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런, 네가 이겼어…자유를 얻었잖아

2025. 3. 1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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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계기 밥 딜런 재조명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우수 작품상 후보이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의 전기 영화다.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밥 딜런을 연습했다는 티모시 샬라메의 경이로운 연기가 담겨 있다. 표정과 움직임 뿐만 아니라 연주와 노래에서도 밥 딜런을 그대로 카피한 듯한 영화 속 티모시의 모습은 새삼 밥 딜런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밥 딜런의 젊은 시절을 카피 수준으로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오해 받고 싶지 않다면.”

토드 헤인즈 감독의 2007년작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에서 7명의 밥 딜런 중 하나를 연기한 벤 위쇼의 대사다. 팝 역사상 밥 딜런만큼 많은 오해와 편견에 시달린 인물도 없을 것이다. 1960년대 초 미국 전통 포크 음악의 새로운 메시아로 등장했지만, 일렉트릭 기타라는 사탄의 도구를 사용해 포크 정신을 망가뜨린 ‘가롯 유다’로 전락(!)한 인물이 그다.

밥 딜런. 1941년에 출생했고, 2025년 현재도 활동 중이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만. 시인 딜런 토마스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어 성을 딜런으로 지었다. 시인의 이름을 가져온 것은 밥 딜런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수 이전에 시인에 두었기 때문이다. 가명으로 지어진 딜런이라는 성을 그의 아들에게까지 이어 제이콥 딜런이라 이름 지었으니, 시인으로서의 그의 자의식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21세기 대학 문학 교재가 된 노래들
1978년의 밥 딜런.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딜런은 20살이 되던 1961년 뉴욕으로 향한다. 미네소타주의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 대학에서 잠시 문학을 전공하기도 했으나, 곧 음악으로 관심을 옮기고 평생의 우상인 포크 아티스트 우디 거스리를 쫓아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정착한다. 초기 사운드는 전통 포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문학을 전공한 그의 취향은 기존 포크 음악의 소박한 가사에서 벗어나 은유와 상징이라는 시적 접근을 시도했다. 20세기에 출발한 밥 딜런의 음악이 21세기 미국의 대학에서 문학 교재로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은 대중가요의 문법에서 벗어난 그의 노랫말들에 대한 공적 인정을 말해 준다.

데뷔 음반 ‘밥 딜런(Bob Dylan)’은 실패했다. 두 곡의 자작곡이 들어 있었지만 기존 포크 씬의 음악들을 리메이크로 수록한 음반은 밥 딜런이란 아티스트의 개성과 음악세계를 담지 못했다. 그리고 1962년 두 번째 음반이자 포크 음악계의 바이블이 된 음반 ‘The Freewheelin’ Bob Dylan’이 발표된다. 당시 연인이었던 수지 로톨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재킷으로 사용한 이 앨범은 반전 운동의 애국가가 된 ‘Blowin’ In The Wind’,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제목으로 번안한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등을 담고 있다. 전통의 포크를 차용했지만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 그리고 하나의 장르가 된 그의 특별한 음성이 어우러져 단숨에 대중적 성공을 거둔다. 당대의 스타 그룹이었던 피터 폴 앤 메리에 의해 리메이크 된 ‘Blowin’ In The Wind’는 앨범의 대표곡이자 시대의 상징이 된 곡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 한 명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비둘기는 모래사장에서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쏘아져야 그것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시적이면서도 시대의 고민을 담고 있었던 음악들은 전통 포크 팬 층을 넘어 대중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단숨에 포크의 성자로 옹립된 젊은 밥 딜런의 고민과 야심은 울타리 넘어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1950년대의 수퍼스타였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8년 군입대 이후 1960년에 컴백한다. 그러나 로큰롤의 왕이었던 그의 에너지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거친 창법과 현란한 바이브레이션을 선보였던 무대 매너는 저속함과 음란함이란 누명을 쓰고 기성세대의 타깃이 되었고, 위기감을 느낀 엘비스는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던 자신의 권좌를 버린 채 상업적 성공이 보장된 싸구려 줄거리의 영화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1964년, 영국 밴드 비틀스가 미국의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도착하자 패권은 새로운 세대로 이양된다. 젊은이들은 비틀스의 음악에 열광했고, 그 뒤를 이어 롤링 스톤스를 비롯한 수많은 영국 록 밴드들이 속속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제1차 영국 침공이라고 불렀다. 누구나 영국 여권만 있다면 미국에서 앨범을 낼 수 있다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조안 바에즈를 연기한 모니카 바바로(왼쪽)와 티모시 샬라메.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시대의 흐름을 지켜보던 밥 딜런은 낡은 포크의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1965년 5월 뉴 포트에서 열린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는 로큰롤 밴드를 배경에 세운 채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선다. 전통 포크의 금기였던 전기 기타 사운드는 격렬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관중들의 일부는 그에게 “유다”라고 소리쳤다.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밥 딜런의 반란은 공연 이후 발표된 앨범 ‘Highway 61 Revisited’의 대중적 성공을 통해 보상 받았다. 노골적으로 비틀스에 영향 받은 앨범의 대표 곡인 ‘Like A Rolling Stone’은 노트 20페이지 분량으로 쓰여진 긴 가사를 다듬어 6분이 넘는 대곡으로 녹음되었다. 성공에 취했다 몰락해버린 여성을 소재로 만들어진 이 곡은 포크를 포크-록으로 진화시킨 최초의 곡으로 평가되며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로 기록된 곡이기도 하다. 순수한 어쿠스틱 포크 곡인 ‘Desolation Row’를 제외한 전곡에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사운드를 입힌 수록곡들은 지루하고 올드한 포크라는 음악 팬들의 선입견을 부수었고, 결과적으로 포크의 지평을 넓혀냈다. 논란과 비난 속에서 감행된 그의 모험과 도전이 음악사의 새로운 챕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언제까지나 뒷골목 무대에서 몇 시간씩 통기타를 치며 처량한 노래만 부르며 살수는 없었다.”

앨범 ‘Highway 61 Revisited’에 대한 밥 딜런의 항변은 그가 자신의 음악적 여정의 목적지를 어디로 설정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1962년 두 번째 음반 ‘The Freewheelin’ Bob Dylan’ 재킷을 장식한 사진. 당시 연인이었던 수지 로톨로(영화 속 실비)와 함께. [중앙포토]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도 이 과정이 그려진다.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포크 음악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지지를 받았지만, 그 왕좌를 차버리고 배신자의 오명을 들어야만 했던 그의 갈등을 영화는 몇 마디의 대사로 영민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저 방 안에는 200명이 원하는 각기 다른 내가 있어.”

파티장을 나서며 극 중의 밥 딜런이 내뱉는 말은 그가 겪어야 했던 대중들의 성급한 정의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있다. 영화의 후반부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의 저항을 끝낸 후 떠나는 그에게 모니카 바바로가 연기한 조안 바에즈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겼어. 자유를 얻었잖아.”

“그의 음악은 위대한 작품들의 샘플집”
2016년 팝 가수로선 사상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 [중앙포토]
그로부터 50여년이 흐른 2016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을 호명했다. “훌륭한 미국 음악의 전통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는 이유다.

“그의 음악은 가장 위대한 작품들의 샘플집과도 같다. 음악계에 몸담아온 54년동안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해 왔다.” 옛날 옛적의 가수로 잊혀져 있던 그에게 다시금 찬사가 쏟아졌고,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소환해 냈다. 그러나 반세기 전 이미 대중의 관심과 평가의 폭력을 경험한 그는 무덤덤하게 수상 소감을 밝힐 뿐이었다. “영광이다. 그러나 선약이 있어 시상식엔 참석하기 어렵다.”

과거는 지나갔고, 우린 새로운 시간을 살아간다. 새 것이 언제나 낡은 것을 대체한다는 변증법의 오랜 잠언을 끌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매 순간 변하는 유행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시대를 초월해 소환되고, 대중은 여전히 그들을 궁금해 한다. 그것은 그들이 전한 메시지가 여전히 오늘의 이곳에서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밥 딜런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에 탄성들을 지르지만,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밥 딜런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오래된 이야기가 도착했으니, 그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한 번쯤은 고민해봐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밥 딜런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족 하나. 넷플릭스 영화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보면 1984년 ‘We Are The World’ 녹음 당시 최고 가창력의 가수들 사이에서 밥 딜런이 자신의 파트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포크 록의 신도 결국 인간임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지 않을 땐, 책을 펼쳐놓고 낮잠을 자거나 커피를 볶는다. 세상이 더 이상 찾지 않으면 따뜻한 남쪽에서 라면집을 하며 고양이를 키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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