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민심에 ‘전장’이 된 ‘광장’…尹 ‘정치 생사’ 두고 갈라진 대한민국

박성의 기자 2025. 3. 1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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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파면” vs “탄핵 각하”…15일 탄핵 찬반 단체 대거 집결
‘통합’ 대신 ‘협박’ 메시지 내는 여야…모두 ‘승복’ 메시지 없어
헌재 주변 긴장감은 최고조…“정치가 분열 부추겨선 안 돼” 지적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극적인 부활일까, 비극적인 파면일까.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그의 정치적 생사를 두고 대한민국이 반으로 쪼개진 모습이다. '피고인 윤석열'의 파면과 처벌을 원하는 거야와 '대통령 윤석열'의 귀환과 무죄를 주장하는 여당은 국회가 아닌 광장에서, 협상과 통합이 아닌 협박과 처단의 메시지를 앞세워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헌재 재판관 8인의 판단에 정치권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제2의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15일 서울 남대문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좌). 15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주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우). ⓒ연합뉴스

'박근혜 탄핵'과 다르다? 집결하는 보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여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 배경은 '민심'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가 광화문광장 등에서 수시로 전개됐으나, 주도 세력은 범보수계가 아닌 60대 이상 강성 지지층이 주축이 된 '태극기 부대'에 한정됐다. 실제 보수층과 여당 지지층 내부에서도 대통령 탄핵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2016년 11월30일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실시했던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5.3%, 반대는 17.2%였다. 결국 그해 12월9일 국회는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고, 탄핵소추 91일 만에 박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12·3 비상계엄' 후 윤석열 대통령도 '박근혜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비상계엄 직후 조사된 여론의 흐름이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해 들어 민심에 변화가 이는 모습이다. 기존 강성 보수층이 주도하던 탄핵 반대 시위에 '거야의 폭주'를 비판하는 범보수 유권자와 일부 청년층이 합세하는 등 보수층이 대집결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민심이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지난해 연말과 비교해 탄핵 반대 응답층이 분명 크게 늘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0~12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한 결과 '탄핵을 인용해 파면해야 한다'는 비율이 55%로 '탄핵을 기각해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39%)는 응답을 16%포인트(p) 앞서는 것으로 13일 나타났다.

응답은 '이념'에 따라 크게 갈렸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지지층에서는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98%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91%로 나타났다. 진보, 중도에서는 '탄핵 인용'(각각 89%, 67%)이 높은 반면, 보수에서는 '탄핵 기각'(73%)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고,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21.1%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3월8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尹 두고 찢어진 광장, 불 붙이는 정치권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이 8일 석방되자 탄핵 찬반 세력 간 갈등은 더 격렬해졌다. 여기에 야권이 주도한 최재해 감사원장과 검사 3인 탄핵 사건이 13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되자 여야와 광장의 대치는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양 지지층의 결집에 광장이 전장처럼 변모한 가운데, 민주당 지도부는 더 적극적으로 '거리의 열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다.

15일 서울 도심과 전국 곳곳에서는 탄핵 찬성 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가 동시에 진행됐다. 탄핵 찬성 측은 이날 오후 2~3시 종로 일대에서 촛불행동, 민주노총, 야 5당이 각각 집회를 연 데 이어 4시께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집회에 합류했다. 경찰 비공식 추산 4만2500명(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참여해 안국동 로터리부터 경복궁역까지 약 1km 구간 전 차로를 채웠다.

집회에 참석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이 계엄에 성공했다면 이재명, 박찬대, 우원식, 김민석, 조국, 정청래 같은 야당 정치인은 독살, 폭사, 수장되고 국회는 해산됐을 것"이라며 "윤석열과 김건희는 헌법을 뜯어고쳐 영구 집권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탄핵 기각은 대통령 마음대로 계엄 선포해도 괜찮고 대통령을 비판하면 누구든 체포해서 살해해도 괜찮다는 면허를 주는 것"이라며 "테러가 난무하는 후진 독재 국가로 가는 지름길, 대한민국을 생지옥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불안한가. 불안해할 필요 없다. 윤석열 탄핵은 안 될 수가 없다"면서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100%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 포고령 한 장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탄핵 반대 측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축인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대국본)의 광화문 집회와 보수 개신교단체 세이브코리아의 여의도 집회로 나뉘었다. 헌재 근처에선 윤 대통령 지지자 단체인 국민변호인단 집회도 열렸다.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도합 4만3000명(주최 측 추산 350만명)이 참여했다.

나경원, 윤상현, 이만희, 구자근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세이브코리아가 경북 구미역에서 개최한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했다. 나경원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9년 대만을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이 자유의 방파제'라고 했다"며 "자유의 파도를 더 거세게 만들어보자. 그 시작은 윤 대통령 탄핵 무효‧각하로 직무 복귀하는 그날"이라고 외쳤다.

윤상현 의원은 "구미는 불세출의 영웅, 불멸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이 탄생한 곳"이라며 "불굴의 박정희 정신으로 재무장해 탄핵 심판이라는 불구덩이에 놓여 있는 윤 대통령을 구출해내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경찰들이 경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전 우려에 종교계 나서 "헌재 판결 존중해야"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국회와 광장이 동시에 갈라지자, 일각에선 내전에 버금가는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경찰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 당일 '갑호비상'을 발령해 경찰력 100%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서울 도심권 일대를 8개 권역으로 나눠 '특별 범죄예방강화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권역별로 서울 경찰서장이 '지역장'으로 투입되고 기동순찰대·112지역경찰·형사·교통경찰 등 1300여명이 광범위한 치안 활동을 벌인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시민들의 분노와 불신을 진화하는 대신 더 발화시키고 부추기는 것은 '민주주의 붕괴'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 석방 후 여야 모두 적극적으로 여론전에 나서면서 국회가 국민 통합은커녕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회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지금 여야의 행태는 '정치의 부재'를 넘어 '정치의 몰락'"이라며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민들은 자기가 믿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할 자유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치인이 분열과 갈등을 선동하고 조장하는 역할을 해선 안 된다. 나라를 두 동강 내는 사람은 정치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할 1차적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역설했다.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 메시지가 아닌 '내전'을 불사하겠다는 메시지가 정치권에서 나오자 급기야 종교계가 나섰다.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원불교·유교·천도교·천주교·민족종교협의회로 구성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국가적 위기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며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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