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사라지면서 삶도 멈췄다” 노숙자 된 건설업 대표의 사연

이가영 기자 2025. 3. 1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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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를 운영하던 구철진(61·가명)씨가 사업 실패 후 노숙생활을 하던 차량. /이랜드복지재단

구철진(61‧가명)씨는 한때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했던 가장이었다. 하지만 5년 전 뇌경색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사업은 실패했고, 배우자와 이혼하며 가족과도 단절됐다.

회사 대표였던 그는 거주지도 없이 차량에서 생활하는 노숙자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꾸준히 일했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어서”였다.

구씨에게 더 큰 위기가 다가왔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청력이 급격하게 저하됐다. 건설 현장에서 청력은 노동자들의 생명줄과 같다. 크레인 소리나 동료들의 경고를 듣지 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건설업 재해자 중 약 35%가 추락 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한다. 이때 안전 신호를 듣지 못하는 경우 사고 위험은 3배 이상 높아진다.

이로 인해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은 일용직으로 고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큰 기계 소리에 항상 노출된 환경 특성상 국내 건설업 근로자의 평균 청력 저하율이 일반인보다 3배 높은데, 보청기 비용이 부담스러워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일을 하다가 귀가 어두워졌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귀가 안 들리니 일을 못 해서 경제적으로 더 궁핍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일용직마저 구하기 힘들어지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구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까운 행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센터에서는 긴급 임대주택과 자활센터를 통한 일자리 마련, 기초생활보장 수급권 취득을 지원했다.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수급권 심사 과정에서 구씨도 모르게 그의 건설업 면허로 소득 신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업 실패 후 노숙하며 방황하던 과정에서 누군가 구씨의 건설업 등록증을 도용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서류상으로 소득이 있었던 구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청력은 더 심각하게 저하되며 대인 소통마저 어려운 정도가 됐고, 자활센터를 통한 일자리 주선도 무산됐다.

보령시 복지재단을 통해 위기 상황을 전달받은 이랜드복지재단 SOS위고 봉사단 관계자는 “처음 만났을 때 구씨는 극심한 대인기피 증세를 보였다”며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소통 자체가 두려움이 된 상태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구씨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일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고 한다. 문제는 단 하나, ‘청력’이었다.

구씨가 지원을 받아 병원에서 진찰받는 모습. /이랜드복지재단

SOS위고 봉사단은 긴급 지원을 결정하고, 보청기 치료비를 즉시 지원했다. 보청기를 처음 착용한 날, 구씨는 몇 년 만에 세상의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공사장 소리가 이렇게 반갑게 들릴 줄은 몰랐다”며 “이제 다시 일할 수 있다”고 기뻐했다.

이건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청력을 되찾은 구씨는 보령 지역 자활센터를 통해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반년 후에는 비록 작지만 그만의 공간이 생겼고, 침대에서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구씨는 “처음 내 집이란 곳에서 TV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을 때, ‘내가 다시 사람 사는 삶을 살게 되는구나’ 싶었다”며 “차에서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내일을 계획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안정적인 직장과 더불어 동료들과의 대화도 점차 자연스러워지면서 단절되었던 인간관계도 회복하고 있다. 구씨는 “제가 받은 선물의 값을 매기자면, 금전적으로 보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그만큼 열심히 살아서 저보다 어려운 분들을 돕겠다”고 했다.

이랜드복지재단 관계자는 “사회적 취약계층 중에서도 특히 중장년 1인 가구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며 “단발성 지원을 넘어, 이들이 다시 자립할 수 있는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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