부터는 꾸준한 개선 과정을 거쳤다. 2019년부터는 다양한 국가바우처를 통합한 국민행복카드로 좀 더 편리하게 생리용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4월엔 청소년복지지원법 제5조3항의 '지원할 수 있다'를 '지원한다'고 한번 더 개정해 국가ㆍ지자체의 지원을 의무화(2022년 4월부터 시행)했다.

지원 대상도 늘렸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생계ㆍ의료ㆍ주거ㆍ교육급여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지원법상 지원 대상까지 포함했다. 나이는 당초 '취약계층 11~18세'에서 '취약계층 9~24세'로 확대했고, 지원 단가는 월 1만1500원에서 월 1만4000원(2025년 기준)으로 올렸다.

이에 따라 신청인 1인당 연간 최대 16만8000원의 바우처를 지원받을 수 있다. 올해 여성가족부의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사업 예산은 164억원이다. 2020년(65억원)보다 153% 늘어난 것으로 연평균 증감률은 20.4%에 달한다.

취약계층 여성청소년들에겐 주기적인 생리용품 구매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자, 그럼 생리대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은 이제 없는 걸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2024년 여성환경연대의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사업 사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원사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는 과정이 번거롭다(34.4%)' '관할 지자체 방문이 어렵다(21.9%)'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하기 어렵다(18.8%)' '지자체마다 지원 대상이 달라서 내가 대상자인지 아닌지 헷갈린다(12.5%)' '지원사업 관련 안내를 받지 못했다(12.4%)'는 이유에서였다.

지원이 필요한데도 제대로 지원을 못 받은 이들 중에는 '신청 대상인지 모르는 경우'가 38.5%, '경제적 어려움이 있지만,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는 이들은 29.2%나 됐다.[※참고: 현재 생리용품 지원사업 신청은 주민등록상 거주지 관할 지자체(읍ㆍ면사무소, 동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복지로 홈페이지 혹은 앱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쉽게 말해서 지자체의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사업이 표면적 성과는 달리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지자체에 교부된 예산의 실집행률을 보면, 2020년 87.7%, 2021년 84.1%, 2022년 64.3%, 2023년 84. 6%에 불과했다.

이렇게 실집행률이 낮은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저조한 신청인데, 배경은 뻔하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관할 지자체를 방문한 후 가난을 증명하면서 도움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가난한 환경일수록 아이들의 온라인 접근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양육자가 지원을 받는 것에 비협조적인 경우, 기존엔 지원 대상이었지만 가정폭력으로 인해 1인 가구로 독립하면서 지원을 못 받게 된 경우 등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

다른 하나는 지자체가 적극적인 행정을 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자체의 생리용품 지원을 위한 행정은 다소 소극적인 듯하다. 지자체들이 목표로 제시한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사업 신청률은 2021년 88.0%, 2022년 85.0%, 2023년 77.0%로 해가 갈수록 하향 조정되고 있다.

반면 해당 사업의 성과 달성도는 2021년 102.3%, 2022년 83.8%, 2023년 104.0%다. 2022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성과를 초과 달성했다는 거다. 성과 달성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목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사업의 집행률과 신청률 문제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 국회예산정책처 등을 비롯해 국정감사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보편적 월경권 보장도 고민해봐야 할 때다.[사진=뉴시스]

그럼에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취약계층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서라면 정책적 개입이 필수적인데 목표치도, 신청률도, 집행률도 낮다는 건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성과 측정 방법 개선, 신청률(접근성)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 복지신청주의에서 복지발굴주의로의 전환, 신청 시점과 무관한 정액 지원(제도 형평성 확보), 생리용품 가격안정화 정책 추진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

'보편적 월경권'을 보장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생리는 생애주기에 따라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편주의적 복지는 수혜자의 낙인효과를 줄이고, 사각지대도 없앨 수 있다. 목표를 낮춰서 성과를 달성하기보다는 수요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라는 거다.

송윤정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7566767@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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