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벌 깨우기' 실패[벌통을 열다]
겨울이 봄이 될 때 벌꾼들은 뛴다. 마음 뛰고 몸도 뛴다. 벌통 있는 산중턱 양봉장까지 달렸다. 벌들이 잘 있어야 할 텐데. 잘 있겠지. 기온이 별안간 오르내리는 환절기. 꿀벌들이 쉽게 떼죽음 당하기 좋은 계절이다. 나는 벌을 키운 지 벌써 2년 넘었다. 그간 잘 겨울을 넘겼으니 설마 다 죽겠어. 벌통 뚜껑에 귀를 댔다. 조용했다. 벌통 문을 열었다. 미동이 없다. 아. 전부. 끝이다.
벌통 속 벌들은 소비(벌집 기초에 꿀벌이 밀랍으로 만든 벌집) 위쪽에 모여 있었다. 여왕벌 주변에 일벌 100여마리가 멈춰 있다. 지칠 줄 모르고 일만 하는 벌들이 모조리 움직이지 않았다. 몇몇 벌들은 벌집에 머리를 박고 굳어있다. 전쟁 통 추위 속에서 꼭 끌어안고 잠든 병사 같았다. 꿀벌들은 여왕벌 주변에서 날갯짓 등을 통해 벌통 내부 온도를 높인다. 사람이 추우면 서로 붙는 것과 마찬가지다. 꿀벌이 많아야 추위를 잘 버틸 수 있는데 겨울을 나기에는 벌이 너무 적었다.
벌들이 겨울잠에 빠져 일어나지 않는 거라면 좋으련만 모두 죽었다. '봄벌깨우기'를 할 시기에 깨울 벌들이 없다. 벌꾼에게 가장 설레는 일인 봄벌깨우기를 할 수 없다. 겨울 월동에 들어간 벌들을 3월부터 깨우는 절차다. 4월 벚꽃 개화에 앞서 벌들이 꿀을 딸 수 있도록 사양(설탕물), 화분떡 등을 먹여 벌의 세력을 불리는 일이다. 농사로 치면 씨앗을 뿌리는 것과 비슷하다. 올해 양봉은 출발부터 쉽지 않다.
지난달 23일 양봉장이 있는 대전은 평균기온은 -2.7℃였다. 최고기온 2.1℃, 최저기온 -6.8℃였다. 일주일 전인 지난달 16일은 평균기온 5.1℃, 최고기온 11.9℃, 최저기온 -0.7℃다. 최고기온 기준 10℃ 가까이 일교차가 있다. 사람이야 옷 한 벌 더 입으면 되지만 벌은 온도가 급변하면 죽는다. 따듯한 날씨에 봄이 온 줄 착각한 벌들이 봉구(蜂毬)를 풀면 추위에 속수무책이다. 봉구는 겨울 추위를 막기 위해 벌들이 공처럼 뭉친 현상이다.
벌들이 겨울을 넘기지 못한 원인은 여름과 가을에 있다. 지난해 여름 말벌 방제에 실패했다. 등검은말벌과 장수말벌이 꿀벌을 많이 죽였다. 봉세(꿀벌의 세력)가 약한 상황에서 가을 월동준비에 들어갔다. 겨울을 넘기기 위한 벌이 부족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월동을 위한 최소 봉군은 소비 3개이상, 벌 착봉 100%로 구성”이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내 벌통은 소비 3매를 간신히 넘겼다. 안전하게 겨울을 넘기기 위해선 6매 이상은 돼야 했다. 전부 내 탓이다.
올해 양봉농가 월동피해는 꿀벌 집단폐사가 이슈가 됐던 2022년~2023년 동절기만큼 심각하진 않은 분위기다. 다만, 올해 1월 말부터 2월까지 기온이 급변하면서 일부 농가가 벌을 일찍 깨웠다가 폐사한 경우가 있다. 2월 중순 따듯한 날씨에 월동하던 벌을 깨웠다가 갑자기 추위를 맞아 돌연 떼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한국양봉협회 선문규 전무는 “농가별로 키우는 벌통의 50% 정도가 월동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과거 70~80%가 폐사했던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현재 월동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양봉 농가 100여곳에 대한 피해상황을 조사하고 있다”며 “데이터가 취합되면 예년과 비교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월동폐사 문제가 불거지던 2022년~2023년 동절기에 비해선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꿀벌을 구입하려고 가격을 알아봤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벌 1통은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대략적인 벌통 1통 가격은 30만원이다. 1통에는 소비 10매가 들어가는데 이중 소비 5매에 벌이 꽉 붙어있을 때 30만원 수준이다. 다만, 벌통에 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가격은 다르다. 한국양봉협회 엄용철 대전지회장은 “1통에 3매 벌이면 25만원이다”며 “남쪽 지역은 1통 7매벌이 50만원까지 간다”고 말했다.
벌통을 사고파는 일은 벌꾼들 간 거래로 이뤄진다. 소, 돼지는 경매시장 등이 있지만 꿀벌은 뚜렷한 거래 시장이 없다. 한국양봉협회 게시판,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서 알음알음 사고판다. 좋은 벌을 키운다고 소문난 농가에선 6, 7월에 여왕벌 혹은 왕대(여왕벌이 태어나는 방)만 따로 분양하기도 한다. 다만, 벌은 인간의 '눈'만으로는 알 수 없는 작은 세계에 산다. 진드기 감염 여부 등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건강한 벌을 살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한편 농진청은 국가 차원의 우수 꿀벌 품종 보급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전남 영광, 경남 통영, 충남 보령 지역에 ‘꿀벌자원 육성 품종 증식장’을 건립하고 있다. 강하고 꿀 수집 능력이 우수한 꿀벌 품종을 대량으로 증식하고 양봉농가에 안정적으로 보급하기 위해서다. 올해부터 전국 5곳 꿀벌 증식장에서 연간 총 5000마리 이상의 우수한 보급여왕벌을 생산해 양봉 현장에 전달할 계획이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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