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행' 김혜성,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의 냉혹한 대가 [이재호의 할말하자]

이재호 기자 2025. 3.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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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선수들은 팀과 계약후 일반적으로 말한다.

"그 팀이 저의 가치를 인정해줬다."

여기에서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차피 영입 제안을 하는 팀들은 모두 '너가 필요하다'며 온갖 감언이설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별점을 둘 수 있는건 오직 '돈'이다. 얼마나 많은 돈을 주느냐가 결국 그 선수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김하성은 탬파베이 레이스와 계약한 후 "팀내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제시했다는걸 알고 '나를 정말 원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선수풀이 적은 한국이야 '유망주를 키운다'며 고액 선수를 배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세계 인재풀을 쓸어담는 메이저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보장 받기 위해서는 '연봉'만큼 확실한 안정장치가 없다.

ⓒAFPBBNews = News1

김혜성(26)은 지난 1월 LA 다저스와 보장 3년 1250만달러(약 182억원), 3년 후 2년 팀옵션 연봉 500만달러씩까지 포함하면 5년 2200만달러(약 321억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점은 김혜성이 이보다 좋은 계약을 제시한 LA 에인절스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김혜성이 유튜브에 나와 스스로 밝힌 계약 내용에 따르면 다저스는 3년 1250만달러, 에인절스는 2년 800만달러의 보장계약. 팁옵션을 합하면 다저스는 5년 2200만달러, 에인절스는 4년 2800만달러의 계약이었다. 에인절스는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할 수 있는 마이너리그 거부권도 줬다.

계약기간은 짧은데 총액이 더 많고, 마이너리그 거부권까지 보장해주는 에인절스 대신 다저스를 택한 김혜성. 그는 다저스를 택한 이유로 "그 정도 차이라면 그냥 더 좋은팀, 성적을 내는 팀에 가서 잘하면 좋겠다고 느꼈다"며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어도 못하면 마이너리그에 내려가는게 맞다고 봤다. 좀 더 최고 팀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한국시리즈를 가보니 팀성적이 따라와야 사람이 흥이 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물론 다저스의 일원이 되면 얻는 혜택은 많다. 다저스는 뉴욕 양키스와 더불어 최고 인기팀이기에 팬들과 미디어의 관심이 크다. 잘하면 더 주목받고 영웅이 된다. 또한 팀성적이 좋은 팀이기에 '위닝 멘탈리티'에 대해 배울 수 있고 김병현 이후 끊긴 한국 선수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팬들에게 선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다저스에서 뛴다는 것'이 전제됐을 때의 얘기다. 다저스는 최강팀인 만큼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이 뒤따른다. 당장 주전 중견수가 될 거라 봤던 토미 에드먼이 김혜성의 2루수 자리를 꿰차게 됐고, 이외에도 크리스 테일러, 미겔 로하스가 2루에서 뛸 수 있는 선수들이다. 여기에 이별하는 줄 알았던 키케 에르난데스와 재계약을 하면서 2루에 뛸 수 있는 자원은 최대 4명이나 된다.

김혜성은 이중 한명이라도 밀어내야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 수 있었지만 시범경기 타율 0.207을 기록하며 결국 18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메이저리그 도쿄 개막시리즈' 엔트리에 빠지면서 마이너리그 트리플A로 가게 됐다. 심지어 기존 26인 로스터에 일본까지 가기에 부상 방지를 대비한 추가 5명까지 총 31명의 로스터에도 들지 못한 것이다.

올 시즌 김혜성의 250만달러 연봉은 다저스 내 22위.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이 500만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적은 금액이다. 4명의 경쟁자들 중 가장 적은 돈을 받는 선수가 미겔 로하스로 500만달러인걸 감안하면 김혜성이 압도적으로 잘해도 경쟁을 이길 수 있을지 근본적으로 의문인 팀상황이다.

반면 김혜성이 거절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에인절스는 경쟁이 훨씬 덜한 편이다. 현재 주전 2루수는 루이스 렌히포지만 렌히포는 김혜성이 영입됐다면 3루수로 기용됐을 것이다. 김혜성 영입에 실패한 이후 에인절스는 3루수를 맡을 요안 몬카다를 급하게 영입했다. 내야 백업을 맡을 J.D 데이비스, 팀 앤더슨 등도 이후 계약했는데 이들은 메이저리그 생존이 가능할지 미지수. 또 다른 2루 백업으로 여겨지는 크리스티안 무어는 22세로 아직 메이저리그 경험조차 없다.

에인절스에서 김혜성 연봉이면 팀내 12위로 꽤 높은 순위. 22위였던 다저스와 대우가 다를 수밖에 없다.

ⓒAFPBBNews = News1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뛰었던 강정호는 유튜브를 통해 김혜성에 대한 조언을 건네며 "내가 시합을 뛸 수 있는 팀과 계약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다. 내가 한국에서 한걸 미국에서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회를 많이 받아야한다"며 "경쟁자가 많으면 내가 한번 고꾸라질 때 다른 선수가 치고 올라오면 끝이다. 경쟁자가 많은 곳에 가서 시합을 뛰지 못하면 1,2년 안에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 김혜성이 최고팀에서 도전하겠다는 건 존중하지만 좀 더 시합을 뛸 수 있는 곳에서 도전하면 더 유리하다. 먼저 시합에서 뛴 다음에 빅마켓 팀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마이너리그로 가는 김혜성을 보고 '잘해서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부상자가 생길 수 있고 경쟁자의 부진 등으로 그에게 기회가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는 결코 쉽지 않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한국보다 열악한 시설과 대우, 미국 대륙을 횡단해야 하는 무지막지한 이동거리를 버스로 가는데의 피로함,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160km를 심심찮게 던지는 어린 유망주들, 생소한 언어와 환경은 김혜성을 집어 삼킬지도 모른다.

당장 1년 전 김혜성과 똑같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고우석. 그도 마지막까지 경쟁하다 개막 로스터에 탈락한 후 마이너리그로 향했다. '잘해서 올라오면 된다'고 했지만 고우석은 마이너리그 44경기에서 무려 평균자책점 6.54라는 끔찍한 성적을 거두며 승격에 실패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KBO리그 우승팀 LG 트윈스의 마무리였던 고우석이 그렇다고 마이너리그에서도 6.5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정도로 나쁜 투수는 아니다. 이는 생소한 환경, 메이저리그를 기대했다 마이너리그로 간 허탈감, 언어적으로 도움받기 힘든 상황 등이 겹친 참사였을 것이다.

마이너리그에서 하염없는 기다림과 함께 본인을 증명해야 하는 김혜성.

더 가치를 인정해주는 팀을 거절하고 강정호, 아니 모든 메이저리그 전문가와 팬들의 조언을 외면한채 자신만의 기준으로 다저스를 택한 김혜성. 그의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의 대가는 냉혹하다.

ⓒ연합뉴스 AP

-이재호의 할말하자 : 할 말은 하고 살고 싶은 기자의 본격 속풀이 칼럼. 냉정하게, 때로는 너무나 뜨거워서 여론과 반대돼도 할 말은 하겠다는 칼럼입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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