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선 月10달러 받아… 한국 덕분에 가족 먹여 살렸다”
V리그 통산 득점 1위 ‘쿠바산 폭격기’ 레오
로베르틀란디 시몬(쿠바), 가빈 슈미트(캐나다), 오레올 까메호(러시아) 등 남자 배구 세계 정상급 선수 여럿이 한국 무대를 거쳐갔지만, V리그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를 꼽으라면 이젠 단연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35·쿠바·등록명 레오)다. 올 시즌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레오는 지난 12일 대전 삼성화재전 18득점으로 V리그 통산 득점 역대 1위(6637득점)에 올라섰다.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토종 에이스’ 박철우(40) 현 해설위원의 6623점을 넘어섰다. 후위 공격 득점(2097점), 서브 득점(470점) 역시 레오가 역대 1위. 14일 만난 그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면서 “처음엔 팀 우승이 중요해서 기록을 의식하지 않았는데 정규 리그 1위를 확정하고 나니 신경이 쓰였다. 빨리 깨버리고 잊고 싶었다”고 말했다.
레오 기록이 대단한 이유는 불과 7시즌 만에 이룬 점이다. 이전 1위 박철우는 그 기록을 세우는 데 19년 걸렸다. 그는 “한국 리그는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다. 공격 점유율이 50% 넘을 때도 많다”며 “공격 기회가 많았던 것일 뿐, 박철우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말할 순 없다”고 자세를 낮췄다. 레오는 22세이던 2012년 삼성화재 소속으로 V리그에 데뷔해 3시즌을 뛴 뒤 한국을 떠나 튀르키예 리그, 중국 리그 등을 거쳐 6년 만인 2021년 한국에 돌아왔다. 외국인 트라이아웃을 거쳐 OK금융그룹에 입단해 다시 3시즌을 뛰고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레오는 “진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곳에서 끝내고 싶어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은 두 번째 고향이다. 여기서 받은 사랑 덕분에 가족을 먹여 살리고 지켜낼 수 있었다”고 했다. 레오의 올시즌 연봉은 55만달러(약 8억원)이다.
레오는 열 살 때 배구를 시작했다. 원래는 야구를 했는데 어머니 지인인 한 트레이너가 키가 큰 그에게 배구를 권유했다고 한다. “정확한 키는 기억이 안 난다. 서너 살 많은 형들보다도 키가 컸다”고 했다. 쿠바 청소년·성인 대표팀까지 뛰었지만 그가 받던 돈은 월 10달러 수준이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라 따로 보수를 주지 않는다는 설명.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쿠바를 떠나 푸에르토리코로 망명해 그곳 리그를 거쳐 러시아 리그로 진출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당시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 레오는 “신 감독님 덕분에 진짜 배구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신 감독님은 배구 말고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게 해주셨어요. 스태프들에게 ‘레오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줘라.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다 데려다줘라’라고 하셨어요. 웨이트 운동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트레이너도 따로 붙여주셨죠.”
체력 운동에 높은 비중을 두는 한국식 훈련법도 본인에게 딱 맞았다고 했다. 삼성화재에서 그는 일주일에 다섯 차례 러닝 훈련을 하고, 하루는 등산을 했다. 공식 전술 훈련 사이엔 선수들이 속칭 ‘와리가리(’왔다 갔다‘라는 뜻의 일본어)’라고 부르는 훈련을 해야 했다.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뿌려주는 공을 받으러 끊임없이 뛰어야 하는 운동이다. 레오는 “이런 훈련 덕분에 높은 공격 부담을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길렀다”며 “다른 나라엔 이런 게 잘 없다. 외국 리그에서 뛸 때도 100% 똑같진 않아도 한국에서 배운 훈련법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운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30대 중반이라 그때처럼 운동하긴 힘들지만 정한 훈련 안에서 100%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나이가 많아져서 달라진 점은 운동뿐이 아니다. 그는 “어릴 적 한국에서 뛸 때는 쉬는 날이면 밖에 나가서 놀기를 좋아했다. 솔직히 특별히 경기 준비를 안 해도 하루 전에만 쉬면 경기를 잘했다”며 “이젠 그렇지 않다. 쉴 수 있을 때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게 좋다”고 했다. 부대찌개 시켜 먹는 게 낙이라고 한다.
V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이룬 그에게 남은 목표를 묻자 “먼 미래 목표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장 눈앞 목표는 이번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우승하면 우리 팀은 앞으로 몇 년간은 정말 강해질 것이다. ‘현대캐피탈 왕조’가 부활할 수 있다. 거기에 큰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규 리그 1위를 확정한 현대캐피탈은 다음 달 1일부터 챔피언 결정전(5전 3선승제)을 치른다. 2위 KB손해보험과 3위 대한항공의 플레이오프(3전 2선승제) 승자와 맞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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