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축구’ ‘거북이 골퍼’ 그만… 스피드업 위한 스포츠계 묘수들

정윤철 기자 2025. 3. 15.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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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골키퍼 공 소유 8초 제한… 지연된 시간 만큼 추가 시간 부여
야구, ‘피치 클록’으로 시간 단축… 미국에선 관중 증가 효과 나타나
골프, 벌타 부과해 ‘느림보’ 퇴출… 국내는 샷 시간 지연 벌금도 강화
KOVO, 자진 신고 ‘그린카드’ 도입… 비디오 판독 줄여 경기 지연 최소화
NBA 총재 “경기 시간 줄여야 ” 발언… “신기록 작성 어려워질 것” 반론도
《“지루한 경기 그만” 스포츠계 스피드업 안간힘

최근 스포츠의 화두는 ‘스피드업’이다. 축구 야구 골프 배구 등은 불필요하게 지연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팬들을 지루하게 했던 ‘침대 축구’ ‘거북이 골퍼’와의 전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의 경기, 후반 한 팔레스타인 선수가 누워 시간을 끌고 있다. 2024.9.5/뉴스1
“팬들은 90분 동안 치열하게 펼쳐지는 경기를 기대하고 티켓값을 낸다. 그런데 선수들이 실제 경기하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적을 때도 있다.”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국제축구연맹(FIFA) 심판위원장의 말이다. 콜리나 위원장은 축구 규정과 경기 방식 개정을 관장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의 기술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축구 경기의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전선에서 노력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최근 스포츠 각 종목의 공통된 화두는 ‘스피드업’이다. 축구, 야구, 골프, 농구, 배구 등 각 종목은 경기 중 불필요하게 지연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질질 늘어지는 경기로는 더 이상 젊은 팬들의 눈길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 ‘침대축구’는 이제 그만

축구에선 한 점 앞선 팀의 골키퍼가 경기 막판에 공을 잡은 뒤 킥을 할 것처럼 동작을 취했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끄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경기 지연으로 경고 한 장을 받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승리를 지키기 위해 ‘꼼수’를 쓰는 것이다. 어떤 선수들은 큰 부상이 아님에도 그라운드에 누워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팬들이 질색하는 일명 ‘침대축구’다.

영국 BBC에 따르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브라이턴의 골키퍼 제이슨 스틸은 2023년 9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은 방문경기에서 평균 14.8초 동안 공을 잡고 시간을 끌어 거센 야유를 받았다.

이에 IFAB는 골키퍼의 고의적 지연 행위를 막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2025∼2026시즌부터 골키퍼가 8초 넘게 공을 들고 있으면 상대 팀에 코너킥을 주도록 규칙을 바꾼 것이다. 심판은 5초가 남았을 때부터 골키퍼가 볼 수 있도록 손으로 카운트다운을 한다. 데이비드 엘러레이 IFAB 기술이사는 “경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지연 행위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규정도 골키퍼의 공 소유 시간을 6초로 제한하고, 이를 어기면 상대 팀에 간접프리킥을 주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선 엄격히 적용되지 않았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콜리나 위원장도 18년간 심판으로 활동하면서 시간 지연을 이유로 간접프리킥을 선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 실제 플레이 시간 늘리는 데 초점

선수들이 단체로 심판에게 달려가 퇴장 판정 등에 대해 항의하는 것도 ‘볼 데드’ 시간을 늘리는 행위 중 하나다. 심판이 여러 선수에게 판정 이유를 설명하거나, 과격하게 따지는 선수들에게 일일이 경고를 주다 보면 한동안 경기가 재개되지 못한다. IFAB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팀 주장만 심판에게 판정 관련 항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정규 시간이 전후반 90분으로 정해져 있는 축구의 ‘스피드업 규정’은 경기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암초를 제거해 실제 플레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FIFA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 모든 경기를 분석해 경기당 실제 플레이 시간이 57.6분에 불과했다는 결과를 내놨다. FIFA는 실제 플레이 시간을 늘리기 위해 2022 카타르 월드컵부터 ‘침대축구’ 등으로 ‘낭비된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추가시간에 반영했다. 고의로 경기를 지연시키면 피 말리는 추가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아픈 척하며 쓰러져 시간을 끌지 말라는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 당시 이란과 잉글랜드의 조별리그 경기에선 전후반을 합쳐 무려 27분 16초의 추가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다. 2023년부터 추가 시간 확대 규정을 반영한 한국프로축구 K리그는 2022년 평균 55분 32초였던 실제 플레이 시간이 지난해 평균 59분 44초까지 늘어났다.

● MLB ‘피치 클록’으로 획기적 시간 단축

“야구는 원래 2시간 30분 정도면 끝나는 경기였다. 우리는 야구가 가장 인기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롭 맨프레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커미셔너는 2023년 MLB 경기에 ‘피치 클록’을 도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피치 클록을 통한 경기 시간 단축이 시들해진 야구 인기를 되살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얘기였다.

MLB에선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받았을 때부터 주자가 없을 땐 15초, 주자가 있으면 18초 안에 투구해야 한다. 구장에 설치된 타이머 기준으로 이 시간을 넘기면 자동으로 볼이 선언된다. 타자에게도 제약이 있다. 타자는 타이머가 8초 아래로 떨어지기 전까지 타격 준비를 끝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자동 스트라이크가 부과된다.

MLB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매 시즌 평균 경기 시간이 3시간을 넘었다. ‘야구는 지루하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인기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피치 클록이 반전을 이뤄냈다. MLB는 피치 클록 도입 원년인 2023년에 평균 경기 시간을 2시간 39분으로 줄였다. 지난해엔 평균 2시간 36분으로 1984년(평균 2시간 35분) 이후 40년 만에 가장 빨리 경기가 끝났다.

경기 시간 단축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MLB 사무국에 따르면 지난해 총관중은 약 7134만 명으로 최근 7년 중 최다였다. 피치 클록 도입 전인 2022년 총관중과 비교했을 땐 약 11%가 증가했다. 미국 ESPN의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 평균 시청자 수도 전년 대비 6% 늘어나는 등 TV 시청률도 올랐다. AP통신은 “팬들은 장시간 경기로 밤늦게까지 집 밖에 있어야 하는 걱정을 덜고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 KBO도 올해부터 ‘피치 클록’ 도입

지난해 피치 클록을 시범 운영한 한국프로야구도 올 시즌부터 피치 클록을 정식 도입한다. MLB에 비해선 좀 더 시간을 줬다. 투수는 주자가 없을 땐 20초, 주자가 있을 땐 25초 안에 투구해야 한다. 타자는 33초 이내에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선수들은 8일 개막한 시범경기부터 피치 클록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투구 준비 동작이 길기로 유명했던 롯데 마무리 투수 김원중은 ‘탭댄스’라는 말까지 들었던 발동작을 최소화하고 바로바로 공을 던지고 있다. 그는 “투구 동작을 간결하게 바꿨더니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을 빼앗는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시범경기 피치 클록 위반 1호는 SSG 투수 노경은이었다. 노경은은 8일 삼성전 8회말 2사 1, 2루에서 제한 시간 25초를 넘겼다. 이숭용 SSG 감독은 “정규시즌 개막 전에 위반이 나와 다행이다. 선수들이 (피치 클록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9일 경기에선 롯데 타자 한태양이 피치 클록 8초가 남을 때까지 타격 자세를 취하지 않아 자동 스트라이크를 받았다. 타자 피치 클록 위반 1호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 외에도 여러 ‘스피드업 규정’을 두고 있다. 공수 교대 시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전 선수는 전력 질주하도록 권고하고, 공격 구단은 작전을 위해 한 이닝에 2번 이상 타임을 요구할 수 없도록 했다. KBO 관계자는 “스피드업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한 선수나 구단에는 경고를 하고, 상황에 따라 제재가 부과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필드에선 ‘거북이 골퍼’ 퇴출 바람

작년 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선 해묵은 ‘늑장 플레이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세계 랭킹 1위 넬리 코르다(미국)는 지난해 11월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을 앞두고 “퍼팅 전에 2, 3분씩 서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6시간 가까이 중계를 보는 팬들도 정말 짜증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전 대회인 더 안니카 드리븐 3라운드에서 몇몇 선수들의 늑장 플레이 여파로 코르다가 속한 조의 경기는 5시간 38분이나 소요됐다. 방송 중계도 예정 시간보다 51분이나 늦게 종료됐다. 이 대회에서 공동 2위를 한 찰리 헐(잉글랜드)은 “세 번 늑장 플레이를 하면 매 홀 티샷 때마다 2벌타를 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선수는 투어 카드를 잃게 될 것”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선수들이 직접 나서서 불만을 제기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LPGA투어 사무국은 올 시즌부터 더 강력해진 규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27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포드 챔피언십부터 시행되는 새 규정은 골퍼에게 주어진 시간(40초 규정)을 1∼5초 초과해 샷을 하면 벌금을 부과한다. 6∼15초를 초과하면 1벌타를 매기고, 16초를 넘기면 2벌타를 준다. 종전 규정은 30초 초과까지는 벌금만 부과하고, 31초를 초과해야 2벌타를 줬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는 예전부터 ‘거북이 골퍼’로 악명을 떨친 선수들이 많았다 LIV골프에서 뛰고 있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PGA투어 소속이던 2019년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m 거리의 퍼팅을 앞두고 2분 넘게 시간을 보내다 동료 선수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 골프에도 ‘샷 클록’ 도입 검토

미국 CBS스포츠에 따르면 PGA투어는 선수들에게 거리 측정기 사용을 허용해 남은 거리를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선수들의 규정 위반 사항을 공개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야구의 ‘피치 클록’처럼 ‘샷 클록’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플레이 속도 위반에 따른 페널티를 강화했다. 과거엔 한 대회당 ‘배드 타임’(샷 규정 시간 초과에 따른 페널티)이 2회 부과되면 벌금 200만 원을 내야 했지만, 지난 시즌부터는 400만 원으로 늘었다. 3회 부과 시 벌금은 4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올랐다. KLPGA투어는 새 규정을 통해 지난해 평균 경기 시간을 전년보다 21분 단축하는 효과를 봤다. 평균 경기 시간 10분 단축이 목표인 한국프로골프(KPGA)투어는 올 시즌부터 선수들의 샷 소요 시간을 수시로 감시하기로 했다.

● 배구에 등장한 ‘그린카드’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과 정관장이 맞붙은 9일 수원체육관. 3세트 정관장 박혜민의 공격이 아웃 판정을 받았다. 고희진 정관장 감독은 주심에게 블로커 터치아웃 여부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때 현대건설 이다현이 공이 자신의 손을 맞고 나갔다고 먼저 인정했고, 비디오 판독은 시행되지 않았다. 심판은 ‘자진 신고’를 한 이다현을 향해 ‘그린카드’를 꺼냈다.

몇 년 전부터 각 스포츠 종목마다 비디오 판독을 도입해 오심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에 2분 이상 소요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인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프로배구에선 잦은 비디오 판독을 피하기 위해 ‘그린카드’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2023년 국제배구연맹(FIVB)이 시범 도입한 것으로 경기 지연을 최소화하고 페어플레이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린카드는 감독의 비디오 판독 요청을 받은 주심이 비디오 판독 시행 신호를 하기 전에 실제로 이뤄진 플레이를 인정하고 손을 든 선수에게 주어진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그린카드의 누적 횟수 등을 정규리그 페어플레이상의 선정 기준으로 적용한다.

● “스피드업이 능사 아냐” 반발도

미국프로농구(NBA)의 한 쿼터 경기 시간은 다른 대부분 리그(10분)와 달리 12분이다. 팬들은 세계 최고 선수들의 화려한 ‘농구 쇼’를 쿼터마다 2분씩 더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양 팀의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경기 후반 후보 선수들이 대거 투입됐을 땐 맥빠진 경기를 더 오래 봐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애덤 실버 NBA 총재는 최근 한 쿼터 시간을 줄이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의견을 밝혀 화제가 됐다. 그는 1월 미국 NBC스포츠 ‘댄 패트릭 쇼’에 출연해 “나는 10분짜리 4쿼터로 구성되는 경기를 좋아한다. 경기 시간을 2시간(작전 타임, 선수 교체 시간 등 포함) 정도로 만드는 게 현대인들의 TV 시청 패턴과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ESPN은 “경기 시간을 줄이면 스타 선수들이 휴식 없이 코트 위를 더 오래 누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기 시간 감소로 인해 한 시즌 및 한 경기 최다 득점 등 대기록을 새로 작성하는 선수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NBA의 ‘살아있는 전설’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는 이달 초 데뷔 22년 만에 역사상 최초로 5만 득점을 돌파했는데, 경기 시간이 줄면 제임스의 기록을 깰 선수는 나오기 힘들어진다.

야구의 ‘피치 클록’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9회말 동점 2사 만루 상황에서 풀카운트 접전 끝에 투수의 피치 클록 위반으로 자동 볼이 선언돼 허무하게 경기가 끝난다면 이를 납득할 팬은 거의 없다. MLB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한 야구팬은 “야구는 원래 오락(pastime)처럼 천천히 즐기는 스포츠다. 경기 시간을 10∼20분 줄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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