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 공동체, 이제는 동물의 정치적 권리까지 [.txt]
‘의식적 경험’ 있는 동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서로 다른 삶 반영한 ‘이해관계 기반 권리’ 필요
‘동물 전담 의원’ 통해 공동체 논의에 반영해야

오징어는 더 맛있었던 먹이를 먹은 경험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먹기 위해 기다리거나 움직일 줄 안다. 스트레스를 받은 꿀벌들은 보상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는 등 자포자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초파리는 잠을 잘 때 마치 꿈을 꾸는 듯 행동하고, 문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이 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해왔으나, 그 경계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지난해 과학자들은 여태껏 누적된 과학적 탐구 결과들이 “많은 동물들이 ‘의식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선언(‘동물 의식에 관한 뉴욕 선언’)했다. 최근의 연구들은 ‘의식’을 쾌락이나 고통 같은 느낌들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능력으로 본다. 의식이 있다는 건 한마디로 “무언가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만약 여러 동물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인간의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이 세상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그 가치를 평가절하할 수 없다. 의식적 경험을 하는 존재들을 이전처럼 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정치학자 앨러스데어 코크런(영국 셰필드대 교수)은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2020)에서 인간 공동체가 비인간 동물에게 어떤 ‘정치적’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지 논의한다. 출발점은 뉴욕 선언과 같다. “모든 지각 있는(sentient) 동물은 내재적(본질적) 가치를 지니며 그것을 존중받을 권리를 지닌다.” 코크런은 여기에 ‘이해관계 기반 권리’(interest based rights)라는 접근법을 더한다.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다른 개체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거나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뜻으로, 이것은 다른 개체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권리의 근거다. 예컨대 ‘표현의 자유’는 누군가가 애초 그런 권리의 소유자라서가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 그것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의무를 부과해야 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주어진다. 우리는 똑같은 권리의 묶음을 나눠 갖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근거해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를 갖는다. 어린이에게는 결혼할 권리가 없고, 종교의 자유는 문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각 개체들의 내재적 가치에 적절한 존중을 보인다는 것은 그들이 종종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는 생물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방해받는 삶’에서 벗어나 ‘번영하는 삶’을 추구한다고 보는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접근법’과도 공명한다.
코크런은 비인간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수단으로 동물복지법, 헌법 조항, 법적 인격성, 성원권, 민주적 대표성 등의 필요성과 적절성을 순서대로 따져본다. 동물 학대를 금지하는 ‘동물복지법’은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바다표범 모피의 무역은 금지해도 송아지 고기 생산은 허용하는 등 인간의 이익을 거스르지 않을 때만 작동한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처럼 동물복지를 ‘헌법 조항’에 새겨넣어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더라도, 동물은 법적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이익은 여전히 인간의 이익에 압도당한다.
따라서 지각 있는 동물들에게 인간과 대등한 법적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여러 나라에서 이런 취지의 판결이나 헌법 개정이 있었고,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자연에 ‘법적 인격성’을 부여하는 ‘생태법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법적 인격성을 부여받는다고 해서 동물이 하루아침에 인간과 같은 권리들의 다발을 보유하게 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인간의 이해관계와 동물의 이해관계가 공정하고 평등하게 평가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축산업과 동물연구,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한 산업 전반에서 동물을 착취하는 일은 위축될 것”이다. 여기서 동물을 착취해서 누리는 인간의 이익이 착취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동물의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코크런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법적인’ 주체가 되어 공동체의 보호를 확보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목표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인 주체가 되길 원한다. 지각 있는 동물이 공동체의 온전한 일원이 되어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려면 이처럼 ‘성원권’(membership)을 가져야 한다. 다만 언론·집회, 정치적 참여 등 다양한 자원들을 지닌 인간과 달리, 동물에겐 공동체의 논의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시킬 실질적인 수단이 없다. 이 때문에 동물에겐 동물에게 맞는 ‘민주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물을 대변하는 정당, 동물 전문가 기구, 동물 전담 의원 등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본 코크런은 이 중 동물의 민주적 대표성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동물의 이해관계를 잘 파악해 공동체의 논의에 반영시킬 수 있는 ‘동물 전담 의원’에게 입법부의 의석 일부를 할당하는 것”을 제안한다.
코크런의 시도는 그동안 공리주의가 주창해온 ‘동물해방’과 의무론이 강조해온 ‘동물권리’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설 길을 제시한다. 공리주의는 고통과 쾌락을 느낄 줄 아는 존재들이라면 마땅히 그들의 이해관계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제대로 묻지 못했다. 의무론은 삶이 있는 모든 존재는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가치를 존중받기 위한 권리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는 적절히 제시하지 못했다. 두 입장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동물의 세계가 지닌 놀라운 다양성과 포괄성”이다. 지각이라 부르든 의식적 경험이라 부르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공유하는 본질은 “잘 살아가고” 싶은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인데, 그 삶들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다종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결국 ‘동물의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최원형 지구환경부장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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