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특별법, ‘노동건강권’은 어쩌고?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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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노동자에게는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 즉 '노동 건강권'이 있다.
헌법 제32조가 모든 국민에게 '근로의 권리'를 부여하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 것도 노동 건강권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지금 반도체 특별법 도입을 요구하는 기업들은 노동 건강권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흐름으로 끝내 반도체특별법이 통과되고 만다면, 위협받는 것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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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노동자에게는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 즉 ‘노동 건강권’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우리 헌법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헌법 제10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헌법 제35조)’ 등으로부터 노동 건강권이 도출된다. 헌법 제32조가 모든 국민에게 ‘근로의 권리’를 부여하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 것도 노동 건강권의 토대가 된다.
한 주의 노동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노동시간 상한제는 이를 보호하기 위한 핵심 제도다. 국회는 2018년에 이를 도입하며 ‘실근로시간 단축’이 ‘시대적 과제’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이 제도의 합헌성을 확인하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되어 있는 국가로서 그로 인한 문제점이 오랜 기간 누적되어 왔는바, 주 52시간 상한제 조항을 통해 실근로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입법 목적은 매우 중대하다”라고 했다.
노동 건강권에 눈감은 반도체특별법
그런데 최근 이 제도에 구멍을 내려는 시도가 있다.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명목으로 특별법을 만들면서 반도체 연구개발직의 노동시간에 특례를 도입하려는, 이른바 ‘반도체특별법’ 논란이다. 그 내용도 문제지만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는 방식이 더 우려스럽다. 노동시간 상한제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에 구멍을 내려면 무엇보다 건강권에 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상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희생시킬 필요가 있다거나, 그들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존재한다는 식의 논의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반도체 특별법 도입을 요구하는 기업들은 노동 건강권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동 건강권 문제, 즉 노동시간 상한제의 본질을 뭉개는 전략을 취했다. 그것을 거론하는 순간 자신들의 논리가 취약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전략이 아무 논의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언론과 정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반도체특별법을 “반드시 처리되어야 하는 민생 법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독 노동 인권 분야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노동 문제가 경제 문제로 변질되고, 노동자의 권리가 기업에 가해지는 규제 혹은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시혜적 조치 따위로 왜곡된다(비근한 예로 최저임금제 논란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최저임금은 항상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 보장보다 사업주에게 가해지는 부담 문제로 다루어진다).
이러한 흐름으로 끝내 반도체특별법이 통과되고 만다면, 위협받는 것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만이 아니다. 노동시간 상한제 전체가 취약해지고, 노동 건강권 보호 체계의 근간이 흔들린다. 반도체특별법 논란이 뜨니 건설·조선·방산 업계에서도 덩달아 ‘주 52시간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건 그래서다.
지금의 반도체특별법 논란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월3일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판을 키운 면이 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특정 노동자들에게만 노동시간 상한제를 풀어주는 게 왜 안 돼요?”라고 노동자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질문 내용과 대상이 잘못되었다. “특정 노동자들에게만 노동시간 상한제를 풀면, 그들의 건강권 문제는 어떻게 해요?”라고 기업에 물어야 했다.
임자운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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