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국가가 보낸 입양아 죽어가는데…국가 수수방관, 말이 되나요"
"아내는 작년 8월 이후 매일 울면서 지내…자녀들도 유전병 가능성 존재"
"입양특례법 개정해야"…몽테뉴해외입양연대 배진시 대표 등 3명 동시 인터뷰
[※ 편집자 주= 이번 인터뷰 기사는 1987년 갓난아기 상태에서 프랑스로 입양 가서 어른이 됐지만 이제는 유전병으로 생명이 위험한 장성탄 씨의 사연을 계기로 기획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장 씨의 부인이 보내온 편지를 소개한 기사가 [삶] "한국서 입양온 남편 생명 위험…제발 우리 가족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동시 송고됐습니다. 입양 문제와 관련한 인터뷰 기사는 이번 기사를 포함해 모두 3차례 송고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사는 해외로 입양된 사람들의 고통, 구조적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한국의 아동권리보장원(NCRC)은 내 남편의 친생부 이름, 성, 나이 또는 생년월일만 알고 있을 뿐, 주민등록번호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 정보만으로는 친생부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병은 유전병이어서 남편이 유전자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친생부 또는 친생모 쪽에 이 병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되는 임상 시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 병은 치료제가 없지만 임상 시험을 통해 증상을 완화하고 수명을 연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남편의 친생모가 이미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실 것이라는 점을 이해합니다. 그녀의 삶을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친생부모님이 제 남편의 존재를 밝히고 싶지 않다는 것도 존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병이 친생부 또는 친생모의 가족력에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남편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저는 작년 8월부터 저는 매일 울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끔찍한 병을 알게 된 이후로 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남편을 구할 수 없겠지만 그가 좀 더 적은 고통 속에서 품위 있게 조금 더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남편은 어릴 때 버려졌습니다. 한국 입양인으로서 자기 뿌리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치명적인 유전병까지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하는 그의 심정을 생각해보십시요.
대표님, 아마 우리는 서울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남편은 점점 기력이 떨어지고 있으며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친생부 살아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위의 내용은 작년 12월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가 로리안 시몬(41)이라는 프랑스인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메시지다.
그녀의 남편 마티유 성탄 푸코(38. 한국이름 장성탄)씨는 1986년 12월 한국 익산시(당시 이리시)에서 태어났고. 4개월 만에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로 입양됐다.
장씨는 치명적 불면증(FFI, Fatal Familial Insomnia)에 걸린 것으로 보이며,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인은 이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남편 친생부모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아동권리보장원은 입양특례법상 친생부모의 동의 없이는 친생부모의 인적 정보를 줄 수 없다고 한다. 인적정보는 전화번호, 주소지 등을 말한다.
치명적 불면증은 매우 희귀한 질환이다. 치료가 불가능하기에 증상 완화와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생존 기간은 7개월∼6년 정도이며 평균 생존 기간은 18개월이라고 한다. 환자는 본인이 죽어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분류된다. 더욱이 자녀들도 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 조기 진단 및 예방이 필요하다.
"국가가 주도해서 어린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고 그들이 죽음에 직면했다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MOAA) 대표와 이승훈 MOAA 사무국장,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은 지난 12일과 14일 연합뉴스와의 두차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아이들 살린다고 국가가 입양 보냈는데, 지금 그 아이가 성장해서 죽어가고 있다"면서 "국가가 이걸 방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은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 등은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배 대표는 철학 박사학위 취득 목적으로 2005년 프랑스에 유학 갔다가 현지 대학교 등에서 한글을 가르쳤는데, 그때 많은 한국 출신 입양인을 만나게 됐다. 귀국 후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입양인들을 돕기 시작했고, 작년 1월에는 MOAA를 창립했다. 그는 몽테뉴인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집필과 강의도 하고 있다.
이승훈 MOAA 사무국장은 한약국을 운영하는 시민인데, 별도로 시간을 내서 입양인들을 돕고 있다. 입양인들이 한국에 오면 직접 승합차를 운전해 이동시켜주고, 특정 지역 방문과 행정기관 서류 처리 등을 돕고 있다. 남들을 돕는 일을 좋아한다는 그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권희정 소장은 2008년부터 5년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다. 미혼모 문제를 18년간 연구하고 글을 쓰다 보니 입양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다음은 인터뷰 질문-답변.
-- 장성탄 씨와 부인은 어떤 사람인가.
▲ (배진시 대표) 장씨는 석공과 목수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의 문화재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부인은 프랑스인으로 상업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피아노 음악원 교육과 의료 분야의 교육도 받았다고 한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남편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다. 자녀로는 3세의 딸 엘로이즈 성탄과 1세의 아들 에스테반 성탄이 있다. 현재 이들 가족은 로리안의 친정집에서 살고 있다.
-- 장씨의 양부모는 어떤 분들인가.
▲ (배진시 대표) 교육 관련 일을 하신다. 중산층 가정으로 보인다. 양부모는 아이가 없어서 장씨를 입양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말리에서 여자아이도 입양했다. 장씨는 이 여동생과 함께 서로 의지하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 장씨의 친생부모는 왜 장씨를 입양 보냈다고 하나.
▲ (배진시 대표) 친생 엄마가 홀트아동복지회에 남긴 기록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당시 친생모는 20대 초반의 미용사였고, 친생부는 20대 후반의 무직이었다고 한다. 친모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 친부는 당황해서 도망갔다고 한다. 해외 입양은 친생모가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 장씨와 부인이 애타게 친부모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 (이승훈 사무국장)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다 병원에 갔더니 '치명적 불면증(FFI]'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병원 측은 친생부모의 DNA 유전자 샘플을 가져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검사 결과에 따라 특별 유전병으로 등록해서 의료적 지원과 경제적 지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장씨는 한국 어디에 연락했나.
▲ [배진시 대표] 작년 8월에 아동권리보장원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지만 현행법상 친생부모 본인의 동의 없이는 연락처나 주소 등 인적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장씨는 친생부모를 만나야 유전자 검사 샘플을 부탁해서 프랑스 병원에 가져갈 수 있는데, 애당초 만날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이다.
-- 그래서 장씨가 몽테뉴해외입양연대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 것인가.
▲ (배진시 대표) 부인 로리안 시몬 씨가 나한테 연락해온 것은 작년 12월 8일이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전화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촉구해달라는 메시지였다.
-- 아동권리보장원에 전화했나
▲ (이승훈 사무국장) 내가 아동권리보장원 직원과 통화를 했다. 그 직원은 여전히 장씨의 친생부모 인적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1월 중순께 보건복지부와 국가인권위에 민원을 넣었다.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 보건복지부와 국가인권위의 반응은 무엇인가.
▲ (이승훈 사무국장) 아직도 답변이 없다.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라는 말만 들었다.
-- 아동권리보장원은 왜 친생부모의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인가.
▲ (배진시 대표) 입양특례법 36조 2항은 친생부모가 원하지 않는다면 주소지나 전화번호 등 인적정보를 입양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 기관의 설명은 타당한가.
▲ (권희정 소장) 이 법률 36조의 3항은 '친생부모가 사망이나 그 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입양자가 된 사람의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친생부모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입양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장씨의 경우, 친생부모 인적 정보를 의료목적으로는 공개할 수 있다는 쪽으로 법률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 아동권리보장원은 '그 밖의 사유'는 사망에 준하는 경우로 보고, 장씨 사례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인가.
▲ (이승훈 사무국장) 그렇다. 아동권리보장원처럼 해석하는 법조인들이 있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친생부모의 인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돕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 무슨 이야기인가.
▲ (권희정 소장) 국가가 주도해서 입양을 보냈고, 이제 그 아이가 어른이 돼서 죽어가는데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좀 더 적극적으로 입양인의 입장에서 법률을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입양특례법 1조는 '입양자가 되는 아동의 권익과 복지를 증진하는 것을 이 법의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아동권리보장원은 현재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나.
▲ (이승훈 사무국장) 다시 나름대로 친생부모와 접촉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아직 구체적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아쉬운 것은 작년 8월부터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장씨에게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다. 장씨는 그사이에 건강 상태가 많이 악화했다. 지금은 부인과의 소통도 제대로 안 된다고 한다,
--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하나.
▲ (권희정 소장) 친부모가 인적 정보 공개를 거부할 때 법적으로 어떻게 강제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업무 매뉴얼도 만들어놔야 한다.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입양 간 아이가 잘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친생 부모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아동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 법률 개정이 필요한가.
▲ (이승훈 사무국장) 아동권리보장원 간부도 입양특례법 개정을 추진해보겠다고 했다. 장성탄씨 같은 사안의 경우, 친생부모의 인적정보 공개 여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국회 등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 친생부모의 인적정보를 제공하도록 강제한다면 친생부모의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
▲ (권희정 소장) 일방적 가족 찾기가 상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밀로 입양을 보낸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입양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인권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권리도 있다. 법원이 개별 사안을 심사해서 친부모의 개인정보 보호보다 입양인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비밀을 보장하면서 친생부모에게 접근하고 상담하는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직원 교육도 필요하다.
--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 (권희정 소장) 부모의 비밀보다는 입양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영국은 1975년에 입양아가 18세가 되면 자기 출생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아동법에 명시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주마다 다른데, 입양아가 원하면 친생부모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 더 많아졌다. 유엔(UN)도 친생부모의 삶보다는 아동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천명하고 있다.
-- 장씨가 지금은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가 최근에 한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 (배진시 대표) 부인 로리안 씨에 따르면 장씨가 소통이 가능한 때에 한 말이 있다고 한다. "나로 인해 물꼬가 터져서 이런 위급한 순간에 정보가 좀 열렸으면 좋겠다. 생명권은 지켰으면 좋겠다. 건강에 대한 의료권은 보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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